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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생존자의 조기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청계광장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생존자의 조기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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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학생 244명, 일반인(교사 포함) 48명. 도합 292명. 6월 17일 현재 세월호에 탑승했다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사람들의 수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을 충격과 슬픔에 빠트렸다. 특히 수학여행을 가다가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사망률이 높아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부실한 안전 시스템이 빚어온 참사였다. 1995년, 50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다음날 동아일보 1면에 실린 기사 제목, "언제까지 당해야 하나"가 생각난다. 대한민국 안전 시계는 그 후로 조금도 지나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매주 토요일 청계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최대 1만 명이 참여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참사 직후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무책임과 무능을 질타했다. 시민들은 묻는다. '만약 배 안에 장관 자식이 타고 있었어도 그렇게 구조가 늦었을까.' 그리고 주장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 책임자로서 일련의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진하십시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은 "일부 급진세력이 주도한 세월호 추모 촛불집회에서는 정권퇴진 구호가 등장했다"면서 "전 국민을 비통함에 빠지게 한 참사를 갈등과 분열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금도'(한계선이라는 뜻으로 정치권에서 통용되는 말)에서도 한참 벗어난 것이자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에 이중 삼중의 고통을 안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홍 사무총장은 "정치 선동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권 퇴진 구호가 '금도를 벗어난 정치 선동'이란 것이다.

국가기관 선거개입 의혹 때도 '정권 퇴진' 구호에 '대선 불복' 운운

국가기관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서울역에서 열리고 있다.
 국가기관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서울역에서 열리고 있다.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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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정권 퇴진 구호'에 반발한 것은 세월호 참사 때만 있던 것이 아니다. 이전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심했다. 진상규명만을 요구하며 '정권 퇴진'은 꺼내지도 않던 민주당에게 '대선 불복 하는 것인가'라며 늑달같이 달려들던 것이 그들이었으니 말이다.

민주당이 제출한 국정원 특검 법안도 '대선불복 특별법', 철도노조의 철도민영화 반대 파업 당시 경찰의 체포영장 시도에 야권이 한 목소리를 내도 '대선불복 연대'. 심지어 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상임고문이 '1219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는 책을 냈을 때도 새누리당은 "대선 불복의 역풍을 맞을 것이다"라고 비난했었다.

겨우 장하나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하야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은 대선불복에 엄중하게 대처하겠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장하나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국회 의사일정 보이콧을 검토하고, 각 지역당에서 이를 '대선불복 망언'으로 규정한 규탄집회를 열었다. 당시 새누리당에게 '정권 퇴진'은 절대 해서는 안될 금기였다.

1999년 김대중 정권 - 한나라당 "정권퇴진투쟁도 심각하게 고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제2의 민주화투쟁 관련 기사이다.
▲ 동아일보 1999년 5월 7일자 1면 기사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제2의 민주화투쟁 관련 기사이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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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새누리당의 과거는 어떨까. 지난 민주 정권 10년 동안의 새누리당, 당시 한나라당을 돌아보았다.

1999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여의도 당사 기자회견에서 "김대중 정권의 독재화와 국정파탄을 막기 위해 제2의 민주화투쟁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그 제2의 민주화투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뒤이어 이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파렴치한 민주파괴 국정파탄 행위가 계속될 경우 정권퇴진투쟁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밝힌다"고.

정권 퇴진운동까지 언급한 한나라당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국정운영 능력이 없는 소수의 김 대통령 친위세력이 정부를 농단, 국정의 기초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비난하며 "이 정권은 그런데도 국민에게 사과 한번 하지 않고 대기업 강제빅딜, 대한항공 경영진 강제 퇴진, 국회 날치기 등 힘의 논리에 취해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이 총재는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같은 권력기관들의 정치적 중립이 무너지고 정권의 도구화하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군부를 등에 업고 독재정치를 하던 것이 지금은 노회한 정치기술로 독재화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민주주의와 국민을 내세운 독재화의 길목에서 야당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제2 민주화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한 동아일보 기사(1999년 5월 7일자 3면)에서 이 총재는 "당장 정권 퇴진운동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지만, 한나라당의 장외 집회에서 "김대중 정권 퇴진하라"는 구호를 연발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권 퇴진운동이 아니라는 이 총재의 말은 설득력 없어 보인다.

2004년 노무현 정권 - 한나라당 "닉슨 대통령이 하야한 직접 원인도..."

한나라당의 노무현 대통령 하야 및 탄핵 관련 기사이다.
▲ 프레시안 2003년 12월 30일 기사 한나라당의 노무현 대통령 하야 및 탄핵 관련 기사이다.
ⓒ 프레시안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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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정권 퇴진' 요구는 김대중 정권에 이어 노무현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노 정권에서는 거의 매년 '정권 퇴진' 언급이 있었지만, 그 절정은 2004년에 있었던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다.

200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노 대통령이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 있다면 합법적인 범위에서 모든 것을 하고싶다"고 말한 것을 두고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판정을 내렸다. 여기에 얼마 전 국무총리 후보직에서 낙마한 당시 안대희 중수부장이 수사한 '노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에 대해 검찰이 '불법 대선자금으로 노무헌 대통령이 당시 대표로 있던 장수천 빚을 갚은 것으로 들어났다'는 취지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한나라당은 "대통령 하야"까지 언급하며 전방위 공세를 펼쳤었다.

당시 <프레시안> 기사를 보면 한나라당 이재오 사무총장은 "노 대통령은 이제 스스로 물러나야 할 때가 됐다"면서 "노 대통령이 지금까지 한 말을 되짚어 보더라도 더이상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고 노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닉슨 대통령이 하야한 직접 원인도 워터게이트 빌딩에 도청장치를 했냐 안했느냐가 아니라 거짓말을 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돼서 탄핵을 당했다"고 말하면서 "대통령직은 그만큼 도덕적으로 엄격한 기준을 국민과 역사가 요구하는 자리"라며 노 대통령의 하야를 거론했었다.

그렇게 줄기차게 "대통령 하야"와 "노무현 정권 퇴진"을 요구하던 한나라당은 급기야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민주 정권 10년간 반복해온 '정권 퇴진 구호', 새누리당 자신이 들어야 할 것 아닌가

16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사학법 강행처리 무효 대규모 장외집회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의원들이 사학법 반대구호를 외치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사학법 강행처리 무효 대규모 장외집회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의원들이 사학법 반대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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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정권 10년 동안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언제나 '정권 퇴진,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심지어 강제로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려는 시도까지 했다. 그랬던 새누리당이, '정권 퇴진, 대통령 하야' 구호에 반발심을 가진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전 한나라당이 했던 식으로라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번 퇴진했을 것인데 말이다.

당시 한나라당이 했던 주장들은 곱씹어볼만 하다. 경영진 강제 퇴진, 국회 날치기,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들의 정권의 도구화, 민주주의와 국민을 내세운 독재화, 워터게이트 사건의 예... 모두 한나라당이 여당으로 있던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듣던 이야기다. 새누리당은 '정권 퇴진 구호'를 말하는 세력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과거 자신들이 했던 발언들을 돌아보라. 부끄럽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abask08)에도 싣습니다.



태그:#정권퇴진, #대통령하야, #세월호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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