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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7월 2일 오후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백미리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현장을 방문한 숨진 유치원생의 어머니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불탄 건물 앞에서 끝내 오열하고 있다.
1999년 7월 2일 오후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백미리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현장을 방문한 숨진 유치원생의 어머니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불탄 건물 앞에서 끝내 오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지만, 나에게 지난 15년은 정지된 시간과 같다.

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참사. 당시 건물에는 유치원생, 교사 등 총 537명이 투숙해 있었고, 발화 장소인 301호에는 소망유치원생 18명이 잠들어 있었다. 이 참사는 잠긴 문에 갇혀 불길을 피하지 못한 어린이들을 포함해 총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였다.

오늘(6월30일)은 꼭 15년 되는 날이다.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역사 속 그 순간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당시 유가족 대표로 앞장서서 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돌아온 메아리는 공허할 뿐이었다. 소망유치원 원장과 인솔교사 등 개인 과실만 부각된 채 부실건축물을 낳게 한 건축업자와 관련 공무원의 책임은 허공  속으로 묻혀 버렸다. 창고로도 사용하기 부적합한 건물, 하다못해 가축의 축사로도 사용하기 어렵다던 그런 건물에 겉포장만 하여 어린 아이들을 투숙시킨 건 그야말로 살인행위였다.

그렇게 내 목숨보다도 소중한 쌍둥이 두 딸을 보낸 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예전의 나는 없었다.

세월호 침몰 참사는 정부가 저지른 살인이다

사고 발생 이듬해인 2000년, 난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유가족과 변호인단과 힘을 합쳐 '어린이가 안전한 세상을 한번 만들어보겠다'며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설립했다. 전국을 돌며 지난 14년간 안전교육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지만, 사회 곳곳에 뿌리깊이 자리한 안전불감증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씨랜드 화재참사의 기억 속에서 나의 영혼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고, 그 후로도 참사 소식을 접할 때면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쓸어안으며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만 했다.

지난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씨랜드 참사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세월호 유족들의 외침소리는 15년 전과 다를 바 없다. 세월호 침몰 참사는 정부가 저지른 살인이다.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하여 선박을 개조하고 과적을 하고 승객보다 화물을 더 중요시한 회사의 탐욕과 무책임, 이러한 선박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관련기관과 정부, 회사와 연관된 종교단체가 벌인 살인이다. 구조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단 한명도 살려내지 못한 해경 또한 살인의 공범자다.

사고 초기 우왕좌왕하던 대책본부의 모습과 일부 부적절한 처신 등... 안산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와 진도 팽목항을 잇달아 방문했던 난, 안전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현재 모습에 며칠 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왜 이러한 참사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 것인지, 왜 후속조치는 미래의 사고를 예방하는 수단이 되지 못하는 건지... 안타까운 마음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씨랜드 참사 전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를 비롯해 그 이후에는 대구 지하철 화재, 태안 해병대캠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고양터미널 화재 등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참사의 수습과정은 어찌나 그리도 똑같은 건지...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도 벅찬데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직접 여기저기 쫓아다녀야하는 현실은 왜 그리도 과거와 똑같은지...

이번만큼은 진상규명이 돼서 참사 반복되지 않길...

'잊지 말아 주세요, 4.16' 세월호침몰사고 71일째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등교를 시작한 지난 6월 25일 오후 경기도 안산 세월호사고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에 희생자들 영정 위로 '잊지 않겠다'는 의미의 대형 노란리본이 걸려 있다.
'잊지 말아 주세요, 4.16'세월호침몰사고 71일째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등교를 시작한 지난 6월 25일 오후 경기도 안산 세월호사고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에 희생자들 영정 위로 '잊지 않겠다'는 의미의 대형 노란리본이 걸려 있다. ⓒ 이희훈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 누군가 나서야 한다."

계속되는 되뇜 끝에 대구 지하철 화재, 인천 인현동호프집 화재, 태안 해병대캠프 사고,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등 역대 참사 유가족들의 연락처를 알아봤고, 지난 6월 중순 함께 모였습니다. 그 누구보다 유가족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이들이 "세월호만큼은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며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씨랜드 15주기이자 사랑하는 두 딸의 15번째 기일이기도 한 오늘, 두 달이 지나도록 찾지 못한 가족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내 아이와 내 가족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서명운동을 하고 있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국회·청와대 앞에서 정부와의 처절한 싸움으로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치고 속은 다 타들어 갔을 그분들에게 이 말은 꼭 전하고 싶다.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부디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이번만큼은 정확한 진상규명이 돼서 제대로 된 사후수습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 함께 힘을 모아주시길...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두 딸아이에게 떳떳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나 역시 있는 힘을 다해 여러분들을 도울 것이라고...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어린이 안전재단 대표입니다.



#씨랜드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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