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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인도 전통 의상 사리를 차려입고 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북인도 올드 코사니 아낙네들.
 화사한 인도 전통 의상 사리를 차려입고 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북인도 올드 코사니 아낙네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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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결혼식이 있는데 함께 갈래요?"

민박집 주인이 말끔하게 차려 입고 내게 말했다. 친척집에서 전통 혼례식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일전에 뉴 코사니 상가의 철물점 부럼씨의 조카 결혼식을 다녀왔던 터라 잠시 망설이다가 그에게 물었다.

"결혼식이 어디서 있습니까?"
"올드 코사니요."

나는 올드 코사니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올드 코사니 사람들은 내가 매일 아침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서로 '나마스테' 인사를 주고 받아가며 안면을 익힌 사람들이 꽤 있다. 더러는 나를 집안으로 불러 들여 짜이를 권하기도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거기다가 신랑 집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신부 집 혼례식에 초대되어 갔었다. 신랑 집에서는 어떤 잔치가 벌어질까 궁금했는데 잘 됐다 싶었다. 나는 마치 낯선 동네로 이사와 생활하다가 잔칫집에 나서는 기분으로 비노트씨를 따라 나섰다.

결혼식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남자들
 결혼식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남자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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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사들을 앞세워 신부를 맞이하고 있다.
 악사들을 앞세워 신부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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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 도착 하는 시간에 맞춰 잔칫집에 들어서자 나를 알아보는 올드 코사니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며 둘러보았다. 마당에서 올렸던 부럼씨네 조카의 혼례식처럼 혼례식장이 따로 없었다. 너른 옥상에 예식에 필요한 몇 가지 성물을 준비해 놓은 것이 전부였다. 신부집 결혼식장에서도 그랬듯이 동네 아낙네들은 화려한 사리를 차려 입고 잔치 집 구경꾼으로 신부를 기다리고 있고, 남자들은 집 뒤에 모여 음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전통 음악소리와 함께 마을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신부를 데리러 갔던 전세 버스가 예식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버스가 도착하자 악사들이 직접 연주하는 전통 음악에 맞춰 마을 청년들이 한바탕 춤판을 벌여가며 잔치 분위기를 돋군다.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가마에 올라타는 신부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가마에 올라타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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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과 함께 가마에 내려 식장으로 들어서는 신부.
 신랑과 함께 가마에 내려 식장으로 들어서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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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장식이 달린 예복을 차려 입은 신랑과 함께 따로 승용차를 타고 온 신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가마에 올라탄다. 신부 집에서 한 차례 혼례식을 올리고 왔을 신랑은 가마에 탄 신부를 데리고 반짝이 장식물로 치장한 비좁은 길목을 지나 옥상 혼례식으로 오른다. 가마에서 내린 앳된 신부는 여전히 잔뜩 굳은 표정이고 신랑은 한껏 웃고 있다. 비노트씨에게 신부의 나이를 물었다.

"신부의 몇 살입니까?"
"열여덟이라고 합니다."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시의 혼례식과는 달리 인도의 가난한 집안 시골 결혼식은 단출하고 소박하다. 여자들은 인도의 전통의상인 울긋불긋한 사리를 차려입었고 남자들은 평상복 차림이다. 신랑 신부가 부모를 모시고 단출한 예식을 올리고 있는 사이 한 옆에서는 신명나는 춤판이 벌어진다.

예식을 올리는 한 옆에서 마을 청년들이 신명나는 춤판을 벌이고 있다.
 예식을 올리는 한 옆에서 마을 청년들이 신명나는 춤판을 벌이고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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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는 신혼 방으로 들어서는 계단에 놓여진 떡과 동전을 밟고 올라선다. 신혼 방 입구에서는 신부 측 집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신랑에게 그랬던 것처럼 신혼 방 앞에서 여자들이 막아선다. 머리에 작은 물 항아리를 이고 들어서는 신부와 신부 측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돈 봉투가 오가고 마침내 신부는 신랑과 함께 신혼 방에 들어선다.

신혼 방 앞에서 신랑 측 사람들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신혼 방 앞에서 신랑 측 사람들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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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을 마치고 조촐한 음식으로 식사하는 사람들
 예식을 마치고 조촐한 음식으로 식사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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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가 신혼 방으로 들어서면서 모든 예식이 끝났다. 예식을 마치자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식사를 한다. 신부 집에서도 그랬듯이 신랑 집에서도 식사는 남자들부터 먼저 한다. 잔치 음식은 아주 소박하다. 장작불을 지펴 남자들이 준비하는 온갖 향신료가 들어간 수프와 얇은 밀가루 빵, 짜파티와 요구르트 종류의 음식이 전부다. 대부분 평상시에 식사하는 음식들이다.

마을 사람들 틈에 끼어 식사를 하고 나서 잔칫집을 빠져 나와 길 따라 걸었다. 결혼식을 본 기분이 즐거워야 하는데 가슴이 아프다. 조금 전 어린 신부의 무표정한 표정이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즐거운 결혼식, 엄니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그 신부의 얼굴에 새색시 였던 우리 엄니의 얼굴이 겹친다. 열아홉에 시집와 8남매의 지식을 낳고 도중에 하나를 잃었던 우리 엄니.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낯선 마을에 갓시집와 첫날 밤을 보내야 했던 열아홉 엄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지금 인도의 어린 신부가 그런 마음일 것이었다.

내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던 인도 신부의 표정을 지워내 가며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디선가 인도의 전통 음악 소리와 함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걸음이 빨라진다.

예비 신부집 마당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떠돌이 무희와 악사들.
 예비 신부집 마당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떠돌이 무희와 악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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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외딴집 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그 소리에 이끌리듯 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악사 둘과 두 명의 무희가 현란한 춤을 선보이며 노래를 하고 있다. 무희 중 한 사람은 여장을 한 남자처럼 보인다. 젬베처럼 생긴 작은 북과 다 낡은 아코디언의 연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 소리가 구슬프다. 한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내에게 물었다.

"어떤 행사입니까?"
"이 집 신부가 나흘 후에 결혼합니다."

한바탕 춤과 노래를 부르던 무희들 중에 하나가 스무 살도 안돼 보이는 예비 신부의 머리에 쌀을 뿌리며 축복을 내려주는 것으로 행사를 마친다. 조촐한 행사가 끝나자 신부 집에서 행사 비용으로 돈을 지불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밀이나 콩 등의 다양한 곡식과 양념거리를 내준다.

그들은 곡식을 챙겨 들고 바삐 떠난다. 다른 마을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집시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있는 그들의 뒷모습이 슬퍼 보인다. 조금 전 신명나는 연주에 맞춰 춤을 춰가며 노래를 부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춤과 노래로 예비신부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그 대가로 곡식을 받고 있는 악사와 무희들.
 춤과 노래로 예비신부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그 대가로 곡식을 받고 있는 악사와 무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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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보다 더 슬퍼 보이는 사람이 있다. 서둘러 떠나는 악사들과 무희들의 뒷모습을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는 예비신부다. 조금 전 예식장에서 잔뜩 긴장해 있던 신부의 표정과 다르지 않다. 결혼을 앞둔 설렘이나 기쁨보다는 불안한 표정이다.

인도의 시골마을 신부들은 도시 신부들과 그 처지가 다르다. 도시 신부들은 자유연애로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인도의 시골에서는 오래전 우리의 관습이 그랬듯이 성격이나 사람 됨됨이조차 모른 채 집안에서 정해준 남자와 중매로 결혼한다. 평생 힌두교리에 얽매여 스무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시집을 가야 하는 운명이다.

하지만 이들의 불행과 행복을 어떻게 이방인의 시선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오랜 관습 혹은 부유하거나 가난으로 행복과 불행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사람살이가 아니던가. 내가 알고 있는 저들의 삶의 방식은 단지 사진 몇 장에 불과할 뿐이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북인도 코사니, #전통혼례식, #신랑집, #예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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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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