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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북한산 등반을 하는데 몇몇 아저씨들이 내 뒤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만에 산을 찾았는지 등산로가 많이 변했다며 수십 년 전 근처 골짜기에서 벌인 일을 추억처럼 주고받고 있었다. 여름철 개 한 마리를 끌고 와서 잡아먹었다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어릴적 경상도 시골마을에서 자랐던 나는 서울에서도 그런 식으로 개를 잡아먹었다는 옛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지금이야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 여름 시골마을에선 개 잡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주로 야산 아래 물 흐르는 도랑 옆에서 개를 잡았다. 젊은이들에겐 엽기적으로 들리겠지만 그 시절 복날 광경은 동네 애들에겐 구경거리기도 했다. 아내는 어릴 적 동네에서 개 잡는 날 얻어먹었던 불에 그슬린 수육 한 점이 목에 걸려 죽을 뻔했던 에피소드를 기억한다.

복날이면 동네마다 개 잡는 소리가...

'생명존중'에 대한 생각 자체를 떠올릴 수 없던 시절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새총으로 참새를 잡는 법을 가르치셨고, 우린 겨울마다 싸리 광주리에 칼을 안쪽으로 꽂은 무시무시한 토끼 덫을 만들었다. 사과 껍질을 놓아둔 덫을 들춰보며 아침마다 죽어있는 토끼가 없는지 확인했다. 한번은 동네 논에 노루 새끼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그 크기가 조그만 강아지만 했다. 어디선가 한 아저씨가 지게 작대기를 들고 뛰어와선 그 귀여운 새끼 노루 뒷다리를 후려쳐 잡았다. 그때 동생과 내가 동시에 떠올린 생각은 '맛있겠다'였다.

30, 40년이 지난 지금, 이젠 그 누구도 어린 노루를 지게 작대기로 때려 잡진 않는다. 아마 품에 안고 집으로 데려와 보살필 것이다. 집에서 키우던 개를 잡아 먹는 일도 드물다. 반려 동물을 키우는 많은 사람은 개와 사람의 존재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더이상 보신탕을 먹지 않는다. 나와 아내도 그 중 일부다.

우리 '하루(2살된 수캉아지)'에겐 미안한 이야기다.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할 때 내가 제일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은 개고기였다. 1988년도에 미국을 처음 갔을 때, 먹거리에 대해선 고민이 크게 없었다. 몇몇 해산물이나 한우 등을 빼면 한국보다 더 풍요로운 음식 때문에 비만을 피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다만 단 하나, 개장국은 그리웠다. 어릴적부터 먹었던, 된장 풀어 끓여낸 그 누린내 가득한 음식은 마치 사리진 고향처럼 애잔하게 느껴졌다.

그 후 십여 년 뒤, 한국에 돌아와 최고급 보신탕 한 그릇을 먹었다. 청와대 근처 효자동에 있던 고급 보신탕집의 전골 요리였는데, 그 맛이 내가 어릴적 먹었던 애잔한 맛이 아니었다. 마치 돌다리 너머에 있던 고향 동네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 같은 생소하고 허탈한 마음. 그로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이제 더는 개고기를 먹을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다. 자식 없는 우리 부부가 자식처럼 키우는 '하루' 때문이다. 더불어 비만이 염려스러워 다른 고기도 그렇게 즐겨 먹진 않는다.

 우리집 강아지 하루
 우리집 강아지 하루
ⓒ WOOSEONG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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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구포시장 도축 단지에서 목격한 쇠창살 속 개들의 슬픈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죽음의 공포 앞에 선 개들이 수십 마리씩 붙어있는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면 연민이 밀려온다. 꼭 저렇게 돈을 벌어야 되나 싶었다. 물론 생업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할 말은 아니지만.

통영시 산양읍의 한 시골마을의 우리집 앞에는 개소주 집이 있다. 개를 키워 내다팔기도 하고, 직접 개소주를 닳이기도 한다. 가끔 한약 냄새가 진하게 나는 날은 개소주를 만드는 날이다. 요즘같은 복날 시즌엔 하루에 한 마리 이상 개를 잡지 않나 싶다. 한 번은 트럭 뒤에 개 한 마리를 싣고 오는 걸 봤다. 평소 그런 개의 모습을 담요로 덮어 이웃에 노출하진 않는데, 그날은 더운 날씨 탓인지 개를 가둔 개집의 담요를 걷었다. 진돗개 얼굴을 한 놈인데 불안한 눈빛을 했다. 마치 자기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았다.

곧 잡을 개인데 더울까봐 담요를 걷어 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에 대한 연민을 아예 거두진 않았다는 증거이리라.

고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더 문제

동물을 키우기 시작한 사람들은 동물들이 사람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시골에서 하루를 키우면서 느낀 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루가 좋으면 우리 부부도 같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개 때문에 행복해진다는 말. 우리 이웃들 사이에선 생소하고 거부감을 유발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이는 사실이다.

말 못하는 짐승들에게 연민을 느껴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 알고 보면 모두 생명에 대한 존중을 마음에 담고 사는 분들이다. 우리의 얕은 사고로는 감히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시골의 노인 세대가 아닌 필요 이상으로 고기를 탐닉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맛있는 고기를 떠올리기 전에 도살된 동물에 대한 측은지심을 한 번 마음 속으로 떠올려보자. 오늘은 초복이니까 말이다.


#복날#애완동물#생명 존중#강아지#개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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