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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당 표구사 이진수 대표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수아당 표구사 이진수 대표 수아당 표구사 이진수 대표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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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불화'들이었다. 크지 않은 사무실에서 불교의 정취가 흠씬 느껴졌다. 표구사마다 특기가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 중간 중간에 환한 미소로 불경을 읽어주며,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표구업계에서는 '10년, 20년 표구를 했다'고 하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긴 세월을, 인생을 표구에 쏟아 부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수아당'의 이진수씨도 마찬가지였다. 21살, 화가의 부푼 꿈을 알고 서울로 상경을 했다가 시작한 표구를 3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기술은 하나있어서 밥은 먹고 산다'는 생각에 표구를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 업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수아당'을 연 지도 19년이 되었다. 10월말 표구와 함께 살아왔고, 표구와 함께 살아갈 이진수씨에게서 표구란 무엇이고, 표구의 작업과정은 어떠한 지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표구와 액자는 어떻게 다를까

길 가던 사람들에게 "표구를 뭐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면, 열에는 열 "액자를 끼우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표구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 표구는 그보다 더 폭넓은 개념이다. 서(書), 화(畵), 자수, 탁본, 섬유공예, 사진 등의 작품들을 보존, 보관, 전시, 완상을 위하여, 작품에 종이나 비단을 발라 꾸민 다음 나무와 기타 장식을 해서 족자, 액자, 병풍, 첩, 두루마리 등을 만드는 과정과 방법을 말한다. 작품을 보완, 재생하는 것까지도 표구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런 전통표구에 변화가 찾아왔다. 일본문화와 용어가 들어온 것이다.

"표구는 일본식 이름입니다. 표구로 불리기 이전에는 장황 내지 표장, 장배라고 불렀어요. 흔히 표구하면 액자, 족자 정도를 생각하는데, 첩이라고 하는 책까지를 다 포괄했던 말입니다. 세부화하면 형태도 더 다양합니다. 첩에는 화첩도 있고, 서첩도 있습니다. 족자에도 평족자, 명족자, 이중선족자, 복륜족자, 당족자 등 다양한 양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통표구와 현대에 많이 하는 액자와는 어떻게 다를까?

"표구와 액자작업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할 수 있지만 달라요. 집으로 비유해보면 액자는 추위와 더위를 그대로 느껴야하는 판넬 집 같은 거예요. 표구는 난방도 냉방도 잘되는 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온돌로 된 집 같은 거죠. 판넬 집으로 작품을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표구는 작품 보존의 기능이 강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진수씨는 표구 작업을 하다보면 선조들의 지혜를 많이 느끼게 된다고 했다. "참 존경스럽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진정성이 묻어났다.

표구에서 제일 중요한 작업은 배접이다. 풀칠한 한지를 작품 뒤에 붙이는 작업을 말한다. '초배'라고 해서, 맨 처음 작품 뒤에 풀칠한 한지를 붙여서 건조 판에 말린 다음, 수차례를 반복하는 것이다. '배접'이 진행되고, 구겨진 작품이 쫙 펴진 다음에, 족자, 병풍, 액자 등의 형태의 '표구'작업이 진행된다. 배접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배접이 잘 안 이루어지면 작품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구 장인들이 무엇보다 신중하게 진행하는 이 작업을 한다. 장인들은 먹 빛깔, 재료의 농도만 보고도, 풀의 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작품이라고 해서 다 같은 작품이 아니잖아요? 고서화와 신화가 달라요. 색을 만드는 방법도 다르죠. 분채, 석채, 채묵 등이 있어요. 여기에다 아교, 물, 화공약품들을 혼합해서 쓰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리고 배접을 하고나면 좋은 먹인지, 상한 먹인지를 금방 알 수 있어요. 상한 먹으로 배접을 하게 되면 배접지에 색이 배여 나오게 돼요."

[배접과정]

한지에 풀을 바르고 '들대'로 든다
▲ 배접과정 1 한지에 풀을 바르고 '들대'로 든다
ⓒ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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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문질러서 풀이 먹은 한지를 작품에 부착한다
▲ 배접과정 2 솔로 문질러서 풀이 먹은 한지를 작품에 부착한다
ⓒ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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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접을 한 후 건조판에 말린 다음, 다시 배접을 한다. 이런 과정을 여러차례 진행한 후, 족자, 병풍, 액자 등 다양한 형태로 표구를 진행한다.
▲ 배접과정 3 배접을 한 후 건조판에 말린 다음, 다시 배접을 한다. 이런 과정을 여러차례 진행한 후, 족자, 병풍, 액자 등 다양한 형태로 표구를 진행한다.
ⓒ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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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재료에 대한 연구가 중요합니다"

이진수씨는 무엇보다 재료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작품의 재료를 잘 알아야 적재적소의 표구 재료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집을 지으려면 그 용도에 맞는 재료를 써야합니다. 바닷가에 있는 집이라면 해풍에 견딜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하고, 습기가 많은 곳은 습기를 견딜 수 있는 집을, 뜨거운 지역은 더운 곳에서 견딜 수 있을 지어야 합니다. 용도에 맞게 재료를 써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어요."

종이만 봐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한지와 양지로 분류하지만, 한지도 종류가 다양하다. 어느 나라에서 생산되었느냐에 따라 종이의 질도 다르다. 일본의 종이가 '습기'에 강하다면, 우리 종이는 두루 강하지만, 특히 '건기'에 강한다고 한다.

풀도 마찬가지다. 흔히 도배에 쓰는 '밀가루 풀'과는 조금 다르다. 전통 표구에서 쓰는 풀은 물통에 밀가루를 남기고, 거기에서 나온 누런 물을 여러 차례 갈아주면서 정성스럽게 만든다. '밀가루 풀'과 '전통 표구용 풀'은 농도에서 차이가 난다. 또한 이 과정을 '삭힌다'고 표현하는데, 잘못해서 '썩게 되면' 그 풀은 쓸 수 없게 된다. 부패한 풀로 문화재를 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풀을 만드는 과정은 이처럼 정성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표구는 재료를 잘 선택해야 하는 작업이어야 하는 만큼, 문화재 수리 때에는 재료를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만큼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문화재 경우에는 표구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이를테면 두루마리를 만드는데 쪽 염색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발품을 팔아서 그 색을 구해야하고, 염색 작업도 해야 합니다. 그런 준비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 작품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전통재료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한 탓인지, 전통재료를 생산하는 곳이 없어지고, 기술인의 맥이 끊어지는 모습에서 아쉬움을 느낀다는 말을 큰 한 숨과 함께 내뱉었다.

문화재 표구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값 매기는 것'

문화재 수리는 '문화재 수리 기능자'들이 다루게 된다. 이진수씨는 거기의 한 분야인 '표구 기능사'이다. 역사의 무게가 그대로 스며져있는 문화재를 다루는 만큼, 문화재를 다룰 때의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기본에 충실하려고 애씁니다. 그러지 않고 임의대로 한다면 위험이 많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작업 공정의 일부를 생략한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싸늘해집니다. 작품의 생명에 큰 지장을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아무리 예뻐도 내실이 중요하지요."

'온고지신'이라는 말을 가슴에 되새기며, 기본에 충실하면서 변화를 꾀하려고 애쓴다고 말하는 그. 그런 그가 문화재 표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문화재를 값으로 매겨야하는 현실이다.

"자동차 수리할 때보면 자동차 단가표가 있어요. 그런데 문화재 수리에 그런 단가표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거북선을 재현한다고 할 때 그 단가를 어떻게 매길 수 있을까요? 거북선과 가장 유사한 나무, 가장 유사한 가공법을 쓰면 완전히 가격이 달라지게 돼요. 작품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과연 단가표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가끔씩 이런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문화재를 소중히 다루는 사람. 그래서 그가 표구 장인들에게, 그리고 그 작품을 보관하는 일반인들에게 남기는 말은 "오늘날 내가 만지는 작품들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라"이다. 표구는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일이며, 한 시대의 문화를 지켜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관리해서 보존하면, 역사로 남는다고 당부했다. 고려청자에 흐르는 천년의 빛에 우리가 감탄할 수 있는 것은 그 빛깔을 잘 보존하기 위해 애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만지고 있는 작품들이 몇 백 년 뒤에 천년의 빛을 고이 품은 '고려청자'가 될 수 있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문화재를 다루자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의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문화재를 지키고 가꿀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문화재를 보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좋겠어요. 한국표구협회에는 전통을 지키면서 평생 표구를 천직으로 알고 일해오신 훌륭한 분들이 많아요. 훌륭한 장인들에게 동산문화재, 지류문화재를 보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시면 좋겠어요. 이들을 우리 문화를 지키는 자원으로 활용해서, 우리 문화재가 후손에게 잘 물려줄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며 이진수씨에게 '수아당'의 뜻이 뭐냐고 물으니, '지킬 수', '싹 아', 싹을 지키는 집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에도 책상에 붙어 있던 글귀는 '항심'이었다고 한다. 변함없는 사람,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 되자는 뜻이었다. '수아당'이라는 이름도 그렇게 나왔다. 처음 표구사를 열었을 때, 그 마음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쉽지 않은 표구 장인의 길, 싹을 지키는 마음을 잃지 않고 하길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 (재)종로문화재단과 함께 무지개다리지원사업 문화지구사랑방 문.지방.의 일환으로 기획한 "장황의 기록, 손의 기억' 展을 준비하면서 취재한 인터뷰입니다. 행사 도록에 중복게재 됩니다.



태그:#표구, #장황, #수아당, #이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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