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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표지
 스노우맨 표지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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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빨리 자취를 감추는 겨울이면 독서가 유일한 약이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나라에는 유독 독서 인구가 많다는 말에 끄덕이게 되는 요즘, 아직 본격적인 겨울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월동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트나 부츠를 사는 대신 나는 인터넷에 '겨울이 배경인 소설' 혹은 '겨울 추천 소설' 등을 검색해봤다.

가장 많이 추천하는 소설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 <스노우맨>이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다소 읽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평가에 나는 요 네스뵈의 소설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제목부터 겨울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재미인 것 같다. 600페이지가 넘는 이 두꺼운 책을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은 첫 장을 펴자 이미 사라져버렸다.

노르웨이 오슬로 경찰청의 해리 반장이 범죄 현장에 눈사람을 만들어 놓는 연쇄살인범을 쫒는다는 내용의 이 소설은 사실 시리즈물이다. 7편에 해당하는 <스노우맨>은 다행히도 전작을 읽어보지 않아도 읽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어느 날 비르테라는 여인이 실종되면서 시작된 사건은 사실 전초전에 불과하다. 이 범죄는 24년 전에 일어난 범죄와도 관계가 있고, 애가 있는 유부녀들만 골라 범죄가 일어나는 데다가 희생자들의 주변 인물은 죄다 수상하다. 세 명의 주요 인물은 차례로 용의선상에 오르게 된다.

여러 등장인물이 비중 있게 다뤄지는 초반에는 내용이 헷갈리기도 하지만 중반 이후 용의자가 세 명으로 좁혀지면 오히려 여유 있게 즐기면서 감상할 수 있다. 물론 헷갈리는 데는 익숙하지 않은 노르웨이식 지명이나 이름이 한 몫을 하지만 말이다.

사실 나에게 이 작품에서 가장 독특하게 다가왔던 건 전체적인 분위기였다. 다소 거친 묘사와 거침없는 문체는 작가가 남성성이 짙은 스릴러물 혹은 추리물을 썼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 특히나 이 책을 읽는 동안 로버트 캘브레이스 (조앤 K 롤링)이 쓴 <쿠쿠스 콜링>을 읽고 있어서 그 대비가 두 배가 되었다. 같은 살인 사건을 다루는 데도 <쿠쿠스 콜링>은 시종일관 말랑말랑하고 유쾌했지만 <스노우맨>은 책에 있는 묘사 그대로 끈적거리고 쓰기까지 하다.

"잠에서 깨자 눈은 끈적거렸고, 머리는 지끈거렸으며, 입술에는 분필과 담즙 맛이 막이 한 꺼풀 덮여 있었다."

게다가 주인공인 해리 반장이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터프한 매력의 인물이라 그 특징이 배가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도 있다. 중요한 인물로 다뤄진 아르베 스퇴프와 카트리네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다. 집중력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대신에 몇몇 인물들은 그저 원래 태생이 특이하거나 갑작스럽게 특별해지는 걸로 마무리가 돼 드라마로 치면 '강제 하차' 되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늘 그렇듯 이런 종류의 작품은 사건에 방점이 찍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타협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보고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어."

언젠가 잘 만들어진 이른바 상업영화를 보고난 뒤에 관객들이 이렇게 평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보는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내내 붙들게 하는 작가의 필력은 평가절하 할 수 없다.

<스노우맨>은 겨울에 간담이 서늘한 공포와 추리를 원한다면, 그리고 사건에 대한 집중력과 힘을 느끼고 싶다면 적절한 선택이 될 것 같다. 노르웨이보다 날씨가 좋은 한국에서도 통할 법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반디앤루니스 홈페이지에도 서평으로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스노우맨> (요 네스뵈 (지은이) / 노진선 (옮긴이) / 비채 / 2012-02-20 / 원제 SnØmannen/ 1만 4800원)



스노우맨 (라이트 에디션)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비채(2017)


태그:#요 네스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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