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節마디 절(節)은 의미부인 대나무 죽(竹)에, 소리부인 즉(卽)이 결합된 형태로 원래 대나무의 마디를 나타내다가, 시기, 절기, 절개, 절약 등의 의미로 확대되어 쓰인 걸로 보인다. ⓒ 漢典
참깨가 하얀 꽃을 피웠다가 그 꽃이 질 때쯤이면, 아래에서부터 위로 마디마디 참깨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다. 그래서 중국어로 깨꽃이 피었다(芝麻開花)라고 하면 마디마디 높아진다(節節高)는 의미로 연결되는 헐후어(歇後語, 앞부분만 얘기해 뒷부분의 의미를 유추하게 하는 숙어 형태의 말)가 된다.
우리 삶이 깨꽃처럼 절기 때마다 켜켜이 높아지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깨 한 톨이 대지에 떨어져 한 줄기 깨대로 자라 올라, 꽃을 피우고 수많은 깨를 재생산하는 위대한 대자연의 힘을 인간은 아무리해도 다 배우진 못할 것이다.
마디 절(節, jiě)은 의미부인 대나무 죽(竹)에, 소리부인 꿇어앉은 자세로 음식 앞으로 다가가는 사람의 상형인 즉(卽)이 결합된 형태로 원래 대나무의 마디를 나타내다가, 시기, 절기, 절개, 절약 등의 의미로 확대되어 쓰인 걸로 보인다.
24절기나 사시팔절(四時八節, 사계절과 입춘, 춘분, 입하, 하지, 입추, 추분, 입동, 동지)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절(節)은 주로 계절과 절기 등의 시간을 매듭짓는 말로 사용되었다. 크리스마스를 나타내는 성탄절도 고대 문헌상에 나타나는데, 황제나 황태후의 생신을 기념하는 날에만 절제되어 사용되었으며 석가, 공자 등 어느 누구도 감히 성탄 다음에 절(節)을 붙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양한 기념일을 나타내는 말에 너무도 흔히 쓰이게 되었다. 자본주의 못지않은 상업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중국에서도 수많은 절(節)들이 호시탐탐 고객들의 지갑을 노린다. 무슨 절마다 돈을 쓰다가는(節節花錢), 매 달 빈털터리(月月花光)가 되기 십상이다.
10월 국경절과 12월 성탄절 사이에 다소 밋밋한 11월 비수기를 담당하는 절(節)은 바로 10월 31일 만성절(萬聖節, 할로윈데이)와 11월 11일 광곤절(光棍節, 솔로의 날)이다. 백화점마다 어린이 손님을 모시기 위한 할로윈데이 포토존 부스가 설치되고, 11월 한 달간 행사가 진행된다.
또한 솔로의 날에는 솔로 탈출(脫光)을 기원하는 각종 할인 행사들이 또 열리는데, 어느 때마다 할인을 많이 해 젊은이들은 이 때를 상품 구매의 절호의 기회로 여긴다. 여기에 11월 8일 입동도 있다. "입동에 만두 그릇을 들지 않으면 추워서 귀가 떨어져도 아무도 신경 안 쓴다"는 말이 있는데 귀를 닮은 만두를 먹으며 추위를 대비한다는 의미도 있고, 또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시점이라 교자(餃子)를 먹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는 모양이다. 입동날 만두 가게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중국인들의 이런 믿음은 생각보다 확고해 보인다.
절기나 기념일이 우주 질서에 맞게 시간을 매듭짓고 새로운 단계의 삶을 준비하는 의미에서 점점 물질문명의 유흥과 소비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 쯤 되돌아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