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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산 도리사로 가는 일주문 일주문에는 '해동최초가람성지 태조산 도리사’란 글귀가 써있다.
냉산 도리사로 가는 일주문일주문에는 '해동최초가람성지 태조산 도리사’란 글귀가 써있다. ⓒ 김도형

지난 26일 구미시 해평면에 위치한 냉산을 올랐다. 냉산에는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도리사가 있고, 냉산은 일명 태조산이라고도 불리우기도 한다. 이는 고려 태조 왕건이 산성을 쌓고 후백제 견훤과 전투를 벌인데서 유래됐단다.

구미시 해평면과 도개면 그리고 삼국유사의 고장인 군위군 소보면에 걸쳐있는 이곳 냉산에는 도리사를 비롯해 고려 태조가 견훤을 정벌하기 위해 축성한 숭신산성과 아도화상이 마지막 생애를 마감한 금수굴과 같은 명승지가 있다.

도리사는 총각시절부터 이따금 찾던 곳이어서 친숙한 곳이다. 마음이 심란할 때면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올라가야 되는 도리사를 찾았고, 경사가 보통이 아닌 만큼 매번 자동차의 엔진이 과열될 정도로 불안불안하게 오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적도 있었다.

간신히 올라간 도리사 바로 밑의 주차장에 차를 두고 또다시 가파른 길을 걸어 오르다 보면 냉산의 정상 아래에 지어진 도리사의 멋진 광경이 속세에서 벗어난 느낌을 가지게 해주곤 해 힘겹게 올랐던 긴장감을 달래줬던 추억이 매번 있다.

워낙 명당 자리여서 그런지 찬 겨울에도 따사로운 햇살이 온몸을 포근히 감싸주며 마음속에 꼬여있던 불편한 마음의 실타래를 한올한올 풀어 주는 평온한 곳이라 생각이 든다.

도리사는 자주 찾았지만 냉산을 오르기는 처음인 날이었다. 냉산을 오른 이유는 아도화상이 입적했다는 금수굴을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매년 아도의 재일이 되면 금수굴에서 빛이 난다는 사실을 들었는지라 그곳에 가면 신비로운 기운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고 문득 도리사의 냉산을 오르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냉산에 오르기 전 금년에 지인의 작품 사진을 통해 알게된 서대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서대에서는 저멀리 금오산이 바라보이며 낙동강 줄기와 주변의 넓디 넓은 곡창지대가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구름이 없는 화창한 날이었지만 멀리보이는 금오산은 다소 뿌연 연무에 가려 선명치가 않았다. 시야가 트인날 서대에 서면 수려한 광경이 펼쳐질 훌륭한 장소임이 틀림없음을 재차 확인하고 1km 떨어진 냉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낙동강 주변에 펼쳐진 수려한 산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대 사진 작가들은 운무가 낀날 새벽에 사진을 찍기 위해 찾곤 한다.
낙동강 주변에 펼쳐진 수려한 산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대사진 작가들은 운무가 낀날 새벽에 사진을 찍기 위해 찾곤 한다. ⓒ 김도형

평일 낮이어서 산을 오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금수굴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채 무작정 올랐다. 어디엔가 표말이 나오지 싶어 무작정 올라왔지만 결국엔 찾질 못했다. 하지만 냉산을 오르는 길은 옛적 아도화상이 올랐을 산길이라 생각들었기에 과거에 옛사람이 산을 오르듯 유유자적 냉산을 올랐다.

어느 정도 올라 산 능선에 오르고 나니 금년 6월에 처음 가봤던 전모례가정이 위치한 도개면 마을이 보이는 듯했다. 전모례가정은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머물렀던 모례의 집에 있던 우물 유적이다. 아도화상은 모례의 시주를 받아 도리사를 창건했다고도 한다. 

모례는 신라 최초의 불교신도였고, 신라 눌지왕 때 고구려의 승려 묵호자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신라에 왔을 때 집 안에 굴을 파서 3년 동안이나 묵호자를 숨겨줬다고 한다. 어느 시대에서든 처음 종교가 도입되는 시점에는 종교인들이 어김없이 박해를 받았던 역사적인 사실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눌지왕때 묵호자로, 삼국유사에는 미추왕 때 아도란 이름으로 이러한 일들이 기록돼 있으며 같은 인물로 추정된다.

아무튼 왕이 지배하던 시대에 사람들에게 왕의 뜻이 아닌 새로운 사상을 심어준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한 엄청난 모험이었으리라.

냉산의 정상에 도달하니 산아래 도리사의 일부가 보였고, 저멀리 보이는 광경 또한 일품이었다. 해발 692m인 냉산의 정상에 올라 불교를 전파할 곳에 지을 절 터를 물색했을 아도화상의 시선으로 온 사방을 둘러 보았다. 불심이 없는 이유로 그저 좋은 경치만 눈에 들어온다.

냉산 정상 풍경 해발 692m임을 알리는 푯말과 삼각점 그리고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드믄드문 사람이 찾은 흔적이 있고 고독한 산행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딱인 곳이란 느낌이 든다.
냉산 정상 풍경해발 692m임을 알리는 푯말과 삼각점 그리고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드믄드문 사람이 찾은 흔적이 있고 고독한 산행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딱인 곳이란 느낌이 든다. ⓒ 김도형

정상인 이곳에는 특이하게도 경도와 위도와 표고 등의 지리좌표를 표시한 삼각점이 있었다. 표지판에는 지리정보를 이용해 국민생활의 편의를 증진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말로만 듣던 냉산을 직접 올라와 도리사를 발아래 두게 됐고, 이 다음에 다시 찾아 태조산(냉산) 등산로를 따라 끝까지 가고 싶은 욕심을 남겨둔채 도리사로 내려왔다.

생각해보니 14년 전에 도리사를 처음 찾았을 때보다 길도 더 잘 닦아 놓았고 건물도 더 웅장하게 들어선 도리사다. 처음 도리사를 찾았을 땐 워낙 비탈진 길이라 가만히 서 있으면 세상이 기울어져 보이는 듯 착시 현상까지 느낄 정도였고,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이 참으로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기도 해 매번 평화로운 정취를 가져가곤 했다.

도리사를 자주 찾은 이들에겐 나름 추억이 많이 서려 있는 곳이고 너른 풍경을 보며 마음을 틔우고 싶을 땐 꼭 다시 찾고 싶은 곳.

냉산에서 내려와 도리사로 들어서니 개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고 보니 도리사에는 언제나 개가 있었다. 조용한 산사에서 참선 수행하고 있을 스님들에게 훼방을 놓을 수도 있을 개들이지만 천년 고찰 도리사를 지켜줄 든든한 경비견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늘 가지고 다니는 캠코더로 도리사의 전경을 끊김없이 20여 분가량 연속 촬영을 하며 도리사 경내를 둘러 보았다. 팔작지붕 목조건물인 극락전은 오래된 만큼 나무의 색은 바랬지만 그 자태는 변함이 없었고 수많은 스님들이 거쳐간 역사 속의 도리사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도리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는 극락전은 부석사 무량수전 처럼 기둥이 처마를 받쳐주는 주심포 양식이다. 오랜세월 변형되지 않고 버텨온 외관이 신기하다.
도리사 극락전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는 극락전은 부석사 무량수전 처럼 기둥이 처마를 받쳐주는 주심포 양식이다. 오랜세월 변형되지 않고 버텨온 외관이 신기하다. ⓒ 김도형

또한 도리사에는 국보 제208호로 일괄지정된 금동육각사리함에 담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둔 적멸보궁이 있기도 하며 성철스님께서 잠시 머무르며 정진하셨던 태조선원도 있다. 또 경상북도 유형문화제 466호 이며 아미타불을 모셔둔 극락전과 앞에는 보물 470호인 화엄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예전 같으면 다리가 아파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길 꺼려했을 아도화상이 참선 수행했다던 좌선대를 캠코더에 담기 위해 냉큼 다녀오기도 했고, 외에도 개짖는 소리의 근원을 찾아가 보니 도리사 밖 끄트머리 건물에 삽살개 두 마리가 묶여 있어 재미났다.

삽살개는 귀엽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용감하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나며 예로부터 귀신이나 잡귀를 물리치는 영험한 기운이 있어 '삽'자를 넣어 삽살개라고 지칭됐다고 한다. 도리사를 찾아 오는 귀신들을 물리칠 늠름한 삽살개들이 개냄새가 몸에 베인 나였는지 그다지 얄밉게 짖진 않았다. 다음에 간식거리를 가져와 친밀감을 표시한다면 쉽게 사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도리사를 나오며 위로 보이는 냉산의 정상도 다시금 바라보니 한결 도리사에 대해 더욱 많이 알아가는 기분이 든다. 신라불교의 발원지가 도리사가 된 이유를 알고 싶다면 냉산과 도리사를 찾아보면 될 듯하다. 냉산의 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은 한눈에 절이 들어설 명당 터를 쉽게 찾게 해줄 정도로 절묘한 지리적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

명당은 따사로운 햇살이 해가 떠서 질녘까지 끊임없이 내려쬐야 하므로 그러한 산새를 쉽게 관찰 할 수있는 곳이 바로 도리사가 있는 냉산의 특징이다. 어느 누가와도 이곳 도리사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절경이라고 입을 모우기도 한다.

천년의 향기를 맡기를 원하는 자 이곳 도리사와 냉산을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서대에서 바라본 금오산과 낙동강 풍경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멀리 바라다보이는 대자연의 풍경들을 통해 아도화상은 불교의 확산을 예상하며 도리사 냉산의 금수굴에서 입적하지 않았을까.
서대에서 바라본 금오산과 낙동강 풍경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멀리 바라다보이는 대자연의 풍경들을 통해 아도화상은 불교의 확산을 예상하며 도리사 냉산의 금수굴에서 입적하지 않았을까. ⓒ 김도형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유통신문>과 <한국유통신문>의 카페와 블로그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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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빨간이의 땅 경북 구미에 살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우리네 일상을 기사화 시켜 도움을 주는 것을 보람으로 삼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힘이 쏫는 72년 쥐띠인 결혼한 남자입니다. 토끼같은 아내와 통통튀는 귀여운 아들과 딸로 부터 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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