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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 전 총리가 타계했다. 향년 91세.

리콴유는 오늘날 싱가포르를 만든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 천연 자원도, 믿을 만한 우방도 없던 작은 나라 싱가포르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게 한 세계적인 지도자다.

1965년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5만 6113달러로 세계 8위이자 아시아 1위,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 청렴도는 세계 5위다. 이 모든 것이 리콴유의 지도력에서 나온 것이라는 데 관련 분석가들은 큰 이견이 없다.

오늘날 싱가포르 만든 리콴유 '빛과 그림자'

 리콴유 전 총리의 타계를 발표하는 싱가포르 정부 홈페이지 갈무리.
리콴유 전 총리의 타계를 발표하는 싱가포르 정부 홈페이지 갈무리. ⓒ 싱가포르 정부

1923년 9월 16일 싱가포르에서 출생한 리콴유는 부유한 중국계 가문 출신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변호사로 일하다가 상사의 선거 운동을 돕기 위해 정계와 인연을 맺었다.

노동자와 학생들의 법률 자문을 맡으며 정치적 보폭을 넓힌 리콴유는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출범했고, 5년 뒤 열린 총선에서 인민행동당이 51개 의석 중 43개의 의석을 차지하며 35세의 나이로 싱가포르 자치 정부 총리에 올랐다.

19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하며 초대 총리에 오른 리콴유는 당시 열악한 주거 환경, 실업률, 국방력 등 싱가포르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 발전에 주력했다.

대외적으로는 독립 후 곧바로 유엔에 가입했고, 다른 4개의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을 세웠다. 국내에서는 대규모 주택 건설을 통해 서민 주택 보급에 힘썼고, 천연 자원이 부족한 싱가포르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 자본 유치를 통해 실업률을 낮췄다.

리콴유의 과감한 투자로 싱가포르는 창이 공항이라는 세계적인 국제 공항을 보유하게 됐고, 세계 유명 금융 기관의 아시아 지사를 대거 유치하며 일본, 홍콩 등을 제치고 아시아 금융 허브로 일으켰다.

리콴유의 지도력이 주목을 받는 것은 가파른 경제 발전 속에서도 개발 도상국에서 흔히 일어나는 부정부패나 환경 오염, 범죄를 거의 완벽하게 차단했기 때문이다. 리콴유는 깨끗한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 공직 비리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대신 공무원의 임금을 사기업 수준으로 높였다.

또한 마약은 물론이고 거리에 껌을 뱉거나 작은 쓰레기를 버려도 큰 벌금을 물리며 공중 도덕 의식을 강조했다. 그 결과 리콴유가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성장 모델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화려한 빛 뒤에는 그림자도 뒤따랐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심각한 인권 침해나 무력 동원은 없었지만, 벌금이나 태형을 통한 강압적 법치, 그리고 집회·결사의 자유나 언론의 표현을 억압하며 사회를 지나치게 통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리콴유 타계... '국부 잃은' 싱가포르, 어디로?

리콴유를 지지하는 쪽은 리콴유의 강력한 지도력을 '아시아적 가치(Asia value)'라고 표현하며 옹호했다. 반면 리콴유를 비판하는 쪽은 '싱가포르의 히틀러', '온건적 독재자'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리콴유의 맏아들 리셴룽이 2004년 싱가포르 제3대 총리로 취임하면서 세습 논쟁이 불붙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리콴유의 지도력은 때로 자유를 억압했지만, 그의 공식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리콴유는 자신의 신념을 굳게 믿고, 비판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퇴임 후에도 선임 장관, 고문 등의 직함을 맡아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자신을 정책이나 업적을 비판하는 정치 평론가, 서방 언론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 법정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싱가포르도 세대 교체의 흐름 속에 리콴유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도 늘어났다. 1990년대 아시아 금융 위기로 싱가포르의 경제 모델이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고, 깊어지는 양극화는 더 많은 분배를 원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최근 고소득층 세율을 높이고 복지 예산을 늘리는 까닭이다.

2006년 총선까지만 해도 리센룽 총리가 이끄는 인민행동당은 84개 의석 중 82석을 차지했지만 2011년 총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야당인 노동당(WP)에게 6석을 빼앗겼고, 이후 보궐선거에서도 연거푸 패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리콴유 타계로 싱가포르는 갈림길에 섰다. 당장 내년에 치러질 총선은 싱가포르의 앞날을 좌우할 정치적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리콴유는 자신이 살던 집을 허물라는 유언을 남겼다. '국가적 성지'로 지정되어 예산이 낭비되고 이웃들이 피해를 볼까 염려한 것이다. 싱가포르도 '리콴유 시대'를 허물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리콴유#싱가포르#국부#리센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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