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늦깍이로 아이 셋을 연달아 낳고 나니 '불청객'이 찾아왔다. 막내 출산에 임박해 오르기 시작한 혈압이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임신성 고혈압'이라 생각하고 일시적이겠거니 했는데 출산 이후 1년이 지나도록 혈압이 잡히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혈압이 높으면 당장이라도 큰 일이 나는 것마냥 즉시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들 중에는 한 번 혈압약을 먹으면 평생을 끊지 못하니 다른 방법으로 혈압을 잡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당장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람이나, 두고 보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사람이나 고혈압이 심각한 병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결국은 병원에 갔다. 병원 도착하자마자 혈압을 재니 수축기 혈압 170이 나왔다. 의사는 당장 혈압약 복용이 필요한 수치라고 했다. 의사는 고혈압의 원인을 의학적으로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했다. 게다가 고혈압 환자 10명 중 9명은 '본태성 고혈압' 즉, 유전적으로 타고 난다고 했다. 그러니 병의 뿌리를 찾고 정확한 처방을 통해 완치한다는 개념은 애당초 고혈압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정상수치라고 일컬어지는 '120-80'을 어떻해든 유지시키는 것, 다시 말해 치료가 아니라 약물을 통한 평생의 관리가 최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혈압은 몸의 상태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몸을 움직인 이후나 긴장된 상태에서 재면 당연히 높게 나온다. 평온한 상태에서 재면 높았던 혈압이 다시 떨어진다. 응당 병원에서 재는 혈압은 보통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 진료 대기 중인 환자는 으레 긴장하기 마련이기까.

그렇게 본다면 혈압 때문에 몸의 상태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몸의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혈압이 바뀌는 것은 아닐까. 진짜 치료를 하려면 혈압을 높이는 몸의 상태를 먼저 살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고혈압의 대부분이 유전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하니, 사람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고혈압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이거 이거 생각할수록 어리둥절할 뿐이다.

고혈압의 불편한 진실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 표지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 표지 ⓒ 에디터
마쓰모토 미쓰마사의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는 고혈압에 대해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나의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다. 40여 년 동안 10만 명 이상을 진료한 끝에 필자가 내린 결론은 "약간 신경 쓰이는 정도의 혈압이 큰 병을 일으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는 "고혈압이 국민병이라는 새빨간 거짓말이 퍼져 수많은 사람들을 환자로 만들고 있다"며 "고혈압증이야말로 제약회사의 이익 때문에 만들어진 허구의 병"(13쪽)이라고 주장했다.

고혈압을 소리없이 찾아오는 '죽음의 암살자'로 알고 있는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이야기다. 그는 어째서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일까.

첫 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기준치'다. 한국에서는 정상수치를 '120-80'으로 본다. 일본에서는 2011년 현재 '130-85'다. 1987년에는 '180-100'이었다. 그러니까 1987년에는 수축기 혈압 180도 정상이었던 셈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나는 고혈압 환자가 아니게 된다. 이것부터가 이상했다. 기준치를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고혈압 환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는 것이다. 이 무슨 요지경 같은 이야기란 말인가.

일본에서는 고혈압 기준치가 불과 8년 사이에 50mmHg(밀리미터 수은주)나 낮춰졌다고 한다. 일본의 고혈압 기준치는 '일본고혈압학회'라는 조직에서 결정하는데 '고혈압 치료 가이드라인'을 5년 마다 개정 발표하고 있다. 그때마다 고혈압 기준치가 내려갔다. 이 때문에 1980년대 후반에는 230만명이던 고혈압 환자가 지금은 5500만명으로 늘었다. 무려 20배 이상의 증가율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고혈압 수치가 그렇게 크게 낮아진 것일까. 고혈압의 위험성에 대한 획기적인 의학 연구라도 나왔나. 저자는 "고혈압과 관련된 통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는 수없이 발표되었어도, 고혈압 수치를 낮출 만한 획기적인 연구는 보지 못했다"(23쪽)고 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고혈압 수치와 관련된 조작 사건이 발생해 열도가 들끓기도 했다. 2013년 7월 도쿄 부립의대, 도쿄 자애회 의대, 지바 대학, 시가 의대와 제약회사 노바티스파머가 짜고 혈압약 데이터를 조작한 사건이다. 문제가 된 약품은 일본에서 널리 판매된 '발사르탄'이라는 혈압약이다.

나중에 해석 데이터를 실은 논문이 조작되었고, 이 연구팀에 대학 비상근 강사라는 직책으로 제약회사 직원이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혈압학회는 "부정한 데이터 조작은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2014년 1월 후생노동성은 노바티스파머를 약사법 위반으로 도쿄 지검에 고발했다.

2008년 3월 30일자 <요미우리 신문>에는 '지침 작성 의사 90%에게 기부금 전달, 제약회사로부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내용은 고혈압이나 고콜레스테롤 등의 가이드라인을 만든 276명 가운데 87%인 240명이 제약회사로부터 기부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2004년 고혈압 가이드라인의 경우, 위원 아홉 명 전원에게 총 82억여원이라는 거액의 기부금이 전달된 것(45쪽)으로 드러났다.

저자는 "혈압약이야말로 제약회사에 아주 매력적인 약이고 약간의 조작만으로도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수단"이라며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의약품이 제약회사, 학자, 미디어의 유착관계에 의해 이익만을 최우선시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고(41쪽) 개탄했다. 또한 "건강 진단 후 의사로부터 갑자기 '혈압이 높다'는 선고를 받으면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가 바뀌고, 기업은 떼돈을 벌고, 결국은 그 돈을 국민이 내는 셈"이라며 "그러므로 우리는 눈을 더 크게 뜨고 살피면서 목소리를 높여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해야 한다"고(61쪽) 주장했다.

고혈압 위험론은 과장됐다

고혈압에 대해 두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고혈압이라는 증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저자는 혈압이 높으면 뇌졸중을 유발한다는 말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뇌졸중은 뇌의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 뇌의 혈관이 찢어져 출혈을 일으키는 '뇌출혈', 뇌 표면의 혈관에 생긴 혹이 터져서 지주막이라는 수막 아래에 출혈이 발생하는 '지주막하 출혈'로 나뉜다.

뇌졸중을 일으킨 사람의 대다수는 '뇌경색'이다. 일본의 경우 1999년 조사에 따르면 뇌경색이 84%, 뇌출혈이 13%, 지주막하 출혈은 3%다. 따라서 고혈압과 뇌경색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면 고혈압이 정말로 뇌졸중을 유발하는 주된 요인인지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뇌경색은) 오히려 혈압이 낮을 때 발생하는 질환이다. 뇌혈관이 막히면 몸은 사력을 다해 혈류의 강도를 높여 피의 응고물을 흘러보내려한다. 즉 혈압을 높여 피의 흐름을 빠르게 함으로써 뇌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고혈압 때문에 뇌경색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뇌경색이 발생했기 때문에 혈압을 높여 낫게 하려는 작용'인데, 원인과 결과를 반대로 해석한다. 이때 혈류가 약해져서 피의 응고물을 떠내려 보내지 못하면 바로 뇌경색에 이르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조금만 생각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70쪽)

도카이 대학 의학부 명예교수인 오구시 요이치의 연구에 따르면 혈압약을 먹은 사람은 먹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경색 발생률이 두 배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후쿠시마 현 고리야마 시에 사는 남녀 4만 명의 건강검진 데이터를 전국의 데이터와 비교해 연구한 결과, 혈압약이 오히려 뇌경색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저자는 노인들의 혈압약 복용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오히려 혈압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뇌 활동을 저하시키고 치매를 일으킬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동맥은 혈액 양에 맞추어 유연하게 혈관을 확장하거나 수축시키면서 심장 혹은 뇌 같은 장기나 근육 등의 조직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한다...(중략)...동맥이 딱딱해지면 확장과 수축이 힘들어지고 그만큼 혈액을 보내기도 어려워진다. 뇌나 손발 끝까지 혈액을 보내기 위해 심장은 혈압을 높여 기세 좋게 피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동맥경화는 나이를 먹을수록 심해진다. 그에 맞춰 심장도 혈압을 높인다. 따라서 나이를 먹을수록 혈압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같은 자연 현상을 약으로 낮춘다면 뇌나 손발 끝까지 피가 돌지 않아 멍해지거나 현기증을 일으키게 된다.'(88~89쪽)

저자의 설명으로 본다면, 노인의 고혈압은 생명 유지를 위한 몸의 정상적인 반응인 셈이다. 저자는 혈압이 나이를 먹으면서 함께 오른다는 것은 의학상식인데도 20세 청년이건 80세 노인이건 전부 뭉뚱그려 똑같은 혈압 수치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의학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연령별로 기준치를 설정하기 보다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환자수를 늘리기 때문이다.

이 모든 내용은 '혈압은 높으면 안되고 낮을수록 좋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몸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이를 퇴치하기 위해 열이 나는 것처럼, 혈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은 몸의 자기조절기능이 발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인체의 모든 반응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혈압에 대한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저자는 혈압이 오르지 않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평상심을 유지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웃음이다. 웃음은 뇌를 건강하게 하고 면역력을 높여줘 혈압과 혈당을 정상치로 돌아오게 한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혈압에 무관심해지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저자는 "항상 혈압을 걱정하고 몸에 좋은 식사를 하며 진지하게 운동하는 것은 오히려 부정적 사고로 연결되어 건강을 해치는 것"이라며 "건강에 무관심해도 부정적 사고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결국 온 몸에 좋다"고 강조한다.

의학분야는 워낙 전문적이어서 정보의 불균형이 심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말만을 맹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편견을 경계하면서 본인에게 맞는 처방전을 찾아가려면 환자 입장에서도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 과정의 일환으로 이 책을 의미있게 읽었다.

사실 나는 처음 진료 받은 한 달 동안은 혈압약도 먹고 매일 혈압도 체크했다. 혈압은 '정상수치'로 돌아가지 않았고 의사는 분명히 투약량을 늘리자고 할 터였다. 그러다 그만 두었다. 한번 먹으면 평생 끊을 수 없다는 '혈압약의 불랙홀'에 빠지느니 다른 길을 찾자고 마음 먹었다.

약을 먹는 대신 고혈압에 효능이 있다는 허브차를 물 대신 마시고, 틈틈히 몸의 면역력과 컨디션을 높여주는 스트레칭이나 운동을 했다. 먹는 양은 이전보다 줄였지만 공격적으로 식이요법을 하지는 않았다. 그것마저도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았다.

고혈압에 대처하는 나의 원칙은 딱 하나. 고혈압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자는 것이다. 집에서 쓰던 혈압계도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운 것도 그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마쓰모토 미쓰마사 지음 / 에디터 펴냄 / 2015.7. / 12,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 - 당신이 몰랐던 고혈압의 충격적 진실

마쓰모토 미쓰마사 지음, 서승철 옮김, 에디터(2015)


#고혈압#혈압약#뇌졸증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