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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5일 온라인 중소기업 자금신청시스템에서 어려움을 겪은 우리 부녀의 이야기를 딸 청이와 청이 아빠로 각색하여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기자말 

"청아, 눈이 어두운 아비를 대신해서 클릭 좀 해다오."

이 한 마디로 청이는 중소기업진흥공단(아래 중진공) 홈페이지에 접속하게 된다. 청이 아버지는 인생의 새로운 2막을 열기 위해 작은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인 청이 아버지는 빠듯한 창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정책자금 융자 시책을 알게 됐다.

중진공은 지난해부터 융자 지원 접수를 인터넷으로 신청 받았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정부3.0'이 얽힌 결과물이다. 이 때문에 각종 정부기관과 공단의 문서 접수 작업은 온라인으로 빠르게 변했다. 중진공의 융자 지원 시책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6월 처음으로 문서가 아닌 온라인으로 신청을 받았다. 그때도 접수량 폭주로 서버가 다운돼 불편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때문에 청이 아버지는 '클릭 좀 한다'는 딸 청이에게 신청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온라인 융자 지원 신청자 폭주로 접수 깜깜

중진공의 융자 지원 시책은 쉽게 말해 정부가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중소기업에 낮은 금리로 사업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담보가 없어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시중은행에서 대출받지 못한 중소 기업인에게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는 일종의 대출 방법이다.

대출의 시작은 '심사'다. 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접수부터 해야 한다. 문제는 융자를 지원하는 중진공의 접수 방식에 있었다. '정부3.0'에 맞춰 신속하게 온라인으로 변경된 접수제도와 달리, 중진공의 서버 증설 속도는 느렸고 한 번에 몰린 접속자로 홈페이지가 다운되어 버린 것이다. 5일 중진공 정책자금 융자신청이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된 이유는 바로 접수 단계에서 발생한 병목 현상 때문이었다.

수만 명의 중소기업 사업자들은 이 접수 단계에서부터 절망했다. 청이와 청이 아버지도 그랬다. 이들은 5일 오전 9시에 시작될 접수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을 한 상태에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주말 내내 형광펜으로 줄 쳐가며 숙지한 설명서도 챙겼다.

그러나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사람이 청이와 청이 아버지뿐만은 아니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청이 아버지는 이제 막 문을 열 회사라 도와줄 직원조차 없었지만, 중소기업 직원들은 새벽부터 출근해 모니터 앞에서 우리처럼 동공을 자극하고 있던 것이다.

'딸깍.' 청이는 9시 정각이 되는 순간 클릭했다. 백여 명의 대기 순서를 기다려 겨우 첫 페이지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 다음 페이지에서 5분이 지나도록 응답이 없자 초조해졌다. 전화를 걸어 물어봤지만 중진공 관계자는 "그 상태에서 껐다간 대기조차 받을 수 없다"고 말해, 청이와 청이 아버지는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서로 신경이 잔뜩 날카로워진 채 말도 없이 애꿎은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지옥 같던 10분이 지났다.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다. 그 이후 단계별로 십여 분 기다리는 건 기본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러 '완료'까지 두 단계를 앞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인터넷이 '혼수' 상태에 빠졌다. 겨우 짜증을 누르고 전화를 걸어 문의하니 "접수가 11시로 미뤄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1시로 미뤄진 접수는 낮 12시로 한 차례 더 연기됐지만, 홈페이지는 여전히 먹통이었다.

"혹시 북한이 중진공 디도스 공격한 거 아니야?"

멈춰 버린 홈페이지에 뜬 안내 문구는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로그인이 된다고 했다. 신청 시간이 세 번이나 늦춰지는 바람에 청이와 청이 아버지는 하루 종일 모니터만 바라봐야 했다. 마지막 기회로 여겼던 오후 3시. 이번엔 초시계까지 동원했다. 3시 '땡' 하자마자 초광속으로 클릭했건만, '대기자가 1300명'이라는 안내 문구는 청이를 좌절케 했다.

그동안 중진공 직원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렇게 35분이 지났고 홈페이지는 어찌된 일인지 로그아웃되었다. 다시 '로그인'을 눌렀더니 이번엔 "대기자가 다수"라는 문구가 떴다. 이는 곧 기약 없는 기다림을 뜻했다.

그때 포털사이트에는 일부 어뷰징 매체가 이에 대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융자 지원을 받기 위한 중소기업인의 고군분투기가 댓글에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일부 누리꾼들은 우회접속경로로 가면 신청할 수 있다는 비결도 공개했다. 청이도 이 방법으로 오후 5시까지 클릭했지만 결국 접수에 실패했다. 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잡지 못한 것이다.

결국, 청이는 중진공 직원에게 언성을 높였다. 중진공 직원은 사과를 거듭했다. 관계자는 "9시부터 서버를 지속해서 늘렸지만, 역부족인 상태"라며 "지난해보다 신청자 수가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끊은 담배 찾으신 아버지, 얼굴 가득 수심이...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안내문. 6일 자정에도 이런 안내문이 걸려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안내문. 6일 자정에도 이런 안내문이 걸려 있다. ⓒ 최은경

청이 아버지는 새해 다짐으로 끊은 담배를 찾았다. 이날은 청이 아버지의 생일이기도 했다. 미역국 한 대접만 겨우 드신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기사에 댓글을 단 한 누리꾼은 "지난(해) 6월에도 똑같은 일을 당했다"라며 "중진공 측에 항의했더니 특별히 접수해준다고 했다. 비리 여부가 있는 건 아닌지"라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의심에 억울함을 더해 다시 전화기를 들고 따졌다. 중진공 관계자는 "불공정한 접수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구조"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일이다 보니 서버 제한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위한 정부의 대책이 자충수가 돼 버렸다.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춘 행정서비스'인 정부3.0을 바탕으로 중진공의 정책자금 지원을 온라인 접수로 전환했다. 그러나 자금 지원이라는 시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 마우스 '클릭' 속도에 따라 신청 성패가 갈리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 사용이 다소 느린 청이 아버지나 불과 몇 초 차이로 늦은 청이와 같은 사람들은 신청 첫 날, 접수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중진공에서 마련한 정책자금 융자 시책의 접수 기한은 준비한 지원금 3조2600억 원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다. 중진공 경기지역본부 측은 전화상으로 "접수가 마감됐다"고 밝혔으나 중진공 본사 측은 "온라인 자금신청 접수를 일시 중지했다. 6일(화) 오전 9시에 다시 안내할 것"이라고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다.

접속 대란 24시간 뒤인 6일 오전 9시, 중진공 측은 공지를 통해 "애초 접수예정금액과 동일한 규모로 신청받을 예정"임을 밝혔다. 청이가 전화로 토로하고 누리꾼들이 댓글로 성토한 바와 같이 "지역별 3차례로 나누어 진행"할 계획이다.

중진공의 정책자금 융자 지원은 중소기업인들에겐 희망이자 지푸라기 같은 대책이었다. 당국의 작은 실수도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대란'으로 묘사할 만큼 논란을 일으킨 이번 접수는 1~2월 신청분인 1차 접수다. 오는 2차 접수(3~4월분) 때는 같은 논란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속 대처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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