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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와 관련된 문제 하나. 서울 성북구와 노원구, 그리고 경기 부천시의 공통점은?

모두 '생활임금'이라는 정책을 시행하는 기초자치단체다. 게다가  김만수 부천시장, 김영배 성북구청장, 김성환 노원구청장. 공교롭게도 이들 세 명은 모두 청와대 비서관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참여정부의 마지막을 함께 한 만큼 이들 셋은 정치적으로 '친노'다.

"예! 친노라고 표현된 우리는 폐족입니다.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노 전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주고 토로했던 심경이다. 폐족(廢族)은 '조상이 큰 죄를 지어 후손이 벼슬에 오르지 못하는 일족'을 뜻한다. 개혁에 실패한 정치인의 회한과 비통함마저 느껴진다.

이들이 몸담았던 참여정부는 귄위주의를 벗어나 국민과 소통하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았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사회양극화는 어쩌지 못했다. 기업은 성장을 강조하며 노동유연화를 요구했고, 노동계는 늘어나는 임금격차와 비정규직문제를 먼저 해결하라고 절규했다. 참여정부는 둘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고 비틀거렸다.

 2010년 6·2 지방선거 충남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안희정 후보
 2010년 6·2 지방선거 충남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안희정 후보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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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지사를 비롯한 참여정부 출신 정치인들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당시는 서거 1주기를 맞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향수가 고조되던 시기였다. 노 전 대통령의 '왼팔' 안희정은 충남지사에, '오른팔' 이광재는 강원도지사, '리틀 노무현' 김두관은 경남도지사로 돌아왔다.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역설적으로 폐족으로 전락했던 친노를 살렸다"(<세계일보>)고 평가했다.

이들에 가려졌지만 이때 김만수, 김영배, 김성환도 기초단체장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이들이 노 전 대통령의 후광에만 기댄 건 아니었다. 이들은 지역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분야는 저임금과 비정규직 문제였다. 사회 양극화 속에서 지역민을 가장 고단하게 하는 영역이었다.   

세 지자체장은 가장 먼저 공공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생활임금'을 시행했다. '생활임금'은 노동자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이다. 법정 최저임금이 노동자들의 실질적 생활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대안이다.

김영배 성북구청장과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2013년부터 행정명령을 통해 각각 구 소속 서비스공단, 도시관리공단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생활임금 제도를 시행했다. 2014년 기준으로 생활임금은 월 143만 원 가량으로 최저임금 월 109만 원보다 무려 34만 원이 많다. 김만수 부천시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지방정부의 자치법규인 조례로 부천시장의 생활임금 지급을 의무화했다.

생활임금 시행으로 공공부문 저임금 노동자들의 가계엔 숨통이 트였다. 일에 의욕도 생기고 소속감도 생겨 시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도 높아졌다. 자기의 노동이 존중 받는다는 자존감 때문이었다. '생활임금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6·4 지방선거 대표공약이 됐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임기 중 시행한 부천시의 '소통행정', 노원구의 '자살예방사업', 성북구의 '마을 만들기' 또한 지방정부의 대표적인 혁신사례로 꼽힌다.

소통의 달인 박원순의 '포스트 잇 민원' 원조는?

  시장실 한켠에 설치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포스트잇앞에 선 김만수 부천시장.
 시장실 한켠에 설치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포스트잇앞에 선 김만수 부천시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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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post- it)은 '소통의 달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민의 민원을 접수하는 주요 도구다. 박 시장 집무실의 벽면을 빼곡히 채운 노란 포스트잇은 '소통'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김만수 경기도 부천시장은 사실 포스트 잇 소통의 원조는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시장 취임 후 3개 구청을 방문했을 때 민원접수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박 시장이 보궐선거로 2011년에 당선됐으니 거짓은 아니다. 김 시장이 포스트 잇 소통을 하게 된 계기는 "대화의 장을 찾았지만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하는 (시민들의) 허탈한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포스트 잇 민원이 작은 소통이라면 보다 큰 소통은 정책결정에 시민사회를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김 시장은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예산편성에 주민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그리고 지역의 노동계와 경영계를 '노사민정 협의회'라는 틀로 묶어냈다.

노사민정 협력의 내용도 실하다. 사실 노동계의 요구나 불만을 들어주는 척 하며 제도권 내로 수렴하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노사민정의 한계였다. 그러나 부천에서는 오히려 노동계가 생활임금 시행 등 주요 노동정책을 제안하고 이끌어 간다.

김 시장의 소통행정은 2013년 지자체 청렴도 평가 종합청렴도 1위(국민권익위원회), 2회에 걸친 노사민정협력 활성화 대통령 표창(고용노동부)으로 평가 받았다. 시청노동조합 관계자는 "(시장이)시청 환경미화원 노동자들과 요구사항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고충을 듣고 간담회를 갖기도 한다"고 전했다.

삽질보다 사람이 우선이다

 목재팰릿 난방을 홍보하는 김성환 노원구청장
 목재팰릿 난방을 홍보하는 김성환 노원구청장
ⓒ 김성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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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보다 사람이 우선이다.'

4년 전 김성환 서울시 노원구청장이 지방선거에서 출마하며 내건 슬로건이다. 당시는 4대강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와 뉴타운 공약의 부작용으로 토건을 앞세운 이명박 정권에 국민들의 불만이 높던 때였다. 과감하게 개발 패러다임을 버리고 김 구청장이 택한 건 아기자기한 지역밀착형 복지·환경 정책이었다.

자살예방사업이 대표적이다. 자살은 빈곤과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김 구청장은 구청내 '자살예방팀'을 신설하고 19개 동에 '생명나눔센터'를 설립했다. 종교단체등과 연계해 상담교육을 수료한 주민들이 직접 '생명지킴이'로 나섰다. 생명지킴이들은 자기 이웃의 자살위험군에 해당하는 취약계층주민들을 상담하고 돌봤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10년 12월 전국 최초로 '생명존중문화조성 및 자살예방에 관한 조례'도 제정했다.

사업 시작 전 서울 25개 자치구 중 4위이던 노원구의 자살률이 사업 시행 후 2년 만에 21위로 낮아졌다. 서울시는 노원구 모델을 시 전체로 확대했고 보건복지부는 노원구에 '복지행정분야 대상'을 줬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그의 노력도 각별하다. 대한민국이 경제규모에 걸맞게 지구환경에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사실 이런 문제의식은 구청장쯤 되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다. 그는 목재팰릿을 활용한 난방이나 이산화탄소 배출제로 주택건설등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실천에 나섰다.

사회적 경제, 마을 만들기로 공동체 회복 꾀해

 성북구 도시텃밭을 둘러보고 있는 김영배 성북구청장
 성북구 도시텃밭을 둘러보고 있는 김영배 성북구청장
ⓒ 김영배 성북구청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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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서울시 성북구청장은 '성북구 사회적 기업 생산품 판매관'이 이마트 하월곡점에 입점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2012년 5월에 문을 연 이마트 하월곡점은 성북구에 사회적 기업 생산품 판매관 입점을 제안했다. 지역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이었다.

대형마트 입점에 대한 지역의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꼼수'라는 시선도 있었다. 그래도 소비자가 사회적 기업의 '착한 생산품'을 만날 수 있는 큰 기회였다. 성북구는 사회적 기업의 이마트 입점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사회적 기업이란 경제활동을 통해 발생한 이익을 지역 사회의 일자리 창출이나 지역 주민 복지에 사용하는 기업을 말한다. 경쟁과 효율이 중시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사회적 기업은 아직은 낯설다. 때문에 자생력이 부족해 지자체의 지원이 필수다.

대학가가 집중된 베드타운 성북구는 대표적으로 소비력이 약한 자치구다. 때문에 기존의 대형쇼핑몰 유치나 상가건설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쉽지 않다. 김 구청장이 사회적 기업에 주목한 까닭이다. 성북구는 사회적 기업의 생산품을 우선 구매하는 조례를 통해 사회적 기업을 지원한다. 현재 성북구에는 21개의 사회적 기업과 26개의 협동조합, 그리고 6개의 마을기업이 활동 중이다.

'마을 만들기' 역시 김 구청장의 대표 브랜드다. 그는 개발업체가 주도하는 뉴타운 정책의 대안으로 마을에 주목했다. 주민들이 지역의 재생을 주도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삼선동의 장수마을이 만들어졌다. 서울 외곽의 산동네였던 장수마을은 2012년 재개발 예정구역에서 벗어났다. 거리와 낡은 주택의 정비가 문제였지만 대대적인 보수는 되도록 지양했다. 집값을 올려 기존 세입자들이 불안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을기업을 중심으로 낡은 주택을 수리하고 거리를 정비했다. 서울성곽 등 문화유산은 보존했다. 한성대 학생들이 동네에 벽화를 그리는 등 지역민이 스스로 나섰다.

주민참여를 통한 공동체의 회복 노력으로 성북구는 한국메니페스토 실천본부로부터 선거공약(2010) 대상, 일자리분야(2011) 우수, 공약이행분야(2012) 우수, 공감행정(2013) 최우수 등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이들이 지방행정에서 뚜렷한 성과를 남길 수 있었던 힘은 지역에서의 정치경험 때문이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1995년 구의원으로, 김만수 시장은 시의원으로 지역민을 만났다. 김영배 구청장은 성북구청장 비서실장으로 지역현안을 익혔다.

김성환 구청장은 당시 구의원 활동이 "지역난방의 문제점과 아파트 관리제도의 문제 등 노원구 주민의 생활상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저임금과 비정규직, 빈곤과 자살.' 청와대 비서관 시절 해결하지 못한 국가적 과제를 '동네'로 가지고 돌아온 이들은 여전히 못다 한 숙제를 푸는 중이다. 최종 성적표는 다가오는 6월 4일에 나온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6.4 지방선거 시민기자 특별취재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만수#김영배#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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