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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머리 좋은 사람이 노력하는 사람 못 따라간다"란 말은 덕이와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가능하면 덕이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성장과 발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루 24시간을 나눠 스케줄표 만든 뒤 책상 앞에 붙여놨다.

아침 조깅을 시작으로 잠들기 전까지의 일정을 빼곡히 적어놨다. 그리고 달력엔 일주일에 한 번 종이접기를 위해 복지관에 가야하는 날과 한 달에 두 번 정도 마라톤에 참여하는 날을 덕이에게 기록하라고 했다. 그렇게 생활한 지 5년이 지난 어느날, 복지관 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본에서 열리는 '장애인청소년국제마라톤대회'에 덕이도 신청을 해보라는 권유였다.

그동안 덕이도 비행기를 몇 번 타본 터라, 크게 걱정은 안 되었다. 그러나 혼자 보내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이가 학교 수련회를 갈 때도 혹시 몸이 아프지는 않을까,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까 싶어, 내가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일본에 있어야 한다니... 기간이 길어 내가 따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약간 고민은 되었으나, 덕이 생각이 어떤지 궁금해서 우선 물어보기로 했다.

국제마라톤대회 참가 권유에 대한 덕이의 반응

 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
영화 <말아톤>의 한 장면. ⓒ 시네라인㈜인네트

덕이를 지도하면서 알게되고 실천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항은 "가장 작은 것에 충실한 사람은 큰 것에도 충실하다"란 말씀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어쩌면 나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덕이를 지도할 땐 매일 매일 꾸준하게 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효과를 보인 건 없었다. 또 무엇이든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내가 직접 실행하면서 방법을 알려줬을 때 가장 효과가 있었다. 일본에서 열리는 장애인청소년국제마라톤대회에 참여하는 것도 덕이에게 일일이 설명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일본은 어떤 나라이고, 거기는 왜 가야하며, 그곳에는 누구와 함께 가게 될 것이고, 그곳에서의 하루는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 후에 한국엔 몇 시에 오고 그곳에 고모와 할머니께서 덕이를 기다고 있을 것이라는 점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어야 덕이가 안심하고 즐겁게 다녀올 수 있다.

특히 영유아기 때 부모님과의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은 분리불안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일반사람들은 별것 아니라고 여길 수 있는 상황이라도 '내침을 받았다'는 무의식(정신분석학 용어로 의식하지 못하지만 한 개인의 핵심에너지)이 작용하여 불안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일본이란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부터 덕이에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덕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한국일까? 아니면 일본일까?"
"(눈만 깜빡깜빡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한국이고, 옆에 있는 이곳은 일본이야."

(지구본을 돌리면서 설명해주었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은 가까이에 있어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단다. 특히 네가 좋아하는 만화 <원피스>는 한국사람이 아니라 일본사람이 만든 거야, 고모는 덕이가 일본에 가볼 기회가 있을 때 여행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덕아 일본에 한 번 가볼래?"
(덕이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가 함께 가지 못하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걱정됐다.)

"가볼래."
"일본 가보고 싶어? 좋아... 그리고 그동안 우리는 국내마라톤대회에 나갔던 거였고, 덕이가 이번에 일본을 가게 되면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마라톤대회에 참여하게 될 거야. 국제대회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단다. 이번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마라톤대회(장애인)에는 덕이가 종이접기 다니는 복지관 관장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형들이 함께 참여할 거라고 하는데 덕이도 그 국제마라톤대회에 참여해볼까?
"(말똥말똥)"
"'아마도 덕이가 국제대회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고 해 본 적이 없어서 약간 조심스러울 수 있고 갈까, 말까 망설여질 수도 있을 거야, 또 한편으로는 만화 <원피스>를 쓴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점에 일본을 가보고도 싶을 것 같고... 국제마라톤대회 참가하는 신청서를 미리 작성해야 한다는데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마라톤대회에 덕이도 참여할까?

덕이는 말하는 내 모습만 바라본다. 덕이와 함께 갈 수 없어 불안해 하는 내 마음이 덕이에게 틀킨 것 같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아 고모도 함께 가면 좋겠지만 고모가 일을 해야 해서 일주일 동안 일본을 다녀올 수가 없어 사실 덕이가 일본을 간다고 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중이었단다. 다행히 복지관에서 덕이가 아는 분들과 착한 형들이 함께 간다고 하니까 마음이 놓이긴 해. 그리고 이번 기회에 덕이가 혼자서도 잘 다녀올 수 있는 멋진 모습을 나와 할머니께 보여준다면 너무나 고마울 것 같은데... 덕이 생각은 어떠니?"
"몰라."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 덕이도 며칠 생각해 보고, 고모도 생각해보고"
"응."

주위 사람에게 일본에 다녀온 걸 자랑하는 덕이

나는 또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다양한 체험이 덕이의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때문에 학교 담임선생님과 특수반선생님, 태권도 관장님과 복지관 관장님 그리고 종이접기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덕이를 설득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덕이와 함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선생님들께는 말씀을 드렸고, 덕이 옆에서 함께 해줄 누군가를 생각하던 중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만났을 때 덕이가 좋아하고 잘 따르는 먼 친척의 성격 좋은 형이 떠올랐다. 전화로 사정 이야기를 하자 본인에게도 일본을 가볼 수 있는 기회니까 좋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대학생이고 내가 요청한 것이니까 비행기표는 준비해 주기로 했다.

이틀이 지나 내 나름대로는 준비할 것을 어느 정도 해놓고 덕이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덕아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마라톤대회에 가고 싶어? 아니면 안 가고 싶어?"
"갈거야."
"응 좋아∼ 역시 남자답게 씩씩한데, 덕이가 나와 할머니보다 일본을 먼저 다녀오겠는데? 부럽다."

덕이가 일본에 가기로 한 뒤, 다른 것은 걱정이 안 됐지만 몸이 아플까봐 걱정이 됐다. 그래서 함께 가는 형에게 덕이가 아플 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이야기 해 주었다. 다행히 덕이는 잘 다녀왔다. 함께 간 형이 사진을 많이 찍어 와 나는 사진들을 통해서 덕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볼 수 있었다. 그 사진들을 모두 덕이방 빈 공간에 붙였다. 방 전체에 덕이의 활동을 알 수 있는 사진들이 채워지면서 덕이는 점점 자신감이 올라가는 듯했다.

우승권은 아니었지만 덕이 스스로도 자랑스러웠던지 주위 사람들에게 일본 다녀온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주위 사람들이 먼저 "너 국제마라톤대회 다녀왔다며?"라고 이야기해 주니까 덕이도 국제대회에 다녀온 것이 관심받고 칭찬받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벽에 붙여놓은 국제마라톤대회에 참여했던 사진을 몇 장 떼어달라고 해서 떼어주었더니 가지고 다녔다.

덕이를 가만히 생각하면, 덕이가 부모님은 안 계셔도 나름 복이 있는 아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상황들이 마치 덕이를 위하여 만들어져 있듯 이렇게 잘 맞아 들어갈 수 없다. 덕이가 만화 <원피스>를 좋아했었으므로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을 것이며 다녀오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덕이는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 때 2년 연속으로 일본에서 열리는 동일한  국제마라톤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여 하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옆에 돕는 사람 없이 혼자서 잘 다녀왔다.


#국내와 국제#의식과 무의식#사랑과 믿음#지지와 격려#힘과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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