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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매일 아침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모여있는 춘추관을 찾습니다. 그날 그날 대통령의 일정과 현안에 대해 '백브리핑'을 하기 위해서인데요. 카메라가 없는 상태에서 기자들에게 청와대의 입장과 뒷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이정현 홍보수석이 기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나선 이래 민 대변인이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지난 달 30일 아침 백브리핑 자리는 평소와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전날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한 대국민 사과를 두고 진정성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민 대변인을 만난 기자들은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청와대 기자단이 비보도 요청을 받지 않은 이유

 박근혜 대통령이 4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9회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과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9회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과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 청와대

먼저 박 대통령의 추가 사과 여부와 시기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민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으실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후 몇 가지 질문과 답이 오간 후 민 대변인은 춘추관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10여분 후 민 대변인은 부랴부랴 춘추관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어제 대통령의 사과가 나온 바로 다음 날에 대변인이 추가 사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게 적절치 않아 보인다"며 기자단에 자신의 발언에 대해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오프더레코드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날 민 대변인은 같은 이야기를 했고 이미 보도가 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관련기사 : 참모 앞에서만 네 번 사과... 민심 수습될까)

민 대변인은 비보도 요청을 하러 왔다가 도리어 추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유족들이 박 대통령의 사과를 인정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입장이 뭐냐'는 질문이 나온 겁니다. 민 대변인의 입에서는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대통령은 진정성을 담았다, 굉장히 유감"이라는 '폭탄' 발언이 나왔습니다.

기자단은 민 대변인의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그의 발언을 기사화 했습니다. 박 대통령을 비판한 유족들을 청와대 대변인이 타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또 청와대 내부도 발칵 뒤집혔습니다.

계속되는 '설화'... 울상이 된 청와대 대변인

결국 이날 오전 9시 30분 민 대변인은 울상을 한 채로 춘추관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는 "유감스럽다는 건 개인적인 발언이지 청와대나 대통령의 뜻이 아니다"라고 해명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대통령의 입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은 대통령의 뜻, 적어도 청와대 내부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또 청와대 대변인의 공개 발언을 개인적인 의견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이번 뿐만 아니라 민 대변인은 세월호 참사 이후 대응 과정에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습니다. 지난 달 21일에는 '황제라면'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서남수 교육부 장관에 대해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은 것도 아니고 끓여서 먹은 것도 아니다"라고 두둔했습니다. 바로 다음날에는 '이번 사고에 대해 대통령이 공무원만 질책할 뿐 사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도리어 "유감 표명이나 사과를 한다면 매분 매초에 하느냐"고 따졌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의 설화가 계속 이어지자 청와대 안팎에서는 "정치부 기자 생활을 오래해 정무적 감각이 없지는 않을테고, 언론과 기자들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민 대변인이 왜 문제될 게 뻔한 발언들을 연일 쏟아내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민 대변인이 기자들과 만나기 전 청와대 내부 회의를 통해 현안에 대한 대응기조가 정해지고, 내놓을 메시지도 분명히 정해서 온다는 점에서 계속되는 사고를 단순한 실수로만 보기도 어렵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 청와대의 내부 소통 문제 등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한다는 겁니다.

그들이 심기경호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는 민경욱 대변인. (자료사진)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는 민경욱 대변인. (자료사진)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청와대 홍보라인에 여의도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측근보다는 전문성을 중시한 인사들을 기용해 왔습니다. SBS PD 출신인 이남기 전 홍보수석, 윤창중·김행 전 대변인은 모두 과거 박 대통령과 한솥밥을 먹은 인사들은 아니었습니다.

전문성에 중점을 둔 기용이었지만 한계는 금방 드러났습니다. 박 대통령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친박 이너서클' 밖에 있던 인사들이다 보니 자율성을 가지고 활동하기보다 '윗분'의 심기를 살피기 급급했던 겁니다. 

또 박 대통령의 스타일상 이들이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율적인 활동 공간도 거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대변인들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문자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면서 대언론 소통은 물론 현안 대응에 있어서 정무적 판단에 문제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정부 출범 1년도 안돼 홍보라인은 대폭 물갈이 됐습니다.

대타로 투입된 민경욱 대변인의 경우도  박 대통령과의 인연 보다는 언론인이라는 전문성과 공영방송 앵커라는 이미지를 고려한 인사였는데요. 전임 대변인들과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누가 대변인이 되든 제 역할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이 된 셈입니다.

민 대변인도 '외부인'이라는 한계가 분명해 보입니다. 민심과 여론을 정확히 살피기보다, 청와대 내부 논리에 따라 눈치를 보고, 윗분들의 심기경호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단적인 예가 있습니다. 사고 초기 부실 대응에 대한 청와대 책임론이 제기됐을 때, 민 대변인이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발언을 받아 적어 그대로 기자들에게 전달한 적이 있었는데요. 청와대의 비겁한 책임 회피라는 역풍이 일었습니다.

당시는 청와대가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백배 사죄해도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재난 대응 기능이 안전행정부로 옮겨갔다는 형식논리에만 치중한 엉뚱한 메시지가 나온 겁니다. 국민들보다는 김장수 실장의 심기를 우선하지 않고서는 생기기 힘든 일입니다. 또 대변인의 정무적 판단 능력이 부족하거나 내부에 제대로 된 소통 구조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결국 청와대 대변인이 세월호 참사라는 위기가 닥쳤을 때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을 반복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 한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릴 문제는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 한, 청와대의 내부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청와대발 '말의 참사'는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민경욱#청와대#박근혜#김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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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승훈 기자의 '청와대 일기'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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