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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출판계와 서점가의 핵심 키워드는 인문고전이라는 단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히 인문학 열풍이라고 할만하다. 출판사 편집자들은 책 제목에 '인문'이나 '고전'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지 않으면 마케팅이 쉽지 않다고까지 말한다. 그뿐인가 국내 모 대기업들은 인문학 소양이 있어야만 입사가 가능하다면서 입사시험에 인문학에 관련된 문제를 제출한다. 고등학교에는 '고전읽기'라는 과목이 생길 예정이고 그에 발맞춰 '중학생이 읽어야 할 인문고전 100선', '초등학생을 위한 인문 고전 읽기'에 관련된 책과 강의들이 학부모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인문학 열풍을 넘어 폭풍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도대체 왜 인문 고전을 읽어야 하는거죠?"

인문(人文)이라는 것은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놓은 문명(文明)체계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문자(文)가 있다. 그러니까 문자가 없던 시절에 인간들이 소통할 수 있는 영역은 그저 가족이나 친구가 다였다. 즉,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상대가 자신의 주변에 항상 존재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문자의 발명은 인간들이 소통할 수 있는 시간(時)과 공간(空)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그러니까 문자라는 것이 만들어 지면서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주변만이 아닌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는 까마득한 후대에 까지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간은 지구에 찬란한 인류문명을 탄생시켰다. 우리가 인문을 공부한다는 것, 특히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선조들이 남겨 놓은 것들에 대해 후대 사람들의 새로운 생각들이 더해지고 시간이라는 가치가 입혀지면서 탄생한 유산을 현재의 언어로 해석해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자녀에게 인문고전을 읽힌다고 생각해 보자. 그들의 반응은 대부분 재미가 없어 한다는 것이다. 마치 한국의 극심한 빈곤을 경험한 세대들이 "곡식이 없어 보릿고개에는 며칠씩 굶기를 반복했다"고 하며 그들이 겪었던 시절을 어린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아이들의 반응은 "라면이라도 끊여 드셨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하는 것과 같다.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야 현재와는 다른 문화의 차이와 이것이 왜 다르며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냈는가에 대한 질문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인문고전이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 꼭 인문 고전을 읽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흥미롭게 여겨지는 분야의 책을 읽고 그 책을 쓴 저자가 책을 통해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할 때의 희열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더 다양하고 깊이가 있는 분야로 자신의 생각을 넓혀가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온 사회가 인문고전 읽기를 강요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한 두 권 읽게 되고 어렵고, 재미가 없어 책 읽기를 포기하게 되거나 어떻게 읽어 내더라도 그저 글자를 읽은 것에 불과하다면 인문고전을 읽는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본인 조차도 제대로 읽지 못한 인문고전을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권하는 부모들은 더더욱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질문에 다시 답을 해보자 "도대체 왜 인문고전을 읽어야 하는 거죠?" 그것은 평소 자신의 분야에서 경험을 했거나 독서 또는 토론등을 통해 자신에게 던져진 다양한 질문들의 답을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우리 선배세대들의 생각에서 찾아보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인문고전 읽기가 또 하나의 스팩 쌓기가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인문고전 독서#문명#시간과 공간#질문과 답#독서와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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