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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에서 제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 국가이다"로 명시돼 있다. 민주 국가란 자유주의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낸, 혹은 가장 나타내고 싶어하는 국가 형태다. 뜻을 그대로 풀어보면 국민(國民)이 국가의 주인(主人)이며 남녀노소 모두가 차별 받지 않고 평등한 사회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대한민국 남성은 20대 초반 즈음 '병역'이라는 의무를 겪으며 헌법 1조 1항을 낯설게 여기기 시작한다. 개개인의 자유 의지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명백한 민주 국가에서, 국방의 의무라는 거대 담론은 그 모든 것을 여지 없이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징집에 반기를 들어 입대를 거부하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까지 불사하는 병역 대상자들이 있다.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고 통칭하는 이들인데,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종교적, 자유적, 개인적 사유를 들어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이 '양심적'이라고 일컬으면 그러한 것을 무릅쓰고 현재도 군인으로 복무하는 이들을 '비양심적'으로 매도하는 위험이 내재돼 있다. 그러므로 '자발적 병역 거부자'라고 일컫는 게 옳다.

각설하고, 최근 광주지방법원은 종교적인 이유로 입영을 거부했다가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3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방의 의무는 전시 전투원이나 경찰 업무는 물론 공익 근무나 사회 복무 등의 대체 복무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라며 "국방 의무 이행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크게 훼손되지 않고도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을 헌법적 가치로서 보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제껏 종교적 사유를 들어 병역을 거부한 입대 대상자들에게는 통상 1년 6개월 정도의 징역형을 선고한다. 하지만 1년 6개월의 복역 시간보다 더 큰 상처는 평생 그들을 따라다니는 전과 기록이다. 그런 주홍글씨를 감내하고서라도 자신의 종교적 가치관을 지키고 싶어 하는 입영 대상자들에게 대한민국은 가혹하고 아이러니한 '민주 국가'이다.

꼭 종교적 사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이들의 자유 의지 역시 민주 국가의 한 부분이지만 똑같이 배제 당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은 없는 걸까?

징집제를 시행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가 자발적 병역 거부자들을 위해 더불어 시행하는 '대체 복무 제도'가 그 해답이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2000년 7월부터 대체 복무를 허용한 타이완에서는 종교 상의 이유뿐 아니라, 심신 장애나 질병으로 고생하는 가족이 있어 부양이 필요할 경우에도 대체 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기간은 정도에 따라 현역 복무 기간인 22개월보다 4~11개월 길다. 한편에선 대체 복무 제도를 병역 기피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의심스런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다시 대만의 사례를 든다면 그러한 위법을 방지하기 위해 첫째 3개월 내에 심의 위원회를 소집해 심의를 마쳐야 한다.

둘째 심의 시 복무자의 신앙, 동기, 심리 등의 이유가 진실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면담을 실시해야 하며, 그에 더해 소속 종교의 책임자 혹은 증인을 출석시켜야 하고, 셋째 심의 안건에 의의가 있거나 비준 혹은 기각을 결정할 수 없을 경우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잠시 징집하지 않는 관찰 기간을 가질 수 있다. 또한 그 기간은 1년을 넘을 수 없다고 명시했다. 복무 기간은 상대적으로 더 길지만, 감옥행을 불사하면서까지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제도다.

이번 광주지방법원의 판결로 개인의 자유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병역 의무를 거부하는 이들의 소송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자발적 병역 거부자들 역시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민주 국가의 주인이 한 명의 국민이라면 그들의 감옥살이야말로 더 없는 국가적 손실이다. 환경 보호, 교육 봉사, 의료 봉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대체 복무 제도를 통해 자발적 병역 거부자들이 넓은 의미의 국방 의무를 수행하게 해야 할 것이다.


#입대#양심#실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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