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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언제 어디든 누구나 어느 정도 낯설고 긴장한다. 먼저 그 환경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누구에게 말을 붙여야 할지 도무지 감도 없어서 앉은 자리가 편치 않다. 오늘도 그랬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연신 날리고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아랫입술을 자꾸 깨물면서 몸을 비비꼰다.

딸아이는 지난해 1년 동안 아파트 단지에 있는 사립 어린이집에 다녔고, 오늘부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다. 오늘은 첫날이라 두 시간 정도 엄마와 같이 있다 집으로 돌아왔다. 같은 방 아이들과 눈도 마주치고 소극적이지만 놀이에 반응도 하고 선생님에게 같이 색칠하자고 하는 걸 보니 앞으로 잘 적응할 것 같아 한숨 놓인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5세가 되면 어린이집을 떠나 유치원 과정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다. 지난해부터 그 흐름이 강해져서 지난해 이 일대 어린이집에서 5세반을 만들지 못할 정도였다. 딸애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신청자가 적어 올해도 5세반을 만들지 못했다. 4세반 친구들은 좋든 싫든 다니던 어린이집을 떠나 다른 기관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내년에 아이를 어느 기관으로 보내야 할지를 고민하다 최종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친구가 아들을 공동육아에 보내려고 대기 신청해 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었는데, 그녀가 지원을 포기하면서 내가 대신 그 어린이집 설명회에 참석하고 등원 신청을 했다. 이후 공동육아 지원서와 자기소개 등을 써서 보내고 부모 면접을 거쳐 아이의 등원이 결정되었다.

조합원 교육 차원에서 공동육아와 관련된 책의 독후감을 쓰면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공동육아, 이웃이 있는 가족 이야기>는 가족학을 연구하는 저자가 공동육아에서 가족의 대안 모델을 발견하고, 실제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10개월 가까이 현장연구를 한 결과물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공동육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조합원들의 인터뷰 등을 읽으면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먼저, 아주 자세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공동육아를 시작하게 된 배경과 처음 공동육아를 시작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쓰여진 10년 전보다 지금은 공동육아 어린이집 수도 늘었을 테고 사회적인 관심이나 참여하는 사람들도 질적 양적으로 다양한 변화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여전히 공동육아에 대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그들만의 집합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여러 보육기관 중 하나라거나 여러 양육방식 중의 하나 정도로 받아들이는 부분도 확실히 커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여러 개가 있는 마포구에 사는 덕분에, 여러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신청도 하고 설명회도 들을 수 있었다. 위 책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이지만, 이미 영구터전까지 만든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라면 꽤 긴 세월 여러 조합원들이 무척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았을 것이다.

아무리 아이들 교육에 대해 지향점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였다 해도 서로 다른 사람들과 아이들이 만나 얼마나 사소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일어나고 갈등하고 했을까. 그렇게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어린이집에 조합원이 된다는 것은 내겐 행운이기도 하고, 또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감이랄까 부담감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한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는 데 아무런 기대도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스쳐지나가는 친구가 아닌 지속적인 관계가 가능한 아이의 친구와 부모의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취학 전 인지교육에 휩쓸리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 매일 바깥공기와 사물을 접할 수 있는 건강한 나들이를 할 수 있다는 기대...

중요한 건 이런 기대를 단지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기만 하면 충족되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 인식 혹은 자세라고 여겨진다. 낯선 조직과 문화에 부모도 아이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 기간 동안 성급한 판단은 가능한 자제할 생각이다. 사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걸 알기 때문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공동육아의 양육지침이나 운영방침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모든 점에 100퍼센트 동의한다고 하긴 어렵다. 이미 이십 년 가까운 공동육아의 경험이 녹아 있는 것들이라 일단은 그렇게 정해진 데 이유가 있다고 본다.

평말을 사용하는 것을 예로 들면, 평등한 관계 구조를 체화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이해된다. 가정 내 성평등, 어른과 아이의 평등 관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당장 평말 사용이 문제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내겐 그 문화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연구 주제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책으로 먼저 보게 되었다. 두려움도 들고 기대감이 커지는 부분도 분명 있다. 당장 시우와 우리 부부에게 일어날 어떤 것을 상상하기보단, 공동육아에 대한 큰 그림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된 독서였다. 공동육아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런 양육 형식이 될 수는 없을까, 조합원들끼리만 아니라 사는 동네에서도 이웃과 어떻게 교류가 가능할까 등등. 물론 당장은 맞벌이로 조합 활동을 잘해내야 하는 게 더 큰 문제지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정보배씨는 현재 출판기획 편집자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공동육아#어린이집#육아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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