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을 읽거나 간직하는 것은 오랫동안 특수계층의 전유물이었다. 지식 혁명과 인쇄술의 발달 전까지 필사를 통해 전해지던 내용은 대부분 경전이었다. 때문에 라틴어·그리스어·아랍어 필사본으로 양피지나 갈대 혹은 점토판에 새겨져 비밀스럽게 전파됐다. 책을 읽거나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보통 사람들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됐고, 심지어 독서가 취미가 될 수 있었을까.

자유도시 베네치아, 지식이 젖과 꿀처럼 흐르다

 <책공장 베네치아-16세기 책의 혁명과 지식의  탄생>(알렉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 김정하 옮김 / 책세상 펴냄 / 2015.02 / 2만 원)
<책공장 베네치아-16세기 책의 혁명과 지식의 탄생>(알렉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 김정하 옮김 / 책세상 펴냄 / 2015.02 / 2만 원) ⓒ 책세상
16세기 책의 혁명과 지식의 탄생을 다룬 <책공장 베네치아>는 책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15~16세기 베네치아는 무역과 상업이 발달한 자유도시였다. 자유를 갈망하고 창의적이며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 새로운 사업을 원하는 사람들은 베네치아로 몰려들었다.

베네치아는 모든 문화의 집산지였으며 문화를 동서양으로 전파하는 중심도시기도 했다. 베네치아는 출판의 수도였다. 출판물의 종류는 성서와 토라, 탈무드와 이슬람 경전인 코란, 의학 서적과 악보집, 몸 관리, 미용, 식도락. 포르노에 가까운 외설스러운 도색 판화와 음란한 소네트까지 망라했다.

베네치아가 자유도시였기에 책의 혁명과 지식의 탄생이 가능했을 것이다. 베네치아는 모든 출판물의 대부분을 간행했으며, 라틴어와 그리스어 외에 히브리어·아르메니아어 등 다양한 외국어로 된 책을 프랑스어나 독일어로 번역하여 간행했다. 지식 전파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기도문과 경전, 의학과 법학에 관한 지식을 전하기 위한 필사본이 전부였던 시대도 있었다. 당시에 책 읽는 즐거움, 즉 독서를 취미로 만들어 낸 이는 알도 마누치오였다. 출판의 제왕, 책의 혁명가로 불리는 알도 마누치오는 '출판계의 미켈란젤로'로 불리며 지식 혁명을 이끈다.

그는 단순한 인쇄업자가 아니라 새로운 출판의 시대를 연 혁명적 발상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치밀한 기획자였으며, 홍보와 판매에도 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귀족들을 위한 소장용 고급책만 만들지 않았다. 포켓북을 통한 책의 대중화도 이끌었다.

"알도 로마노(알도 마누치오의 로마식 이름)는 독서가 취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즉 책을 읽는 즐거움을 만들어낸 최초의 인물이다. 이러한 인식은 진정한 의미의 지적 혁명이었다. 이로써 기도를 드리거나 누군가를 가르칠 때만 사용되던 책이 여가를 위한 즐거운 취미로 전환되었다.

마누치오는 세련된 지식인으로 판매 가능성뿐만 아니라 원고의 내용에 근거하여 출판할 대상을 선택했다. 그는 문화유산을 기술적으로 결합한 첫 번째 인물이었으며, 출판 시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또한 관심을 가진 여러 지식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을 찾아내는 데 있어서도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출판의 역사는 마누치오 전과 후로 구분된다." - <책공장 베네치아> 중에서

책을 읽는 여자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

알도 마누치오를 시작으로 베네치아의 출판의 역사는 그 폭을 넓혀간다. 최초의 탈무드 인쇄본도 베네치아에서 출판됐으며, 히브리어 서적의 출판도 베네치아에서 이뤄진다. 베네치아에서는 이슬람 경전인 토란이 아랍어로 인쇄되기도 했는데 사라진 최초의 인쇄본 코란을 발견한 사람은 도서관 사서였던 안젤라 누오보였다.

"발견 소식이 퍼지자 즉시 학계의 질투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했다. 안젤라 누오보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욕과 무시의 표적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조르조 몬테키는 '학술계의 남성 중심적인 경향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다'라고 꼬집었다." - <책공장 베네치아> 중에서

세계 최초로 인쇄된 코란을 재발견한 것은 투탕카멘 무덤을 발견한 것만큼 공적이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정작 학계는 발견자가 여성이며 학자가 아닌 사서였다는 사실과 공적에 대한 질투와 시기로 그 가치를 주목하지 않으려 했다. 최초로 인쇄된 코란이 이탈리아에서 출판되었고, 이탈리아에 보존되어 있었으며, 이탈리아인에 의해 이탈리아에서 재발견됐다. 이탈리아의 국가적인 경사며 세계사적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큰 사건이었다.

그녀의 발견은 서지학 연구와 아랍학 연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이탈리아 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킨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책 읽는 여성을 위험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학문을 남성 중심적으로 평가하는 남성적 사고의 결과다.

어쨌거나, 책 읽는 여성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 책 읽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즐거운 취미인 것은 확실하다. 당신이 책을 사랑하고, 독서가 취미이며, 책의 혁명과 지식의 탄생에 대해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책공장 베네치아>를 통해 16세기 베네치아 메르체리 거리의 서점가를 산책해 보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책공장 베네치아-16세기 책의 혁명과 지식의 탄생>(알렉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 김정하 옮김 / 책세상 펴냄 / 2015.02 / 2만 원)



책공장 베네치아 - 16세기 책의 혁명과 지식의 탄생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김정하 옮김, 책세상(2015)


#책공장 베네치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