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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 늙을 노(老)는 허리가 굽은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이다.
늙을 노(老)는 허리가 굽은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이다. ⓒ 漢典

젊고 아름다워야 할 나이 열여덟 살에 머리가 새기 시작하더니, 스물넷에는 완전히 백발로 뒤덮였다. 그리고 스물일곱에 짧은 생을 마감한다.

당나라 때 이백, 이상은과 함께 삼이(三李)로 통하는 천재 시인, 시의 귀신으로 불리는 시귀(詩鬼) 이하(李賀)에 관한 이야기다.

이하에게 청춘의 봄날은 너무 빨리 시들어갔다. "하물며 이제 청춘의 봄날도 저물려 하나니 복숭아꽃도 붉은 비처럼 어지럽게 떨어지는구나(况是青春日將暮, 桃花亂落如紅雨)" 그의 시 <장진주(將進酒)>에 나오는 대목이다.

너무도 빨리 찾아온, 때 이른 '늙음'은 이하에게 치명적 콤플렉스면서 또한 그의 시 세계를 확장하는 '서러운 모티브'였다. 그의 시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시어 중 하나가 바로 늙음(老)이다.

전해지는 240편의 시 중 늙을 노(老)가 50차례나 등장한다. "만약 하늘에게 정이 있었다면 그 슬픔에 하늘도 늙어갈 것이다(天若有情天亦老)" 홍콩 영화 <천장지구(天長地久)>의 주제가에도 등장하는 시 <금동선인사한가(金銅仙人辭漢歌)>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하는 서둘러 찾아온 조로(早老)를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쏟아 부은 열정의 결과물로 받아들이며 스스로 위로했는지도 모르겠다.

'늙음' 속에 들어있는 인생의 의미

'늙을 노'(老, lǎo)는 허리가 굽은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이다. 머리를 풀어헤친 이유가 머리숱이 적어져 비녀를 이기지 못함이니 글자 자체가 노인의 서글픈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고대 사회는 연령을 계급에 반영했기 때문에 노인은 그런대로 지위를 인정받고 존중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농경 사회에서 노인의 축적된 경험이 사회 발전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인이 한 명 죽으면 도서관이 하나가 사라진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도, 관중이 제 환공과 고죽국(古竹國) 정벌에 나섰다가 늙은 말을 이용해 길을 찾아 탈출했다는 '노마식도(老馬識途)' 같은 성어도 이런 취지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그런데 유목 사회,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모든 가치가 끊임없이 급변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노인의 경험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됐다. 공자가 친구 원양(原壤)에 대해 말했던 "늙어 죽지도 않고 가치 없게 삶만 탐하니 도둑과 같다(老而不死, 是爲賊)"는 평가나 받기 십상이다.

영화 <은교>에 나오는 대사처럼 젊음이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상이 아니듯 늙는다는 것 또한 우리가 잘못해서 받는 벌은 아니다. 도서관처럼이든, 원양처럼이든 인간은 누구나 늙기 마련이다. 아무도 이를 막을 수 없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을 꿈꾸던 진시황은 제대로 된 늙음조차 누리지도 못하고 겨우 쉰에 객사했다. 이하는 애끊는 정이 있었다면 하늘도 늙었을 것이라고 했지만, 열정을 간직하는 것이야말로 늙음을 물리적 시간에 멈춰 있게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처럼 말이다.


#老#늙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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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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