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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보고 반성하기
▲ 진압당한 형제의 난 벽보고 반성하기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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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작된 형제의 난

갑작스레 사무실로 걸려온 아내의 전화.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하다.

"진짜 못 살겠어. 당신이 얘네들 데려가."
"응? 왜? 또 무슨 일이야?"
"몰라. 아침부터 지금까지 온종일 징징거려."
"누가?"
"누구긴 누구야. 산들이랑 복댕이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둘째와 셋째의 징징거림, 안 봐도 비디오였다. 까꿍이가 유치원에 간 사이, 두 살 터울인 두 아들이 싸웠겠지. 막내는 형이 뭘 만들거나 집으면 빼앗겼다고 징징징, 둘째는 동생이 다 빼앗아간다고 징징징.

나라고 한 들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겠는가. 아내는 아이들에게 무작정 수화기를 넘겼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둘째에게 '왜 그랬느냐'는 질문뿐이다. 여차여차 상황을 설명하는 산들이. 그러나 5살 꼬마 아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는 해독하기 너무 어렵다.

그냥 그렇게 몇 분 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자니 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는지 아내가 수화기를 바꿔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금까지 상황에 대한 아내의 브리핑. 역시 예상 그대로다. 셋째 복댕이가 아침부터 지금까지 형을 졸졸 따라다니며 못살게 군 것이다.

엄마의 강요에 의한
▲ 화해 중인 형제 엄마의 강요에 의한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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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만든 블록이나 장난감을 빼앗고, 안 되면 자지러지게 울면서 누워 뒹구는 셋째 복댕이. 그걸 참을 수 없는 둘째는 동생을 때리고, 그러면 둘이 치고 박고…. 그러다가 둘 다 엄마에게 혼나고. 끝이 없는 무한 도돌이표 전쟁.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와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이건 말 못하는 셋째의 마지막 '꼬장'(심술)이니, 그래도 좀 참아보자는.

아이들의 '꼬장'... 세 번 찾아온다

아무데서나 드러눕기
▲ 막내의 땡깡 아무데서나 드러눕기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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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의 입장에서는 여러 번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특히 첫째 아이를 키울 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그 한계를 여러 번 접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 때는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우는 경우다.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갑자기 울어대고 심통을 부릴 때 느끼는 그 황망함이란. 어디가 아픈 건가?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해야 저 울음소리를 그치게 할 수 있는 거지?

그러나 아이를 셋 정도 키우다 보면 그와 같은 단계는 자연스럽게 뛰어넘게 된다. 어쨌든 아이들이 우는 이유를 경험상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그럼에도 아이들의 울음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점인데, 이는 유아들이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성장통이기 때문이다. 유아 시절, 아이들은 보통 크게 세 번 정도 '꼬장'을 부리는데 첫 번째가 이가 날 때, 두 번째가 이제 막 일어서서 걸으려 할 때, 그리고 마지막은 말문이 터지기 직전이다.

사실 아이를 키우면서 위의 세 지점은 매우 경이로운 체험이기도 하다. 태어나서부터 꼬물꼬물 엄마 젖만 먹던 아이의 입속에 하얗고 귀여운 이가 올라올 때 느끼는 대견함과 신비함. 물론 그때 아이는 엄청 울어댄다. 생살을 뚫고 이가 올라오는데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말을 못해서 울 뿐이지, 아마 그 고통은 엄청날 것이다.

나는 막내라고!
▲ 무조건 억울해 나는 막내라고!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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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지간
▲ 아빠와 함께 부자지간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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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서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처음 제 힘으로 일어서서 걷는 걸 봤을 때 부모 된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그래, 이제 녀석이 드디어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이 됐구나. 그러나 역시 그때도 아이들은 엄청나게 운다. 일어서서 걷기 직전 아이들의 짜증은 하늘까지 닿아있다. 마음은 이미 저 앞으로 가 있는데 자신의 몸이 안 따라 주기 때문이다.

이 울음은 아이가 걷고 나서도 쉽게 끝나지 않는다. 두 손 두 발로 기다가 처음 일어서서 두 발로 걷다보면 그 피곤함이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자신의 무게만큼 작용하는 중력의 힘을 극복하는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이겠는가. 그때쯤 아이들은 자다가 갑자기 울기도 하는데 이때 다리를 주물러주면 잠잠해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다리가 아파서 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두 경우는 마지막 '꼬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보통 유아들은 말하기 직전 가장 많이 짜증을 내는데, 이는 부모가 자식이 처음으로 말을 시작할 때 느끼는 경이로움과 비례한다.

현재 우리 셋째 복댕이는 바로 그 단계에 와 있다. 28개월 된 녀석은 이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약 70% 정도 알아듣는다. 방을 치우라고 하면 치우고, 먹은 접시를 싱크대에 넣으라고 하면 넣는다. 엄마 아빠 중에 누가 좋으냐고 물으면 분명한 의사표시도 할 줄 안다. 문제는 아직도 녀석이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엄마 아빠 정도의 단어는 이야기하지만 이외의 단어는 끝음절만 이야기하는 정도다. 토끼는 '끼', 누나는 '나', 노래를 따라 불러도 마지막 소절의 마지막 음절만 따라 외치는 수준이다.

빨리 먹고 더 커야지
▲ 내가 더 먹을 거다 빨리 먹고 더 커야지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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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녀석의 하루 일과는 징징거림으로 시작된다. 다행히 엄마 아빠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면 꺄르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웃음소리를 선사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형, 누나와 함께 놀 경우 녀석의 짜증 지수는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나이가 들면서 다양해지는 자신의 욕구는 표현할 방법이 없고 까꿍이와 산들이는 그런 막내를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28개월쯤 된 아이가 아직도 말을 못한다며 셋째를 걱정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그와 같은 우려는 기우로 느껴진다. 당장 내 자신만 하더라도 5살 때부터 말다운 말을 하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복댕이가 굳이 말을 하지 않고도 부모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말이 느린 건 당연한 일이다. 말은 그만큼 나의 욕구가 짧은 외마디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해졌을 때 튀어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느릴 수 없는 셋째

두 돌쯤 돼 기저귀를 떼고 말을 시작한 누나, 형과 달리 28개월이 됐음에도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고 기저귀도 떼지 못한 우리 막내 복댕이.

그렇다고 셋째가 위의 누나, 형과 비교해 모든 분야에서 마냥 느리거나 떨어지는 건 아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강력한 경쟁자 둘과 함께 지내야 하는 게 숙명이었던 만큼, 녀석은 그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신만의 능력을 나름대로 특화 시켰다. 그중 가장 발달한 게 바로 '애교'다.

배꼽인사와 배웅 세레모니
▲ 아빠, 안녕히 다녀오세요 배꼽인사와 배웅 세레모니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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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누가 많이 먹나
▲ 우리는 삼남매 누가누가 많이 먹나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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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막내들이 선보이는 특유의 애교. 물론 부모의 입장에서는 가장 어린 자식에게 눈길이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녀석은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 수 있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동물 흉내를 내도 더 귀엽게 표현하고, 사람들이 오면 착착 감기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 시키는 복댕이.

어쩌면 녀석이 누나와 형과 달리 유독 '내'(나)를 강조하며 자신을 가리키는 건 생존전략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말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누나와 형에게 치이지 않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어른들의 시선을 먼저 잡아둬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까꿍이와 산들이는 동생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에 민감하다. 아빠가 퇴근해서 막내와 뭔가 놀아준다 싶으면 쪼르르 달려와 '지금 복댕이와 막 했던 거 나도 해줘'라고 요구하기 바쁘며, 어른들이 막내 잘한다고 박수를 치면 자신들도 그보다 잘할 수 있다며 뭔가를 열심히 한다.

씽씽이도 셋
▲ 무조건 셋 씽씽이도 셋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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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나를 보며 첫째와 둘째한테 엄했던 것과 달리 셋째에게는 너무 너그러운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어쨌든 까꿍이와 산들이, 복댕이에게 같은 잣대를 대지 않는 이상 그것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난감을 사도 똑같은 거 세 개, 먹을 것을 사도 무조건 세 개. 그것은 아이 셋을 키우는 부모의 철칙이기도 하다.

오늘도 복댕이는 누나와 형을 따라 EBS <최강전사 미니특공대>를 본다. 제 나이대로라면 <뽀롱뽀롱 뽀로로>를 봐야겠지만(게다가 누나와 형은 네 나이에 뽀로로를 봤다!), 이젠 뽀로로를 유치하게 생각하는 까꿍이와 산들이 덕분에 자신의 수준을 건너뛰어 조금 더 조숙한 만화를 본다. 내용은 잘 몰라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바로 느리지만 느릴 수 없는 셋째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억울하다고? 그럼 이제 말을 하든가. 어쨌든 우리 막둥이 힘내라!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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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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