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뉴욕 지하철 탈선 사고를 속보로 보도하는 현지 방송 사고 발생 30분이 되지 않아 공중 촬영한 장면에는 이미 구조 대원들이 도착해 있다.
▲ 뉴욕 지하철 탈선 사고를 속보로 보도하는 현지 방송 사고 발생 30분이 되지 않아 공중 촬영한 장면에는 이미 구조 대원들이 도착해 있다.
ⓒ 지역 CBS 방송 화면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평소 시사 관련 뉴스보다는 미국의 일상생활에 관한 기사를 매일 보내던 한국 한 언론 매체에도 세월호 침몰에 관한 외신 기사를 분석해 보낼 정도로 한국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아픔은 여전히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바람이나 쐬려고 하루 집을 떠나기로 한 지난 2일(뉴욕 시각) 아침, 일찍 눈이 뜨임과 동시에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통해 본 기사에서 한국 관련 뉴스를 보자마자 또 심장이 내려앉고 말았다.

"'지하철 추돌 사고'라니,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무슨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나" 하고 한탄하면서도 다행히 일부 중상 이외에는 경상자만 있다는 소식에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다시 가슴을 진정하고 뉴욕 퀸즈에 있는 한인 마트에 들려 간단히 장을 보고 나오는 순간, 미국 시각 2일 오전 11시(한국 시각 3일 자정)쯤이나 됐을까. 차에 시동을 결면서 라디오를 켜는 순간, 뉴스 채널에서는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기자의 집 근처인 자메이카 방향에서 출발한 뉴욕 지하철 F선이 탈선했다는 긴급 뉴스였다. 대체 이것은 또 무슨 일인가 하고 해당 보도를 주시하며 다시 차를 세웠다. "대체 이 사고가 언제 난 거야"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해당 라디오 보도를 주시하면서 휴대전화로 관련기사를 검색했다(나중에 확인한 결과, 이 사고는 오전 10시 30분께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발생 20여 분만에 생중계... 응급 요원들은 이미 도착해 구조 중

탈선 지하철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소방관 구조 대원이 터널안에 진입해 사다리를 설치하고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 탈선 지하철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소방관 구조 대원이 터널안에 진입해 사다리를 설치하고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 뉴욕교통당국 제공 사진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뉴욕의 대표적 뉴스 전문 라디오 채널인 1010WINS 라디오 뉴스는 오전 11시가 되기도 전에 첫 속보부터 "F선 지하철이 현재 브로드웨이 65가, 우드사이드 지하에서 탈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소방관 등 긴급 구조 요원들이 출동하여 즉각 탑승자 등에 대한 퇴거(evacuation) 조치 등 사고를 수습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후 사고가 발생한 지 채 한 시간도 되기 전에 현장에 출동한 1010WINS 라디오 뉴스 기자는 현장 상황과 함께 아직도 지하철역에서 방송되고 있는 "모든 승객은 대피하라"는 스피커 방송 내용을 생생히 들려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고 발생 30분도 되지 않아 헬기 등을 이용해 긴급 속보를 전하고 있는 현지 방송 화면에서는 이미 많은 소방차와 구급 대원들이 출동해 구조를 하고 있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또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은 이미 출동한 구조대원들이 마치 도열해 있듯이 구조하는 가운데 승객들이 안전하게 탈출하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 사고 당시 사고 차량에는 1000여 명의 승객들이 타고 있었으며, 차량 8개 가운데 6량이 탈선해 4명의 중상자를 포함해 19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승객들은 사고와 동시에 정전이 돼 실내가 어두워졌으며 불꽃과 함께 연기가 발생했다고 사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사고는 승강장이 아니라 지하철이 터널 곡선 구간에서 발생했고, 정전이 됨과 동시에 매캐한 연기까지 발생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탑승 승객들이 즉시 출동한 응급 구조 대원들에 의해 안전하게 구조될 수 있었다.

또한, 사고가 발생한 지 한 시간이 되지 않아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통제하고 있는 소방 부서 담당관은 구조 현장에서 현지 언론과의 기자회견을 통해 구조 현황에 대한 내용과 함께 수습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브리핑했다.

보이지 않는 뉴욕시장... 그러나 문제 제기하는 사람 없어

지하철 탈선 사고 구조에 나선 응급 대원들 탑승객들이 소방관들 사이로 걸어 나오며 구조되고 있다.
▲ 지하철 탈선 사고 구조에 나선 응급 대원들 탑승객들이 소방관들 사이로 걸어 나오며 구조되고 있다.
ⓒ 뉴욕교통당국 제공 사진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이러한 지하철 사고가 발생했지만, 빌더 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모든 상황은 MTA(뉴욕교통당국) 책임자가 총괄해서 발표하고 사고 원인 등에 대한 조사와 함께 향후 대책 등을 일괄해 발표했다.

물론 이 사고도 수많은 사망자와 사상자를 발생했다면 당연히 빌더 블라지오 시장이 현장에 와서 기자회견을 하고 현장을 지휘했을 것이다. 사실 기자가 8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중요한 사건 현장에서 기자회견과 사고 처리에 관한 지시를 하는 것을 보며 너무 정치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 바 있다.

그는 한인 여성이 사망한 바 있는 지난해 발생한 통근 기차 탈선 사고 당시에는 "현장에서 잘 수습하고 있는데 내가 굳이 갈 이유가 없다"라고 밝혔다. 이에 일부 언론들은 '이제 퇴임을 앞두고 재난 사고에 등한시한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을 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 빌더 블라지오 시장이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해서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구조 요원들에 의해 즉각 수습됐으며 이에 따라 객차가 6량이나 어두운 터널 안에서 탈선한 사고 규모에 비해 피해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 구조 지휘 체계가 잡혀 일사불란하게 수습이 끝난 상황에서 굳이 시장이 나서야 할 이유도 없고 나서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없는 이유이다.

지난 3월 12일, 뉴욕 맨해튼에서 상가 건물 두 동이 가스 누출로 인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초기 2명의 사망자가 확인되고(추후 8명으로 증가) 30여 명에 이르는 실종자가 보고되는 등 긴급 사태가 발생하자 빌더 블라지오 시장은 사고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 등 관련 구조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반드시 사고 현장에서 기자회견 하는 미국 정치 지도자들

그런데, 이렇게 미국 대통령이나 시장 등 정치 지도자의 재난 대처에 관한 행동을 아무리 정치적인 쇼라는 비판적 시각에서 보아 넘기더라도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영상들이 떠오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어쩌면 미국민들은 9·11테러 당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빌딩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의 대통령에는 걸맞지 않게 휴대용 메가폰을 들고 연설한 부시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전쟁의 전권을 부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거의 매번 재난 사고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직접 재난 사고 수습을 진두지휘했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동부 지역 일대를 강타했을 때, 이 지역 피해 현장을 공화당 소속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와 함께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국가적 재난의 현장에 가 있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박빙의 재선 선거가 압도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오바마는 폐허가 된 집들을 둘러보고 그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함께 슬퍼했다. 이 장면은 미국 언론 매체에 생생하게 보도됐다. 동행한 크리스티 주지사는 일부로부터 '배신자'라는 소리를 받았지만, 재난에 적극 대처하는 모습으로 그의 인기도 덩달아 올랐다. 이후 국가적 재난에 대처하는 일을 두고 당적 등 정치적 이유를 갖고 시비를 거는 일은 없어졌다.

어쩌면 이는 단지 정치적인 쇼에 의한 일과성 행동에서는 나올 수 없는 미국 정치 지도자들의 공통된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은 세월호 참사에서 보름을 넘게 구조 작업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난 4일 오전까지 재난 구조 현장에 있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모습은 외신에 보도되지 않았다(4일 정오께 박근혜 대통령은 팽목항을 방문했다).

진정한 대통령의 참회 눈물이 없는 대한민국

언론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대통령이 마치 모든 구조 작업이 다 끝난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체육관이나 분향소를 조문하면서 연출 의혹 등 다른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 모습뿐이다. 또한 연일 외신들이 재난 구조 체계에 대한 문제점과 이에 따른 국민 분노가 극에 달해 가고 있다는 내용만 보도될 뿐이다.

만일 미국에서 해상 재난 사고가 발생해 200명에 가까운 실종자를 보름이나 넘긴 구조 및 수색 과정에서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면, 미국 방송에는 미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치다 손가락이 골절된 채 발견된 시신 앞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방영되지 않았을까.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를 향해 애국심을 발휘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아마 법과 제도에 대한 개선 문제보다도 대통령이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 주고 다른 모든 것을 시작했을 것이다.

과연 경제 규모 면에서 세계 15위에 해당한다는 우리나라에서 관련 법이 없고 제도가 없고 실무적인 행정 장치가 없어서 이러한 비극이 일어났겠는가 하는 생각이 이번 참사를 보면서 머리에 맴돌고 있다.

그러한 모든 제도적인 장치를 갖추었지만,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외신과 외국인들은 겉만 번드레할 뿐 후진국이나 다름없다는 질타에 부끄러움이 물밀 듯이 몰려오고 있다. 하지만 더욱 부끄럽게 만드는 일은 그러한 재난 구조 현장에서 국가가 구조하지 못한 국민을 부여잡고 진정으로 참회하는 대통령의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하철 탈선#세월호#정치 지도자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