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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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0월 29일 오후 경북 포항 영흥초등학교를 찾아 선친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흉상에 인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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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의 친일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하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침묵에 들어갔다.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김 대표는 부친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친일 행적을 덮으려는 여론전에 발 벗고 나섰다. 지난달 26일엔 언론에 '고 김용주 선생의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입장'이라는 해명 자료를 냈고 김 전 회장이 한글 교육을 하는 등 민족 운동에 적극적이었다는 내용이 담긴 부친의 평전도 배포했다.
지난달 29일에는 김 전 회장이 설립한 경북 포항 영흥초등학교를 방문해 부친의 흉상 앞에 평전을 바쳤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요새 좌파들에 의해 아버지가 친일로 매도되고 있다, 내가 정치를 안 하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자식 된 도리로서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히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독립군 자금도 많이 댔다'는 말을 들었다, 과거를 들춰내 과장하고 왜곡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부친이 친일파가 아니었다는 근거로 영흥초등학교를 설립하고 야학을 개설해 한글을 가르친 점, 치안유지법으로 검거된 전력이 있다는 점, 신간회 활동 경력 등을 제시했다.
부친의 평전 내용과 김 대표의 주장만 보면 김 전 회장은 항일 운동을 했던 애국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변절 이후 부친 행적엔 눈감은 김무성사실 김 전 회장이 일제강점기 후반까지 항일운동에 나선 것은 맞다. 문제는 김 전 회장이 변절해 친일 반민족 행위에 나섰던 1940년대 이후다. 친일로 돌아선 김 전 회장은 일제에 군용기 헌납운동에 앞장서고 청년들에게 미·영 연합군 격멸에 나서라고 선동했다.
그런데도 김 대표는 부친의 1940년 이후 행적에는 애써 눈을 감고 있다. 김 전 회장의 평전에도 이런 내용은 쏙 빠져있다. 변절 이전의 행적만을 부각해 친일 행위를 덮으려는 역사 왜곡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 대표의 이 같은 은폐 시도는 오히려 일을 키웠다. 김 대표의 반격에 여론의 관심은 집중됐고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김 전 회장이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도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일본으로 끌려간 재일교포들을 비난하는 등 친일 발언을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관련 기사 :
'좌파 탓' 김무성, 부친 해방 후 친일 발언엔 침묵)
또 김 전 회장은 주일공사(현 주일대사)였던 1950년 재일교포를 겨냥해 "추잡한 행동을 해서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비하하면서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우리가 머리를 숙여야 할" 대상으로 지칭한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관련 기사 :
김무성 부친 김용주 1950년엔 "재일교포 추잡한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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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0월 29일 오후 경북 포항 영흥초등학교를 찾아 선친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흉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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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가 부친의 친일 행적을 지우려 할수록 오히려 더 많은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김무성의 무모한 과거 은폐 시도김 대표가 부친의 친일행위를 솔직히 시인하고 사과했다면 어땠을까. 사례가 없지 않다.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열린우리당 의장이던 2004년 부친이 일본 헌병 오장 출신이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뒤 사흘 만에 당 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독립투사와 유가족에게 사과와 용서를 구한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같은 당 홍영표 의원도 지난 8월 조부의 친일행위에 대해 인정하면서 "저는 민족 앞에 당당할 수 없는 친일 후손이다.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행적들은 잊지 마시되 그 후손은 어떤 길을 걷는지 지켜봐 달라. 저는 조부의 행적을 원망하지만 조국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겠다"라고 사과했다.
이 같은 과거 인정과 고백이 비판 여론을 다 잠재우지는 못했지만 용기 있는 고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대표는 반대로 가고 있다. 김 대표 부친의 친일 행적 지우기는 오히려 부친의 친일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의 기록은 물론 부친이 정치인으로 활약했던 1948년 이후 기록 등 김 대표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친일 발언과 행적이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김 대표가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부친이 일본 <아사히신문>에 군용기 헌납을 독려하는 기명 광고를 게재한 역사적 기록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숨기고 싶은 과거를 지우고 거짓으로 미화하는 것은 실패가 예정된 무모한 시도다. 김 대표가 억지를 부릴수록 이는 두고두고 대권을 꿈꾸는 김 대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하루빨리 부친의 친일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지금 김 대표에 필요한 건 용기 있는 고백과 사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