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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벤져스>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한 히어로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쉴드의 요원인 마리아 힐은 비슷한 상황이 또다시 닥치게 될 것을 우려하지만, 국장 닉 퓨리는 여유롭다. 그는 영웅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며 이런 이유를 덧붙인다. "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하니까."

평범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영웅을 찾곤 했다. 임진왜란 이후 사회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커져갈 때 <홍길동전>이 인기를 얻었으며, 병자호란의 패배 이후 많은 사람들이 청으로 끌려갈 때 <박씨전>이 인기를 끌었다.

소설 속 영웅이 사회를 바로잡는 걸 보면서 현실에서 오는 불만을 해소하려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영화 속 영웅들이 사랑받게 된 데에도 이런 이유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속 닉 퓨리의 대사처럼 우리는 '영웅을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 영웅들은 올바른 가치에 대해 고민한다.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은 고담 시에 진짜 필요한 정의가 어떤 모습일지 계속해서 고민하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 2)>에서 캡틴아메리카는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과 동료들이 선택한 방식이 옳은 것인지 고민한다.

마땅히 지켜져야 할 가치가 배제되고, 때로는 고려조차 되지 않는 현실을 보며 괴로워하던 우리는 영화 속의 영웅이 바른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정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이를 위협하는 대상과 싸워내야만 한다.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개인에게는 막강한 상대와 맞설 힘이 없지만, 영웅에게는 비범한 능력이 있다. 헐크나 스칼렛워치, 퀵실버에게는 초능력이 있으며, 아이언맨이나 배트맨에게는 천재적인 두뇌와 뛰어난 체력, 엄청난 자본이 있다.

이들은 각각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쉽게 맞설 수 없는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운다. 우리가 히어로 영화를 즐겨보는 데에는 이렇게 비범한 능력을 가진 영웅들이 우리 대신 현실과 싸워주길 바라는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악당과 맞서다 좌절하게 되었을 때, 영화 속 영웅에게는 그를 다시 일으켜줄 조력자가 있다. 조커와의 싸움에서 패배했을 때, 배트맨에게는 묵묵히 곁을 지켜줄 알프레드 집사와 기술적인 약점을 보호해 줄 폭스가 있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좌절에 빠진 어벤져스 멤버들에겐 그들을 다시 바른 길로 이끌어줄 동료가 있다.

현실의 벽 앞에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자신을 다시 일으켜 줄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주저앉는 우리는 영화 속의 영웅이 조력자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게 된다.

위기를 극복한 영웅은 실체가 있는 '악당'과 맞서 싸운다. <어벤져스>에서는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과 타인에 대한 우월감이 '로키'라는 악당으로 구체화되어 있으며, <어벤져스 2>에서는 사회 곳곳에 파고들어 서로를 분열시키는 힘이 '울트론'이라는 악당으로 실체화되어 있다.

악당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난 악은 죽거나 다른 세계로 옮겨짐으로써 처벌되며, 영화 속 영웅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사라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들과 맞서 싸우느라 지친 우리는 실체화된 악이 영웅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위안을 얻으며, 가상의 세계에서나마 정의가 실현되는 것에 안도하게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고달프고 외롭다. 이상을 꿈꾸지만 늘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곤 하며, 자신을 바른 길로 이끌어줄 사람을 만나길 꿈꾸지만 실제로 뛰어난 조력자를 만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화 속 영웅이 바른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싸우며, 위기 속에서도 끝내 악당을 처단하는 걸 지켜보면서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잠시나마 누그러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히어로 영화의 가벼움이나 폭력성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왜 히어로 영화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인지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사랑받게 된 것에는 화려한 액션이나 캐릭터의 매력 이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영웅이 인기를 얻게 되는 배경에는 언제나 영웅을 필요로 하는 사회가 있었다.


#히어로영화#어벤져스#어벤져스 2#다크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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