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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IMF가 터졌다. 아이의 꿈도 내 꿈도 물거품이 됐다. 실업자인 상태로 대출 이자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했기에 적금부터 깨야 했다. 급기야 아이 교육을 위해 모아뒀던 돈과 교육보험까지, 7개월 만에 2천만 원이 고스란히 날아갔다.

서민경제가 파탄나면 제일 먼저 입시교육과 무관한 교육을 그만둔다. 당시 아이는 피아노와 검도를 다니고 있었는데 우선 피아노를 끊었다. 단 한 번도 무엇을 해 달라 조르는 일이 없던 아이가 이따금 아쉽다는 듯 "엄마 때문에 피아노를 끊었다"고 말할 때 마음이 아팠다. 만일 베네수엘라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저소득층을 위한 음악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악기는 가진 자들만 다루는 것이고 클래식은 상류층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이 깨지고 아이는 즐겁게 악기 하나쯤  다루는 청년이 되지 않았을까.
교육 통념 깨기 교육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을 넘어서는 길
교육 통념 깨기교육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을 넘어서는 길 ⓒ 민들레

대안교육매체 민들레가 출간한 <교육 통념 깨기>는 교육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을 깨트린 다양한 실험 사례들을 소개한다.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한 예술 교육에 관한 것이다.

2008년 12월 15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앙코르 공연 장면 단원들이 베네수엘라 국기가 그려진 점퍼를 입고 공연 한 뒤 청중들에게 점퍼를 던지는 이벤트를 벌였다.
2008년 12월 15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앙코르 공연 장면단원들이 베네수엘라 국기가 그려진 점퍼를 입고 공연 한 뒤 청중들에게 점퍼를 던지는 이벤트를 벌였다. ⓒ 이명옥

2008년 12월 '엘 시스테마'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두다멜이 상임 지휘자로 있는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내한 공연을 했다.

 점퍼를  받고 기념 사지을 찍었다.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단원이 건넨 점퍼를 입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점퍼를 받고 기념 사지을 찍었다.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단원이 건넨 점퍼를 입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 이명옥

로얄석에서 구스타브 두다멜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 공연을 감상했던 2008년 12월 15일은 내게 평생 잊지 못할 멋진 추억이 되었다. 앙코르 공연 때 연주자들이 입었던 베네수엘라 국기가 그려진 점퍼를 청중에게 선물로 던졌는데 나도 그 점퍼를 얻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이다.

 기념이 된 점퍼  저 점퍼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기념이 된 점퍼 저 점퍼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 이명옥

2008년 기준으로 베네수엘라는 청소년 관현악단 120여 단체, 유소년 관현악단 60여 단체가 등록되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오케스트라는 90% 가까이 저소득층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상 음악교육이 이루어진다. 2008년 대한민국도 베네수엘라와 전격 계약을 맺고 '엘 시스테마' 교육을 도입했다는데 얼마나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적은 1975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경제학자이자 아마추어 지휘자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이다. 아브레우는 자신의 집. 주차장에.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악기를 하나씩 주면서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클라리넷을 배운 레나르라는 아이는 그때까지 강도와 마약 복용으로 아홉 차례나 체포된 적이 있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어요. 제가 악기를 가지고 달아나지 않을 거라고 믿어 주는 것에 우선 놀랐죠. 그들은 저를 억지로 계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악기를 줬어요. 손에 잡힌 악기는 총보다 느낌이 좋았어요."

레나르는 지금 교사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아브레우는 이러한 음악교육을 계속 확대해 왔고 이 프로그램을 '엘 시스테마'라고 불렀다.

'엘 시스테마'의 원칙은 간단하다. 악기를 잡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아무리 어린 아이에게도 악기가 주어진다. 시스테마의 앙상블(주로 실내악을 연주하는 적은 인원의 합주단)에서 연주하겠다는 아이들의 약속만 있으면 수업료, 외출비가 지급된다. 레슨은 그룹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기초를 터득한 아이들은 더 나이 어린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렇게 해서 거리에서 뒹굴던 아이들은 악기를 들고 음악을 연주하게 되었다. - 음악으로 구원받는 아이들 중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최고의 음악 천재로 베네수엘라 최고의 오케스트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인 구스타브 두다멜이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 무척  인상적이다.

"베네수엘라에서 가능하다면 왜 다른 나라에서는 안 되죠? 정말 왜 안 될까요?"

나도 대한민국 교육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Why not?"

덧붙이는 글 | 교육 통념 깨기 /편짐실 엮음/ 민들레/ 10,000원



교육 통념 깨기

민들레 편집실 엮음, 민들레(2010)


#교육 통념 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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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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