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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라간국립공원(Dooragan National Park)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 행글라이더 즐기는 사람이 뛰어 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두라간국립공원(Dooragan National Park)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 행글라이더 즐기는 사람이 뛰어 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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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에는 모두 공감한다. 따라서 건강에 대한 담론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나의 건강 비결은 걷는 것이다. 산책을 즐긴다. 텐트 하나 차에 싣고 호주 여행을 할 때에도 낯선 동네에 도착하면 산책하는 즐거움을 빼놓지 않았다. 하루를 끝내고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된다. 사색도 하게 된다. 칸트가 매일 똑같은 시각에 산책한 이유를 알 듯하다. 

시골에는 산책로가 많다. 시드니에서 하던 산책보다 좋은 점이 있다면 맑은 공기와 좋은 경치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높은 등성이 아래로 보이는 바다와 포스터(Forster) 해변은 매일 보아도 좋다. 가끔 해변에 나가 색다른 산책을 하기도 한다. 동네에도 산책하거나 아침저녁으로 뛰는 사람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니 며칠 동안 내리던 비가 그쳤다. 지난 번에 들렸으나 비 때문에 풍경은 물론 산책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던 공원을 다시 찾아 나선다. 자동차로 한 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두라간국립공원(Dooragan National Park)이다.

이곳에 이사 와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퍼시픽 하이웨이(Pacific High Way)에 들어선다. 아직도 비구름은 오락가락하지만 비 온 후의 상쾌함이 몸을 감싼다. 멀리 있는 산봉우리들도 평소보다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상쾌한 도로를 달리 수 있는 것만으로도 시골에 사는 보람을 느낀다.

두라간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정상까지 2km라는 팻말이 있다. 도로는 잘 포장되어 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 도로만 보며 운전했던 언덕길이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주말이라 그런지 올라가고 내려가는 차가 심심치 않게 있다.

정상에 올랐다. 경사 심한 산등성이 아래로 자그마한 로리톤(Laurieton)이라는 동네가 보인다. 바다로 시선을 돌리면 긴 제방 너머로 너른 바다가 펼쳐진다. 멋진 풍경이다. 전망대에 올라 사진기 셔터를 누른다. 심호흡도 한다. 신선한 공기다. 어느 음식보다도 바다를 타고 올라오는 깨끗한 공기가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잔디밭에 엄마 아빠와 함께 간식을 먹으며 두 아이가 재잘거린다. 전망대에는 중년의 남녀가 젊은 연인처럼 서로 꼭 껴안고 풍경을 보고 있다. 조금 떨어진 야외용 식탁에는 대가족이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다. 한 폭의 그림이다.

뒤편에 있는 다른 전망대에 들려 사진을 찍고 산책로를 찾아 나선다. 이곳에는 산책로가 두 개 있다. 산책로 입구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은 오른쪽으로 가라는 푯말이 있다. 장애인들이 산책의 맛을 보고 경치를 볼 수 있도록 만든 길이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호주라는 생각을 다시 한다. 

산책로를 걷는다. 짧고 쉬운 길이다. 벼락을 맞았는지 고목이 검게 그을려 죽어 있다. 고사리류와 종려나무로 뒤덮은 산등성이를 걷는다. 심호흡으로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켠다. 간단한 산책로를 끝내고 반대편에 있는 다른 산책로를 찾아 나선다. 거리 표시가 지워진 오래된 안내판이 있다. 경사가 가파르다. 산책로를 막 들어서는데 젊은 남녀 둘이 배낭을 짊어지고 땀에 흠뻑 젖어 올라온다.

경사진 산책길을 내려간다. 가다가 어려우면 다시 오겠다는 편한 마음으로 산책을 즐긴다. 오른쪽 숲 사이로 바다 풍경을 즐기며 계속 내려간다. 흔히 보기 어려운 큼지막한 이름 모르는 꽃이 보인다. 사진기에 담고 계속 산책길을 내려간다. 얼마쯤 내려가니 자동차 길이 나오며 오른쪽으로 다른 산책길이 시작된다. 짐작건대 바닷가까지 내려가는 길이다. 조금 전 산책길에 들어서면서 본 남녀는 바닷가로 연결된 이 산책로를 올라왔을 것이다. 

우리는 내려가기를 포기하고 오던 길을 다시 오른다. 같은 길이지만 내려갈 때 보던 풍경과 다르게 느껴진다. 뒤따라오던 아내가 부른다. 잡초에 핀 여리고 어여쁜 꽃이다. 처음 본 꽃이라며 사진을 찍으란다. 고은 시인의 짧은 시가 생각난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며 살고 있을까....

가파른 산책길이 점점 힘들어진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숲이 그늘을 만들어 주어도 온몸이 땀에 흠뻑 젖는다. 조금씩 지쳐 온다. 힘들어도 한 발자국은 뛸 수 있을 것이다. 급할 것 없다. 목적지는 생각하지 않고 발걸음 하나하나에만 신경을 쓰며 경사 길을 오른다. 한 발 두 발 걷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한다.

삶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며 힘들게 살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 나의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할 것이다. 내가 살아온 삶의 냄새가 풍성한 그 어떤 곳에....

 작은 어촌 마을 로리톤(Laurieton)에 있는 긴 제방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연인.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낚시꾼들이 잡은 생선을 손질하는 곳이다.
 작은 어촌 마을 로리톤(Laurieton)에 있는 긴 제방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연인.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낚시꾼들이 잡은 생선을 손질하는 곳이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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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호주한국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글을 한국에 살고 계시는 독자를 위해 수정해 올리고 있습니다.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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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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