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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개입 의혹 사건에는 두 명의 '비선실세'가 등장한다. 한 명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윤회(59)씨와 박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56) EG회장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을 '박근혜 정부 권력의 두 축'이라고도 본다. 

이들은 '최측근'과 '친동생'이라는 지위를 등에 업고 청와대와 각 부처, 군과 경찰 등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치열하게 권력암투를 벌였고, '박지만 미행 의혹'과 '정윤회 동향 보고서 작성·유출' 등은 그 흔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이번 사건에 대처하는 방식은 확연하게 다르다. 

정공법 택한 정윤회, 7개 매체와 직접 인터뷰

지난 2013년 7월 19일 서울 근교 한 공원에서 <한겨레>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된 정윤회씨의 모습.
 지난 2013년 7월 19일 서울 근교 한 공원에서 <한겨레>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된 정윤회씨의 모습.
ⓒ 사진제공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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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박근혜 정부의 그림자 권력으로 통하는 정윤회씨는 '정공법'을 택했다. 지난 11월 28일 <세계일보>에서 '정윤회 동향 보고서'를 공개한 직후 정씨는 신문, 방송 등과 인터뷰하며 보고서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씨가 직접 인터뷰한 매체는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KBS, YTN, jtbc 등 7개에 이른다.

이미 정씨는 4개월 전인 지난 7월 김진 <중앙일보> 정치전문기자와 만나 자신에게 쏟아진 각종 의혹들을 부인한 바 있다. 정씨가 지난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정치인 박근혜의 비서실장'으로 활동해왔지만 그 이후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공식활동선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나선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강원도 평창에 수만 평의 땅을 사들였다', '말목장을 만들려고 했다', '승마선수인 딸을 뒷바라지하고 있다'는 등의 소식만 전해졌을 뿐이다. 그런 정씨가 언론과 처음 접촉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정씨는 언론사와 처음으로 한 인터뷰에서 "야당과 언론이 헛소문에 놀아난다"라며 "모든 게 떳떳하니 조사하라, 대신 허위로 드러나면 공격자들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백'과 '경고'를 동시에 담은 발언이었다. 이러한 발언은 정식 인터뷰 기사가 아닌 김진 기자의 칼럼을 통해 소개됐다(<중앙일보>, 7월 9일자).

'정윤회 동향 보고서'가 공개된 직후 정씨가 인터뷰를 위해 선택한 언론매체도 <중앙일보>였다. 정씨는 지난 11월 30일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정윤회 동향 보고서'를 두고 "증권가 정보 찌라시를 대충 엮어놓은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모든 걸 조사하라, 하나라도 잘못이 있으면 감방에 가겠다"라고도 했다. 특히 "박지만 회장이 잘못된 주장을 해서 비선실세 의혹이 커졌다"라며 책임을 박 회장에게 돌리기도 했다.

적극적인 언론 인터뷰는 '비선실세'가 아니라는 증거?

이후 여러 언론매체들과 추가로 한 인터뷰들은 <중앙일보> 인터뷰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정씨가 지난 2일 KBS, <조선일보> 등과 한 인터뷰에서 올 4월 '박지만 미행 의혹'과 관련해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통화했다고 고백해 '논란'이 일었다. 이 비서관이 지난 7월 국회에서 "최근 10년 동안 정윤회씨를 만난 적이 없다"라고 주장한 것과 배치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정씨는 수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윤회 동향 보고서는 조작됐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특히 그는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과 조응천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의 권력다툼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짚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문고리 권력 3인방과 조 전 비서관이 각각 '정윤회'와 '박지만'을 대리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정씨의 발언은 권력암투를 인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정씨가 인터뷰에 적극 나선 시기다. 정씨는 지난 1일과 2일에 언론매체들과 집중적으로 인터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정윤회 동향 보고서가 "수많은 루머" 가운데 하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행위"라고 규정한 직후다. 박 대통령과 정씨는 정윤회 동향 보고서를 "시중에 떠도는 근거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11월 28일, 민경욱 대변인)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한배를 탄 셈이다.

그런데 정씨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나선 것을 두고 "그가 비선실세가 아니라는 증거 아니냐?"라는 해석도 나온다.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정씨가 과거에 영향력을 행사했을지 모르나 최근 정씨의 대응을 보면 현재는 힘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진짜 비선실세라면 그냥 무시하면 되지 저렇게 공개적으로 인터뷰하는 것으로 대응하지는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오랫동안 그림자 인생을 살아온 정씨가 시사주간지 기자들을 고소하고, 언론에 자청해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신상 등을 세상에 노출시켜 버렸다"라며 "이는 그가 이 정부에서 (비선)실세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라고 말했다.

"큰 누나가 무섭다"는 박 회장, 언제까지 침묵할까?  

박지만씨가 21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개관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개관식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2012. 2. 21
 박지만씨가 21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개관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개관식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2012. 2. 21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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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씨가 7개 매체들과 인터뷰하며 이번 사건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것과 달리 박지만 회장은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다. "정씨가 끝까지 거짓말하면 그때는 내가 나설 것이다", "나와는 무관한 소설들이 나돌고 있다", "나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고 정치에 관여할 생각조차 없는 사람이다" 등 언론에 보도된 박 회장의 발언은 전부 주변인사들의 '전언'이다. 박 회장의 비서실장격인 정아무개씨도 핸드폰을 꺼놓은 상태다.

그런 가운데 최근 박 회장의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가 셋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서 변호사는 지난 2004년 박 회장과 결혼한 뒤 지난 2005년과 올 1월 각각 첫째와 둘째아들을 낳았다. 둘째아들을 출산한 지 1년도 안돼 셋째 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조카바보'라는 박 대통령에게는 기쁜 소식이다. 이와 함께 박 회장이 조만간 지인들과 함께 동남아로 가족여행을 떠나 연말께 귀국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박 회장의 침묵에서는 깊은 고민이 느껴진다. 현재 그는 자신의 미행 의혹 사건으로 대립했던 정씨의 손을 들어줄 수도, 미행 의혹을 부인한 그의 발언들을 공개적으로 반박할 수도 없는 처지다. 정씨의 손을 들어주면 자신의 미행 의혹 주장을 부인해야 하고, 그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나서면 누나인 박 대통령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이미 "문서유출은 국기문란행위"라며 정씨의 손을 들어줬고, 검찰이 관련내용을 수사하고 있다는 점도 헤아렸을 것이다.   

신동욱 총재는 "박 회장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직접 나서는 것이 누님에게 이로울 게 없다고 판단해 계속 침묵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끊임없이 자세를 낮추면서 조심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박 회장이 끝까지 침묵하면 작은 누나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조차도 인정한 '미행'의 진실은 밝힐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과거에 "나는 큰 누나가 무섭다"라고 말했다는 박 회장이 언제까지 침묵할지 궁금해진다.


태그:#정윤회, #박지만,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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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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