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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한참 이불 위에서 뒤척이고 있을 토요일 아침인데도 마음이 급하다. 2000년식 구형 아반떼 트렁크에 작은 텐트와 타프(햇빛이나 비를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천막), 그리고 1박을 할 수 있는 몇 가지 짐을 챙겨 넣었다. 경기도 양주에서 나를 기다리는 일행을 만나러 출발했다. 그는 일 주일 전부터 길이 막히기 전에 빨리 가야 한다고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느니 졸린 아침을 맞이하는 게 백 번 낫다. 하늘에 회색빛이 도는 게 비가 한바탕 쏟아질 기세다. 부디 타프를 칠 때까지만 참아다오.

지난 6월 28일 목적지인 경기도 가평 경반분교로 가기 전 일행이 있는 양주에 들렀다. 그의 SUV 차에 짐을 옮겼다. 나의 구형 아반떼로는 가기 어려운 오지에 경반분교가 있기 때문이다.

차바닥은 자연에게 양보하실 건가요? 정비가 안 된 비포장로는 멀미를 부른다.
▲ 차바닥은 자연에게 양보하실 건가요? 정비가 안 된 비포장로는 멀미를 부른다.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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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가는 길이 험난했다. 울퉁불퉁한 길에서 차가 심하게 출렁거렸다. 5000km도 타지 않은 새 차가 지나가기에는 무리인 길이었다. 일행은 차 바닥이 긁힐까 봐 오른 다리와 양 손목에 잔뜩 힘을 주었다. 내 등에도 땀이 흘렀다. 운전에 집중하기 위해 음악도 꺼버렸다.

등판이 시원해지다 못해 서늘해질 때쯤 나무에 걸린 해먹이 보였다. 살았다, 도착이다. 너른 운동장 후미진 곳에 자리를 잡고 타프를 쳤다. 짐을 부렸다. 한바탕을 땀을 쏟고 정돈이 끝나자 가장 먼저 캠핑 의자를 펴고 앉았다. 등을 기대니 뭉쳤던 어깨와 등의 근육이 비로소 풀리면서 저릿저릿하다. 오지캠핑을 시작하는 짜릿한 신호다.

캠핑은 시작됐는데 우리는 별로 할 게 없었다. 곧 마음은 느긋해지고 눈꺼풀은 무거워졌다. 낮잠이나 즐기며 날아드는 벌레나 손으로 쫓아내는 게 전부다. 배가 고프기 시작하자 우리는 화로에 장작불을 올리고 감자와 오리, 파를 구워 미지근한 맥주와 함께 속을 채웠다.

꼬치도 꿰야 제맛 옥수수소시지와 파의 맛남.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 꼬치도 꿰야 제맛 옥수수소시지와 파의 맛남.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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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쯤 소나기가 내렸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타프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경반분교의 빨강 지붕을 배경으로 떨어지는 굵은 빗줄기를 가만히 앉아 구경했다. 캠핑의 본질인 '게으름'을 음미했다.

물방울 또르르 타프에 맺힌 물방울이 굴러가면 내 시선도 따라간다.
▲ 물방울 또르르 타프에 맺힌 물방울이 굴러가면 내 시선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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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은 무미에 가깝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게다가 이곳은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전화가 걸려오기 하는데 걸리지는 않는다. 문자를 주고받는 것만 겨우 된다. 캠핑객들이 전화 한번 해 보겠다고 스마트폰을 하늘로 높이 들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나도 집에 두고 온 식구들이 생각났지만, 대리운전 광고 등 스팸 전화가 오지 않으니 진정한 평화를 얻은 기분이었다.

맑은 물이 소리 없이 흐르는 계곡이 코앞에 있었지만 아직 발을 담그기에는 이른 날씨였다. 그래서 우리는 배가 부를 때까지 먹다가 가만 누워 잡담을 하고, 잠을 청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투명한 계곡물 발을 담그면 찌릿하다. 여름엔 이만한 낙원이 없을 것이다
▲ 투명한 계곡물 발을 담그면 찌릿하다. 여름엔 이만한 낙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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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아날로그캠핑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아날로그캠핑#경반분교#캠핑#오지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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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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