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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인권이 문화, 법률, 언론, 역사, 종교와는 어떻게 연결돼 있을까요. 최근 출간된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철수와 영희, 351쪽)는 사람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라 할 만합니다.

그렇다고 학문적 탐구를 해놓은 어려운 책은 아닙니다. 인권에 대한 이해는 깊게 하면서도 청소년이 읽어도 부담 없도록 쉬운 구어체 문장으로 돼 있습니다.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 (찰수와 영희)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 (찰수와 영희) ⓒ 심규상

이 책은 지난 해 진행된 <인권강사 양성과정> 강의를 묶었습니다. 각 분야 8명의 강사들의 강의 원고(여덟 말의 구슬)를 꿰 보배를 만들었습니다. 인권전문가 8명(김창남, 김희수, 박경서, 안수찬, 오인영, 이상재, 이찬수, 조효제)과의 대화록입니다.

유엔 세계인권도시추진위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경서는 '인권 실천 앞에 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선 성공하고 보자는 1등 지상주의, 돈이면 다 된다는 금전 만능주의를 예로 들며 한국의 인권이 '상당한 수준에 왔다고 할 수 있지만 갈 길이 멀다'고 말합니다. 그는 인권을 주요 가치로 하는 성숙한 문화를 가꾸려면 아이 때부터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를 길러줘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김창남(한국대중음악학회회장)은 문화와 인권을 연결합니다. 대중문화속 차별 문제, 나아가 연예인인 공인의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공인이라고 해서 사적인 부분까지 대중들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나는 서태지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다. 그가 누구와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그것은 사생활일 뿐이다. 이것을 미디어가 다루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대해서 알 권리, 대중의 권리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인영 교수(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역사를 통해서 타인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과 인권의 가치를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과거와 현실에서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즉 '역사를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불의한 힘'을 깨닫게 한다는 거죠.  때문에 오 교수는 '역사를 생각하는 것'은 '무지와의 싸움'이라고 표현합니다.  

조효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북한 문제를 예로 들며 질문을 던집니다.

"유엔에서 발표한 북한인권보고서에 국제사회의 개입을 촉구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북한 정권이 계속해서 주민들의 인권을 탄압하면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는 "국가의 주권도 중요하고 그 나라 국민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인권을 빌미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못 박습니다.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판단해야지, 어떤 게 자기 나라에 유리한지 하는 정치적 역학관계로 판단해서는 안 돼요."

언론인 안수찬(한겨레 21 편집장)은 소외계층의 인권을 힘주어 말합니다. 그가 당부하는 건 '관심'입니다.

"가난에 대해 좀 더 주의 깊게 이웃을 살펴야 합니다. 불쌍하게 생각해도 좋으니까 제발 무관심해 지지는 말자는 거예요."

그는 언론을 바로 세우는 방법에 대해 "가능하다면 스스로 언론사가 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달라"고 당부합니다.

이상재 지역인권운동가(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삶의 현장이 곧 인권현장'임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그는 대전의 민간인 집단학살 지역과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라 할 수 있는 충북 영동군 용화면 사례를 소개하며 "여러분이 사는 지역을 인권의 눈으로 유적과 인물 찾기를 시도해 보라"고 권합니다. 그는 "인권은 곧 여러분의 삶"이라며 "멀리 갈 필요가 없고 주머니 속 스마트폰, 또는 매일 지나치는 동네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김희수 전 검사가 말하는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권리'는 법과 인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합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선입견을 버리고 잘 들으라"며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수사에 협조할 의무가 전혀 없고 오히려 거부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그는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을 비판하며 수사를 잘 받는 '자기 방어 매뉴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찬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HK연구교수는 "사람이 안식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는 예수의 말을 인용해 종교를 통해 사람, 인권을 설명합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인권에 대한 설명과 함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늘 기억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면 가장 먼저 자신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고 "자기 자신을 존중하면서 누구도 함부로 여기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라"고 또 말합니다.

따지고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사회야말로 인권이 충만한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오창익 사무국장이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인권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입니다. 여기에 제 말을 보태자면 살며 생각해온 '인간답게 사는 법'이 다시 말을 걸어옵니다. 그동안 생각해온 인권에 대한 헝클어진 사유의 파편들을 차분히 정돈해 주는 책입니다.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

박경서 외, 철수와영희(2015)


#인문학#인권#철수와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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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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