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 출마 후보 아들·딸들이 판세의 변수로 떠올랐다. 후보의 자녀들이 쓴 글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부모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를 두고 '자식들의 대리전'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보수 진영 후보들은 '자녀 변수' 때문에 울상 짓는 모습이다. 고승덕 후보는 "아버지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딸의 폭로로 지지율 1위 자리를 뺏길 위기에 처했고, 정몽준 후보는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는 아들의 글로 구설에 올랐다. 반면, 진보 진영 후보들은 아들·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쏠쏠한 효과를 얻고 있다. 아들·딸들의 예상치 못한 '개입'이 이번 선거 지지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관심 밖 교육감 선거, 후보 자녀들이 판 바꾸다
후보의 자녀들은 조용하던 이번 교육감 선거를 쟁점으로 끌어올렸다. 애초 교육감 선거는 서울시장 선거 등에 비해 유권자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특히 올해는 이슈를 일으킨 교육정책이 없어, 후보도 모른 채 찍는 '깜깜이 투표'가 이뤄질 수도 지적이 제기돼왔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2명 정도(24.6%)만이 교육감 후보를 안다고 답했다.
그랬던 교육감 선거가 막판에 접어들어 시민들의 화두에 오르기 시작했다. 고승덕 후보의 딸이 아버지에게 '직격탄'을 날린 게 결정적 계기였다. 고 후보의 딸 캔디 고(한국명 고희경·27)씨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버지는 자식들을 전혀 교육하지 않았다"며 "교육감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고 후보와 딸 사이에 반박과 재반박이 오가면서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여러 차례 오를 정도로 이슈로 떠올랐다. 트위터 등 SNS에서는 고 후보를 향한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자녀의 신뢰를 잃은 아버지가 서울의 교육을 책임질 수 있냐"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1위를 달리던 '고시 3관왕' 고 후보의 지지율이 이번 논란으로 꺾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였다.
조희연 후보도 아들 덕분에 덩달아 화제가 됐다. 딸이 아버지의 사퇴를 주장해 입길에 오른 고 후보와 달리, 조 후보는 아버지의 지지를 적극 호소하는 아들 덕에 주목을 받았다.
조 후보의 아들 조성훈씨는 "조금이나마 아버지 조희연의 이름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면서 지난달 29일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글 하나를 올렸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인간 조희연은 사회적 약자를 어느 순간에서나 생각하는 사람이고, 지나칠 정도로 돈 욕심 없이 살아왔으며, 누구보다도 제 말을 경청해주신 분"이라고 주장하며 아버지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조씨의 글은 2일 현재 조회 수 30만 건을 돌파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교육감 선거 이슈, '무상급식'→'자녀교육'... 어떤 영향 미칠까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 역시 선거 시작부터 아들이 발목을 잡았다. 정 후보 막내아들은 지난달 세월호 참사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통령이 '최대한 수색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는데도 소리 지르고 욕한다"며 "국민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 건데, 국민이 미개하니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당시 정 후보는 "아들의 철없는 발언에 사과드린다"며 수차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후 부인 김영명씨가 아들의 일을 두둔하는 발언을 해 또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트위터에서는 "정 후보는 아들을 데리고 직접 세월호 사고 유가족을 찾아가 사죄해야 한다"며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 후보들은 자녀들의 지원으로 힘을 얻는 모습이다. 대구시장에 출마한 김부겸 새정치연합 후보의 딸인 배우 윤세인씨(본명 김지수)는 지난달 27일부터 아버지를 위해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SBS 드라마 <잘 키운 딸 하나>에 출연한 윤씨는 '김부겸 딸 윤세인'이라고 쓰인 흰색 티셔츠 차림으로 대구 시내를 돌며 젊은층 표심을 모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후보 자녀들의 '행보'가 선거에서 표를 결정하는 척도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특히 지난 2010년 교육감 선거 때는 '무상급식'이 후보를 결정하는 기준이었다면, 올해는 '자녀교육'이 투표의 잣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교육감 후보로서 자녀의 신뢰를 받아오는 교육을 해왔느냐'로 후보를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2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고 후보는 딸의 폭로로 부모로서의 '품성'에 타격을 입었다"며 "이번 선거에서 그에게 분명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소장은 "고 후보 지지율이 문 후보 쪽으로 많이 움직이겠지만, 일부 젊은층은 조 후보에게 옮겨갈 수도 있다"며 "상대적으로 조 후보가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후보의 아들 논란과 관련해서도 이 소장은 "세월호 사고로 '안전'이 중요해진 이번 선거판에서 '개발·성장'의 아이콘인 정 후보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런데 아들이 세월호 참사로 예민해진 국민 정서를 건드려 정 후보는 선거 출발선부터 뒤로 밀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자녀 변수'가 새롭게 떠오른 이번 지방선거. 과연 어느 부모가 아들·딸 때문에 웃고, 울 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