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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굵직한 스포츠 대회가 두 번이나 있다. 하나는 6월 13일부터 7월 14일까지 있을 브라질 월드컵이고, 또 다른 하나는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인천에서 개최될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이다. 세월호 참사 여파가 가시지 않은 마당에 세계인의 축제라 할 수 있는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으나,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되, 스포츠가 슬픔을 극복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스포츠와 인종차별에 대해 생각해 보되, 단순히 스포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을 돌아봤으면 한다.

인종차별이 스포츠에 만연?

우리는 인종차별이 나쁘다는 것을 배워왔고, 그러한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늘날 인종차별은 각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종차별이 스포츠 분야에서 만연해 있다기보다는, 스포츠라는 영역이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에 스포츠 선수들에 의한 인종차별이 쉽게 노출되고 언론의 관심을 유발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종차별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남의 일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다른 나라에서나 있어왔고, 문제가 되는 일이겠거니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종차별을 이야기하면, 흑인 노예제도 폐지 문제로 남북전쟁을 치렀던 미국이나 흑인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1973년까지 백호주의(White Australianism)를 택해서 앵글로색슨계가 아닌 유색인종의 이민을 금하는 극단적인 차별정책을 고수했던 오스트레일리아나,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내세우며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던 히틀러 등을 떠올린다.

혹자는 인종·민족적 동질성이 강한 대한민국에서 인종차별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07년 우리 정부가 제출한 인종차별철폐조약 이행보고서를 심사한 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오히려 그런 부분이 인종차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 CERD는 "한국이 민족의 단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해당 영토 내에 사는 서로 다른 민족과 국가 그룹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의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기록했다. 그에 따라 CERD는 한국의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 '순수혈통주의'가 인종적 차별과 우월 관념으로 사회에 널리 퍼져있음을 우려하며,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제거하는 법·제도의 신속한 추진을 권고했었다.

한국에서의 인종차별

우리사회가 이주노동자에 대해 노골적으로 차별한다는 것은 언론을 통해서 많이 보도되었지만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출국 후 14일이 지나야 지급한다고 하는 퇴직금 문제도 그렇다.

이주노동자에게는 직업 이전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고, 근로계약 기간 역시 고용주 의사에 따라 3년 혹은 그 이상까지 임의로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주노동자로 하여금 좀 더 나은 노동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도록 하고 있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가장 차별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화된 차별 정책 말고도 우리사회는 인종차별을 인종차별인줄도 모르고 무지함 속에 갇혀 있는 경우가 있는데, 누군가 그 문제를 지적하고 논란이 되면, '몰라서 그랬다', '실수다'라는 말로 무마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인종차별을 인종차별인줄도 모르는 무지함

지난 24일(토)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인천아시안게임 통역자원봉사자로 선정돼서 자원봉사자 사전교육을 수원시청에서 세시간동안 받았다. 하지만 아시아인의 축제를 준비하는 자리인지 묻고 싶을 정도로 눈살을 지푸리게 하는 내용들이 포함 돼 있다.

교육에 참여하기 전에 먼저 교육을 받았던 후배 역시 교육 내용의 부실함과 함께 차별적 행위가 있었음을 성토한 것을 페이스북에서 보았던 터라, 문제점을 지적해 주고 싶었으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듣고 있어서 질의응답 시간이 없다 보니, 그 문제를 현장에서 지적하지 못했었는데, 문제가 된 내용 중 한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 자원봉사자 소양교육 소양교육 중에 인종차별적인 예화가 있었다.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 자원봉사자 소양교육소양교육 중에 인종차별적인 예화가 있었다. ⓒ 고기복

강의 내용은 에티켓, 매너에 관한 내용이었다. 강사는 자원봉사자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매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예화를 들었는데,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중국 고위 관료와 만찬을 할 때 발생한 에피소드에 관한 것이었다. 만찬에 초대받은 중국 고위 관료가 서양 테이블 매너를 몰라서, 손을 씻으라고 테이블에 올려놓은 핑거볼(finger bowl)에 있던 물을 마셔버리자, 엘리자베스 여왕이 중국 고위 관료가 같이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로부터 창피당할 것을 염려하여 핑거볼에 담긴 물을 재빨리 마셨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도 여왕을 따라 핑거볼 물을 마셨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런 식의 예화가 인종차별적 예화의 모범이라고 본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핑거볼 이야기는 매너나 배려를 이야기할 때, 종종 들을 수 있는 예화인데, 우선 그게 사실인지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그 속에 여왕에 대한 지나친 숭배와 백인에 대한 인종적 우월주의와 함께 중국인, 동양인에 대한 비하 혹은 자기멸시가 담겨 있기 때문에 더 큰 문제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명백한 인종차별을 매너 혹은 배려로 포장하고 있는 역겨운 예화다.

핑거볼과 엘리자베스 여왕 예화가 갖고 있는 문제는...

일단 이 예화는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그 중심에 핑거볼이 있다. 핑거볼은 서양 요리에서, 음식을 먹은 후에 손가락과 입을 씻기 위하여 물을 담아서 내놓는 그릇으로, 핑거볼을 내놓을 때는 일반적으로 마실 물과 구분하기 위해 레몬이나 꽃잎을 띄워놓는다.

대부분의 핑거볼 예화는 핑거볼이 식후가 아닌 식전에 나온 것으로 이야기되는데, 그 예화를 드는 사람들은 그만큼 자신들의 문화적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예화에 나오는 영국 여왕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종종 빅토리아나 메리 여왕으로 바뀌기도 한다. 게다가 핑거볼 물을 마신 사람은 중국고위 관리로부터 인도 귀족, 아프리카 추장 등 다양하게 변신을 한다.

그럼 이렇게 여왕도 바뀌고, 초대된 손님도 바뀌는 예화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사실 이 이야기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를 워털루 전투에서 물리쳤던 웰링턴 장군이 등장하는 것이 가장 오래된 버전인데, 이 역시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웰링턴 장군과 핑거볼 이야기는 이렇다. 나폴레옹에게 최후의 패배를 안긴 워털루 전투를 이끌었던 웰링턴 장군과 병사들을 영국 여왕이 초청하여 승전 축하연을 베푸는 자리에서, 시골 출신의 한 병사가 그 물을 마셔 버렸다.

순간 이 광경을 본 많은 사람들이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 순간 웰링턴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워털루 전투에서 용맹하게 싸워 승리를 거둔 저 젊은 병사를 본받아 우리 모두 이 핑거볼로 축배를 듭시다." 그리고는 물을 쭉 들이켰다. 그 순간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모두가 핑거볼로 축배를 든 후 장내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고 하는 게 이 예화의 탄생 비화다.

내용만 듣고 보면 상당히 감동적이다. 그런데 워털루 전투는 윌리엄 4세 재위 기간이던 1835년에 있었다. 여왕 재위 기간이 아니었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건설한 빅토리아 여왕은 2년 뒤인 1837년에 즉위했다. 즉 이 예화는 배려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지어낸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제는 허구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회자되면서 각색을 거듭하는 가운데 중국, 인도, 아프리카인은 기본적인 식탁 매너도 모를 정도로 미개하지만, 영국 여왕이나 영국 웰링턴 장군은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인품이 훌륭한 사람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물론 해당 강의를 한 강사는 중국인을 비하할 의도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매너에 배려가 더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예를 찾다 보니, 영국 여왕과 중국 관리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인도, 아프리카인들이 이런 예화를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중국, 인도, 아프리카인은 예화를 드는 사람에 따라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한국 사람이 될 수도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인종차별적 예화라고 하지 않겠는가?

한국어 교육 중인 이주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에게 핑거볼 예화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일까? 손으로 식사하는 문화를 갖고 있는 국가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핑거볼의 물을 마신 여왕을 비웃을 것이다. 자신들 국가에서는 핑거볼에 놓인 물의 용도를 모르는 고위 관료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어 교육 중인 이주노동자들이주노동자들에게 핑거볼 예화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일까? 손으로 식사하는 문화를 갖고 있는 국가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핑거볼의 물을 마신 여왕을 비웃을 것이다. 자신들 국가에서는 핑거볼에 놓인 물의 용도를 모르는 고위 관료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고기복

이런 아시안게임 자원봉사자 교육에서조차진행되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우리사회가 인종차별에 대해 얼마나 둔감한지 말해 주는 지표라고 본다. 인종차별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본다.

모르고 무심히 하는 행위가 인종차별일 수 있다.

지난 19일에 프로야구 두산 외국인 타자 칸투(32)가 자신의 트위터에 고등학교 단체 사진으로 보이는 사진 한 장을 올렸다가 '동양인 비하' 논란을 일으켰었다. 사진에는 10여 명의 동양인 남성의 얼굴이 합성돼 있었는데, 사진 밑에 '어떤 학생이 자고 있나요' '쌍둥이 형제를 찾아보세요' 등의 5가지 과제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서양인들 입장에서 동양인들의 얼굴은 다들 비슷하게 보여서 그 얼굴이 그 얼굴이지 않느냐는 인종적 무시가 담겨 있다고 네티즌들이 지적하면서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다.

논란이 일자 멕시코계 미국인인 칸투는 '모든 한국 팬들에게', "오해가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고, 두산 구단은 21일 잠실구장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열어 다시 한 번 사과했다. 기자회견에서 칸투는 "완벽한 내 부주의였다. 사건이 커지고 난 뒤 주의 깊게 살펴본 뒤 나 자신에 대해 너무 화가 많이 났다"고 말하고, 인종차별에 대한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기자회견 다음날인 22일, 칸투는 한화전에서 4번 타자 겸 1루수로 출전하여 연타석 홈런을 치며 매서운 타격감을 자랑했다. 이번 경우는 한국에서 취업 중인 외국인 선수, 이주노동자가 인종차별 가해자가 된 드문 경우인데, 실수였음을 호소하는 칸투를 한국사회는 상당히 너그럽게 받아들이면서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모르고 했다는데, 본의가 아니라는데, 그럴 수도 있지'하는 너그러움 속에는 인종차별을 사과 한 마디로 덮을 수 있는 가벼운 실수 정도로 보는 인식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게 미국이나 유럽에서 발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난 4월 27일, 미국 프로농구 NBA의 LA클리퍼스 구단주인 도널드 스털링(80)이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내 경기장에 흑인과 함께 오지 마라"라고 말한 음성파일이 언론에 공개되자, NBA 사무국은 언론 보도 사흘 뒤인 30일에 전격적으로 스털링에게 인종차별 발언 대가로 250만 달러(약 26억원)의 벌금과 함께, 리그 영구 제명과 LA클리퍼스 강제 매각이라는 징계안을 발표했다.

이처럼 선진국 스포츠계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한 것도 아닌, 사적 관계에서 한 발언마저 인종차별일 경우 강력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인종차별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NBA 사무국이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그 사회가 인종차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우리사회는 칸투의 예에서 보듯 아직까지 인종차별에 너무 너그럽다.

인종차별에 너그러운 대한민국이라고 성토하는 이유

칸투가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겠으나, 그가 외국인이라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 4월 프로축구 포항의 노병준 선수가 자신의 트위터에 "내일 경기 뛰다가 카누테 한 번 물어버릴까? 완전 이슈되겠지? 새까매서 별 맛 없을 듯한데"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카누테는 중국 베이징 궈안 소속의 흑인 선수다.

노병준은 논란이 일자 트위터에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덤비면. 아무튼 뭐 오해의 소지가 있다니 삭제는 해야겠네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와 관련해 프로축구연맹은 그에게 어떠한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던 LA 클리퍼스 구단주는 논란의 일자 바로 사과를 했고, 전립선암으로 죽음을 앞에 둔 환자요, 80이라는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적 발언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했다.

한편 노병준 선수의 공개적인 트위터 글과 그 후의 반응을 놓고 보면, 영구 퇴출 정도가 아니라, 포항 축구단 해산까지 갈 수 있는 수위였지만 구단 자체 징계로 포항 지역 20시간 사회봉사가 전부였다. 선수나 구단이나 프로축구연맹이나 인종차별적 발언에 대해 전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체류 외국인이 많아지고, 다문화사회라고 말을 하는 우리시대에 인종차별은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야기가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왜 나쁜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무지한 가운데 내뱉은 한 마디가 인종차별이 될 수 있는 감수성을 우리사회가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런 고민과 감수성이 없이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인종차별이라는 독버섯은 우리사회를 잠식할 것이다. 인권감수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인종차별#이주노동자#인천아시안게임#자원봉사#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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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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