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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묻는 선거가 됐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마케팅'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박근혜 심판론' 등 여야 모두 예외 없이 박 대통령을 중심에 둔 선거전략을 구사하면서 박 대통령이 선거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선거의 판을 바꾼 세월호 참사는 선거 막바지 새누리당의 '정권수호론'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정권심판론'의 대결로 치환됐다.

세월호 참사가 제기한 화두 끌어안지 못한 여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른 선거였지만 정작 '세월호 이후'를 이야기 하지 않는 선거가 돼버렸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규제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문제 그리고 안전 문제 등 공론의 장에서 토론돼야 할 주요 의제는 사실상 사라졌다. 그 자리는 '박근혜의 눈물'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차지했다.

<정치의 발견>의 저자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한국 민주주의의 병리현상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어김 없이 드러나고 있다"라면서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중요한 사회 갈등이나 사안을 공공의제로 만들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인데 이번 선거는 중요한 의제가 없다, 중요한 의제를 두고 공론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상훈 대표는 "오히려 의제를 없애버리는 선거를 치르는 느낌"이라며 "공적 의제가 정치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비정치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5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유가족이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조속한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고 있는 모습.
지난 5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유가족이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조속한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도 "세월호 참사는 불가항력이었지만 여야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이번 선거가 달라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새누리당은 집권여당으로서 '대통령을 지켜달라'가 아니라 선거 이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이야기했어야 하고, 야당도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만 했을 뿐 자신들의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는 "'세월호'는 안전 문제를 넘어서 무엇이 좋은 삶인지 국민적 경각심을 일깨워준 사고이지만, 언론도 정당도 제 역할을 못하면서 선거 이슈가 축소됐다"라면서 "선거 이후가 더 중요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가족이 선거 변수?...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사진은 지난 5월 12일 후보 수락연설을 하던 도중 "제 아들의 철없는 짓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용서해주시기 바란다"라며 울먹이는 모습.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사진은 지난 5월 12일 후보 수락연설을 하던 도중 "제 아들의 철없는 짓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용서해주시기 바란다"라며 울먹이는 모습. ⓒ 이희훈

이번 선거에서는 가족 이슈가 주목을 받는 이례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특히 가족들의 언행이나 SNS에 올린 글이 선거 판세를 흔드는 변수로 등장했다. 과거 주로 가족들의 부동산 투기나 병역 문제, 위장 전입 등이 문제가 됐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는 막내아들이 '국민 미개' 발언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역풍을 맞았고,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딸이 "자녀를 돌보지 않은 아버지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라는 글을 역시 페이스북에 올려 큰 상처를 입었다.

또 이번 선거에서는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기 위해 자식과 부인 등 가족을 공격하는 네거티브도 기승을 부렸다.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의 경우 상대 후보 측이 부인의 잠적설과 성형논란을 제기하는 등 공세를 폈다. 결국 박원순 후보는 사전투표장에 부인과 함께 나와서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가족이 선거의 변수로 등장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조현연 교수는 "선거는 현재 집권 여당 평가와 미래 전망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개인적인 문제들이 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정상적인 선거가 아니다"라며 "정치 외적 변수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

박상훈 대표는 "후보 부인의 성형 의혹, 이혼한 사람의 가족 상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이것들을 가지고 선거를 치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라며 "아들과 딸, 부인 등 개인사가 정치 문제로 치환되는 것은 퇴행"이라고 지적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도 "가족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후보의 도덕성 검증으로도 볼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지만 주로 네거티브용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불신을 심화시킨다"라며 "지방선거와 같은 큰 선거에서 후보 선택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존재감 드러내지 못한 진보정당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모두 이번 6.4지방선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모두 이번 6.4지방선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통합진보당·정의당

진보정당이 존재감을 거의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도 이번 선거의 특징으로 꼽힌다. 2012년 당 분열과 지난 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겪었던 통합진보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3곳, 기초단체장 42곳 등 사상 최대 규모의 후보자들을 출마시켰지만, 접전지 지역 후보들이 사퇴하는 등 힘겨운 선거전을 치르고 있다.

정의당도 대전·대구·경북·울산 4곳에 광역단체장 후보를 냈고, 기초단체에선 현직 구청장이 있는 인천 남동·동구에서 기대를 걸고 있지만 당 전체적으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야권 단일화에 힘입어 구청장 3명 등 142명을 당선시켰지만 '화려한' 과거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당선 가능성뿐만 아니라 2010년의 무상급식과 같은 진보적 아젠다(의제)도 주도하지 못했다는 점은 특히 뼈아프다.

조현연 교수는 "진보정당이 대중적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어떻게 준비해야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현재의 진보 다당제가 선택권을 넓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좁히는 결과를 낳고 있는 만큼 통합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서복경 교수는 "진보정당의 현재 상황은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 등을 겪으면서 세월호 사건이 없었더라도 이번 선거는 진보정당에게 대단히 어려운 선거였다"라면서 "하지만 길게 보면 양당 체제가 흡수하지 못하는 제 3당의 공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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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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