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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늦가을, 필자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국민학생이 그 뜻을 새기기엔 너무 어려운 '총력안보의 해'였습니다.
1972년 늦가을, 필자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국민학생이 그 뜻을 새기기엔 너무 어려운 '총력안보의 해'였습니다. ⓒ 임윤수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나서고,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나서더니 이젠 국립대학총장들까지 나섰습니다. 그들이 나선 건, 근무조건을 개선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월급을 더 올려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역사를 가르치는 교육은 전리품이 아닙니다. 전리품이 돼서도 안 됩니다. 그러함에도 어떤 정권은 교육을 전리품 취급하듯 권력을 행세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슬픕니다. 역사교육이 오롯이 교육이지 못하고 한국현대사를 읽는 또 하나의 역사가 되고 있다는 게 슬픕니다.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지은이 김한종 / 펴낸곳 (주)도서출판 책과함께 / 1판 1쇄 2013년 10월 4일 / 값 25,000원>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지은이 김한종 / 펴낸곳 (주)도서출판 책과함께 / 1판 1쇄 2013년 10월 4일 / 값 25,000원> ⓒ 김한종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지은이 김한종, 펴낸곳 (주)도서출판 책과함께)는 한국현대사와 함께한 역사교육 70년을 더듬어 담은 발자취입니다. 책 뒷면 겉표지에 확 드러나 보이는 '19세기 교실에서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쳐 온 20세기 역사교육사를 통해 현대사를 재구성한다'는 글이 이 책의 내용을 대변해 줍니다. 

필자는 '국민학교'를 입학해 '국민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국민학교'라는 말을 사용할 때 1921년생인 어머니는 '소학교'라는 말을 썼습니다. 딸은 '초등학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 내야하는 '육성회비'를 달라고 할 때 어머니는 '월사금'이라며 줬습니다.

같은 학교인데도 어머니께서는 '소학교'라고 했고, 우리 형제는 '국민학교'라 했고, 요즘엔 '초등학교'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리 현대사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은 우리나라 현대사,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미군정, 독재정권, 민주화운동 등 이어진 현대사 만큼이나 파란과 우여곡절로 점철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버리는 데 주저했을까? 2012년에는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선거 때마다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국민'이다.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은 "국민을 받들겠다","국민과 소통하겠다","국민을 무서워하겠다" 같은 말을 쏟아낸다.

여기에서 '국민'은 국가, 즉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신민이 아니라, 국가, 즉 권력자가 받들어야 하는 존재다. 역사에서 국민은 실제로 그런 존재가 아니었지만,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름들은  그렇게 가장했다. 실제로는 '국가(권력)에 충성하는 국민'으로 길러내기를 원하지만 겉으로는 '권력자가 봉사를 하겠다는 국민'으로 포장했다. 이 때문에 '국민'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대중에게 다가왔다. -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35쪽

학교 다니며 받은 첫 스트레스는 '국민교육헌장' 암기

지금 생각해보니 필자가 교육이라는 걸을 받으며 뭔가를 외우느라 스트레스라는 걸 받은 첫 번째 경험은 국민학교 2학년 때인 1968년으로 기억됩니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갑작스레 장문의 '국민교육헌장'을 선착순으로 외우라는 강압적 숙제는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스트레스였습니다.

국민학교 2학년 학생에게 393자나 되는 국민교육헌장은, 한꺼번에 외우기엔 벅찬 장문이었습니다. 뜻도 잘 모를 뿐 아니라 평소 잘 사용하지도 않는 말(용어)로 된 글이다보니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달달 외워서 줄줄 읊어야 했습니다. 그때 그렇게 외운 국민교육헌장은 국가주의 이념을 주입하려는 의도된 세뇌였습니다.

1989년,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임을 당해야 했던 저자(김한종,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는 시험문제로 난 국민교육헌장 글자 수를 세느라 도덕 시험을 망친 일화로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역사교육 현장을 열어갑니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은, 일제강점 때는 황국식민을 양성하는 데 악용되었지만 한때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군정을 거치고 들어선 이승만 정권에서는 역사이념이 정부의 통치이데올로기 바뀌고, 5.16 쿠데타로 들어선 박정히 정권은 국가주의 역사관과 역사해석을 반영한 국정 교과서를 개발해 1974년부터 학교에서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정치가 바뀌며 스펙트럼을 넓혀가던 한국사 교과서를 작가의 정부에서는 다시금 국정교과로 하겠다는 의도가 사회적 갈등과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현실이 이 시간 현재 역사교육에서 읽을 수 있는 한국사입니다. 

국정교과서, 역사의 돌부리 될 수 있어

길을 걷다보면 멀쩡히 걷고 있던 사람이 느닷없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손을 쓸 새도 없이 앞으로 콕 고꾸라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내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비틀거리거나 고꾸라지는 사람들 중에는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그러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눈앞에 있는 돌부리를 미처 보지 못해 발이 걸렸거나, 움푹 파여 있는 땅을 보지 못해 발을 헛디디며 중심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홀몸으로 걷다 넘어지는 사람은 혼자만 넘어집니다. 그러나 이인삼각대회를 하듯 이렇게 저렇게 얽혀있는 무리는 결코 한 사람만 넘어지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넘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리로 넘어집니다.

한 나라의 역사는 혼자만 배우는 게 아닙니다. 민족이라는 무리, 국민이라는 집단이 가치와 판단을 달리해 가며 함께 배웁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중요합니다. 획일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대한제국 이전의 역사를 먼 산에 비유한다면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에서 읽을 수 있는 현대사, 역사교육 변천사는 당장 우리가 제대로 봐야 할 돌부리입니다. 제대로 보지 못하는 돌부리 역사는 중심을 잃게 할 수도 있고, 자칫 무리를 고꾸라트릴 수도 있기에 살피고 또 살펴야 할 것입니다.

역사교육이 오롯이 교육이지 못하고, 한국현대사로 읽어야 하는 또 하나의 역사가 되는 현실 속 우리 교육이 점점 슬퍼지고 화가 납니다. 해방 전후부터 교과서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작금까지, 한국현대사를 담아내는 역사교육은 파란만장 우여곡절이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을 통해 지나온 길을 꼼꼼히 되짚어 보며 가야 할 바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지은이 김한종 / 펴낸곳 (주)도서출판 책과함께 / 1판 1쇄 2013년 10월 4일 / 값 25,000원>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 국민학교에서 역사교과서 파동까지

김한종 지음, 책과함께(2013)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김한종#(주)도서출판 책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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