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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지난 15일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아래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개혁을 주제로 하는 논의가 극적으로 타협되었소. 그러면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단어요. 이는 '외부 환경변화에 인적자원이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배분 또는 재배분 되는 노동시장의 능력'(두산백과 참고)을 말하는데, 평가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하오.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추진하고 있소. 그런데 노동시장 유연성 부분에서 우리나라는 그리 점수가 나쁜 나라가 아니오. 좀 쉽게 말하면 노동시장 유연성이 떨어져 기업들이 경영하기 힘든 나라가 아니란 말이오. 오히려 노동자들이 힘든 나라지.

해고의 용이성, 임금의 결정방식과 신축적 조정 가능성, 유연한 근로시간, 노동시장의 인프라 등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개 나라 중에서 3위를 차지했소. 이런 결과는 '포브스(Forbes)'가 2003년에 발표한 자료에 근거한 것이오.

해고가 쉬어진다고?... 그게 블랙기업

 책 <이 회사도 블랙기업일까?> 표지
책 <이 회사도 블랙기업일까?> 표지 ⓒ 개마고원

여보! 이번 타협안에 대해 민주노총과 재야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소.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등에 대한 행정지침이 발표되면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성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소. 14일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이 분신을 시도하면서까지 극심하게 반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오.

근로기준을 유연하게 하겠다는 취지가 해고를 쉽게 하겠다는 데 있지 않겠소. 물론 이것 하나만은 아니지만 말이오.

정부는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거창한 안건을 들고 나왔소. 현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 명백한 잘못이 없는 경우 쉽게 해고할 수가 없소. 즉 해고의 정당성을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앉는 해직자들이 얼마나 많소.

또한 '징계해고' 말고도 '일반해고'라는 걸 둬 임금만큼의 노동을 제공하지 못할 경우 즉, 저성과자의 경우도 해고가 쉬워질 것이란 염려가 있소. 이 경우 노사정이 협의를 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새누리당과 정부는 단독 법안을 들고 나오는 형편이니 협의라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오.

여보! 정부나 기업체는 해고하기 쉬운 경영을 원하고, 노동자는 해고하기 어려운 기업을 원하오. 나름대로의 이유는 충분하오. 하지만 해고하기 쉬운 기업은 블랙기업(고용 불안 상태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불합리한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을 이르는 말로 일본 곤노 하루키가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 기자말)이라 할 수 있소. 시즈미 나오코는 그의 책 <이 회사도 블랙기업일까?>에서 사례를 들며 블랙기업이 어떤 수법을 쓰고 있는지 가르쳐 주고 있소.

'직무역량향상 프로그램(PIP, Performance Improvement Program)'을 역이용하여 퇴직을 강요하는 수법을 쓸 수 있음도 알려주고 있소. 이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회사원의 욕구를 역이용하는 것인데, 무리한 업무지시를 내리거나, 14시간 중노동을 시키고, 트집을 잡아 퇴직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 등이오. 일종의 '미운털 뽑아내기'라오.

'직무역량향상 프로그램'이 쉬운 해고의 무기 될 수 있어

"PIP란 겉으로는 업무개선을 한다는 좋은 명목이지만, 사실상 직원의 퇴직을 유도하기 위한 새로운 구조조정 수법이다. 도저히 달성이 불가능한 업무명령을 내리거나, 실제 내용에 맞지 않는 기준으로 판단하고는 과제 달성이 어렵다고 평가하며 퇴직을 강요하거나, 업무와 관련 없는 프로그램을 반복적으로 담당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본문 26, 27쪽)

실제로 이런 예는 다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소.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쉬운 형태의 해고라오.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가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기업들이 직무역량향상 프로그램(PIP)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도 징계해고를 위한 사유를 축적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이오.

금속노조 현대차 일반직지회 측도 "현업과 직접 연관성이 떨어지는 경영학 이론 수업 등을 받게 하고 과제 평가를 엄격하게 하는 PIP 교육은 해고를 위한 징계 목적의 성격이 짙다"고 반발해 사측과 갈등을 빚기도 했소.

여보!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보다 쉬운 해고를 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자고 말하고 있소. 노동 유연성으로 말하면 OECD 3위인데 말이오.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여 노사정이 차후 합의하겠다고는 하지만, '쉬운 해고'를 양성화하고 노조 무력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소.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매년 비자발적 해고, 즉 징계해고, 정리해고, 권고사직 등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오. 민주노총의 자료를 보면, 해고구제신청 수가 2011년 83만 5906 건에서 2014년 89만 1898 건으로 늘어났소. 해고자수도 4년 새 1만 848명에서 1만 2966명으로 늘어났고.

'쉬운 해고'가 실은 블랙기업의 최고 무기라 할 수 있소. 정부가 기업에 그 무기를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라고 노동자 측은 반발하는 거요. 겉으로야 뭐 기업과 노동자가 상생하는 길이라는 포장을 하지요. 책이 말하는 블랙기업의 수법은 '쉬운 해고' 이외에도 많다오.

▲ 권력형 괴롭힘을 통해 퇴직하도록 유도 ▲ 장시간 노동의 강요 ▲ 정신적 스트레스를 줘 퇴직하도록 공작을 함 ▲ 비정규직을 유지한 채 저임금을 줌 ▲ 관리감독자 제도와 재량노동제의 남용 ▲ 과로 등에 따른 산재 은폐 ▲ 잔업수당 미지급·서비스 잔업 ▲ 사기성 계약 ▲ 급여에서 불법 공제(본문 61~69쪽 요약)

블랙기업, 꼼꼼히 따져봐야

 웃지 못하는 한국노총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열린 노사정위원회 제 89차 본위원회에서 노사정 대표들이 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병원 경총회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웃지 못하는 한국노총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열린 노사정위원회 제 89차 본위원회에서 노사정 대표들이 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병원 경총회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 이희훈

여보! 정부는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대의를 위해 아버지들이 양보하여 아들에게 일자리를 주자고 말하고 있소. 그러면서 은근슬쩍 저성과자의 쉬운 해고라는 '일반해고'를 들고 나왔소. 그러나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일반해고의 정착과 기준을 만들어 법제화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소. 물론 재야와 민주노총은 '쉬운 해고'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거고요.

이 논의는 앞으로 첩첩산중이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정부와 여당은 기업 편이오. 경영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경제를 살리자는 것이오. 그러는 사이 노동자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 수도 있소. 일반해고 외에도 블랙기업을 알아 볼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알 필요가 있소.

▲ 고용불안정- 계약직으로 고용하고 정규적 전환을 약속하는 정규직 희망고문, 인턴·실습·수습을 남발,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이 있소.
▲ 장시간 노동- 야간, 주말 근무 등 초과근무 강요, 시간외수당 미지급, 휴식· 휴가제도 불사용 등이 있소.
▲ 직장 내 괴롭힘- 비인격적 대우, 폭언, 폭행, 성희롱, 성추행, 실적 관리를 위한 압박과 비난, 퇴사를 유도하기 위한 의도적 배제나 무시 등이 있소.
▲ 폐쇄적 소통구조- 의견을 말하거나 문제제기를 할 수 없게 하는 것 등이오.(본문 188쪽)

정부는 노동개혁을 주도적으로 하는 주체일 수도 있지만 블랙기업이 발붙일 수 없도록 만드는 구조의 책임자이기도 하오. 혹 이번 정부 여당 주도의 노동개혁이 노동 개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블랙기업에 대한 연구도 충분히 했으면 좋겠소. 그래서 그야말로 정부, 기업체, 노동자가 상생하는 진정한 기업개혁, 노동개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오.

덧붙이는 글 | <이 기업도 블랙기업일까?>(시미즈 나오코 지음 / 전형배 옮김 / 개마고원 펴냄 / 2015. 9 / 207쪽 / 1만35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이 글에서 말하는 ‘여보’는 제 아내만이 아닙니다. ‘너’요 ‘나’요 ‘우리’입니다.



이 회사도 블랙기업일까? - 블랙기업 피해대응 매뉴얼

블랙기업피해대책변호단 기획, 시미즈 나오코 지음, 아마노 세츠코 그림, 전형배 옮김, 청년, 개마고원(2015)


#이 회사도 블랙기업일까?#시즈미 나오코#노동개혁#쉬운 해고#노동시장유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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