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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즘 텔레비전 뉴스를 거의 안 본다. KBS, MBC, SBS 등 공중파는 물론이고 채널A, TV조선 같은 종편은 아예 채널에서 삭제했다. 가끔 JTBC 뉴스를 보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아이들 때문에 어쩌다 한 달에 두세 번 보는 정도에 불과하다.

종이신문들이 예전만큼의 위세를 떨치지 못하고, 방송이나 신문이 정권의 놀음에 그 영향력에 맞지 않게 깨춤을 추는 요즘이다.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와 같은 포털사이트 메인면에 배치된 기사 가운데 보고 싶은 기사만 편식(偏食)이 아니라 편독(偏讀)을 한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들과 사람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올라온 기사나 정보들만 간략히 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나 사람들은 여전히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보고 정보를 취득한다.

정보의 홍수라고 불릴 만큼 정보와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람들은 그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좋아할 것만 좋아하고 분노할 것만 분노한다. 나도 그 범주 내에서 벗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반인이다.

SNS나 포털사이트에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좋아할 만한 뉴스를 찾고 분노할 대상을 찾아 댓글을 쓴다. 그리고 블로그나 여러 매체에 나의 생각을 알리는 글을 쓰고 공감을 얻으려 한다. 난 내 생각과 사상이 정의로운 단계는 아니지만 상식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삶과 생각과 사상이 정말 상식적인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평범했던 나, 살면서 모르던 역사를 알게 됐다

난 가난하지만 상식적인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성장했다.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고 교련시간에 M-16 소총 모형으로 제식훈련을 배우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누나 둘은 돈이 없어서 대학을 가지 못 했다.

하지만 난 아들이란 혜택으로 어려운 가운데 부모님은 날 4년제 대학에 보내주셨다. 26개월간 성실히 병역의 의무도 수행했다. 대학교 때 불온서적뿐만 아니라 소설책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친구들이 한총련이다 5.18특별법 제정이다 뭐다 데모할 때 난 선후배들과 술사기 족구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졸업과 동시에 어렵지 않게 취직을 하고 몇 군데 회사를 옮겨 다녔다.

열심히 살았다. 가끔은 실패도 했지만 평범하게 상식적으로 살았다. 회사생활하면서 근로소득세를 포함한 각종 세금을 납부했다. 자동차를 구입하고 지금까지 자동차세 한 번 연체한 적이 없고, 작년에 4500원으로 오르기 전까지 20년간 담배를 피우면서 수백만 원의 세금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바쳤다. 초등학교 때 '평화의 댐' 성금부터 해마다 수재의연금과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냈다. 전역 후 예비군 훈련부터 민방위 훈련까지 국가의 부름에 한 번도 거역함이 없이 참석했다.

그렇게 살아오다 서른 살 넘어 휴일에 도서관에 나가 책을 읽었다. 여러 신문들을 읽었다. 특별히 불온서적이라고 불리는 의식화 교재를 읽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몰랐던 역사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회사생활하면서 대기업 위주의 한국 경제를 알게 되었다. 누구나 다 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가 어떤 이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민들이 낸 세금이 온전히 국민들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정당활동을 통해 한국 정치에 대해 알게 되고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비상식에 분노했다. 우리 사회에서의 상식은 돈과 권력의 힘이었다. 돈과 권력 앞에 법과 정치는 돈과 권력의 힘을 강하게 하는 도구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의무인 줄 알았던 것들

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다수의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다. 난 역사 과목의 국정화를 반대한다. 하지만 지금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이름도 모르는 작가(역사학자라고 부르기엔 내 상식이 용납하지 않는다)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난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한다. 하지만 정부의 방해와 보수언론들의 여론몰이에 세월호 진상 규명은 아득히 멀어 보이며 관련자 처벌은 시원찮고 그 관련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난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고 그들의 정치행태에 분노한다. 하지만 내가 지지하지 않는 그 정당은 40%의 지지를 받는 우리나라 제1당이다. 그렇다고 그 반대편에 있는 지지율 25%의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난 5%도 채 넘지 않는 소수정당의 당원이다. 난 나 스스로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세상은 나를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할 것이다.

상식 또는 상식적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평균의 지식이나 상태를 말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상식이다. 일을 하면 그에 맞는 임금이나 과실을 얻는 것이 상식이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좋은 일을 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그에 합당한 보상이나 칭찬을 받는 것이 상식이다.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국방과 납세의 의무는 돈과 권력의 유무나 많고 적음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게 군대를 가고 소득이 있으면 그에 맞는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상식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상식적인 민주주의 국가이다. 하지만 그 상식이란 단어는 모든 국민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는 국방과 납세, 교육과 근로의 의무이다. 많은 국민에게 국방과 납세는 의무이지만 교육과 근로는 의무가 아니라 미치도록 갖고 싶은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돈과 권력을 가진 소수의 국민에게는 국방과 납세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 사항이며 교육과 근로는 그들만의 권리이다.

이젠 애국가를 부를 일이 없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남녀 주인공이 다툼을 벌이다 애국가가 나오자 일어서서 애국가가 나오는 방향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그랬다. 중학교 때 학교를 마치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다 재수 없게 오후 5시나 6시에 걸리면 꼼짝없이 '길이 보전하세'라는 애국가 마지막 소절의 '땡'구호가 나올 때까지 꼼짝없이 2분 가까이 '얼음'이 되어야 했다.

경찰이 단속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라는 '얼음' 구호가 나오면 다들 멈추어 섰다. 그 애국가를 무시하고 가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괜히 눈치가 보이고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국민으로 보일까 거룩하게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읍사무소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난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 부를 일도 없다. 또한 언젠가부터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지 않는다.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6학년 때 마을 대표로서 현충일에 마을 아이들 집에 태극기를 달았는지 달지 않았는지 검사하던 어린이는 30년이 지나 마이너리티가 되어 정부 비판 성향이 강하고 애국심이 희박한 40대의 소위 '진보 좌빨'이 되었다.

윈스턴 처칠은 20대에 진보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40대에 보수가 아니면 뇌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난 20대에 심장이 없이 살았고 지금은 뇌가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바뀐 것인지 우리 사회 상식을 창조 가공해 가는 '내부자들'이 날 이렇게 바꾼 것인지 아직 난 잘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http://blog.naver.com/myoung21)에도 싣습니다.



#내부자들 #마이너리티#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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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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