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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따라다니는 '인동초'라는 수식어에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순한 꽃을 피워낸다는 일반적인 의미 외에도 중요한 사실이 한가지 더 있다. 내가 인동초의 의미를 더욱 귀해하는 것은 바로 인동초가 해로운 독을 풀어주는 약초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 매서운 바람과 척박한 땅을 견디며 인동초는 자신 안에 독을 키우는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의 독을 풀 수 있는 약을 키운다. '비폭력을 토한 폭력의 거부'는 여전히 우리 시민 사회가 가져야 할 약(藥)'이라 생각한다."
- <울보 시장: 가슴으로 쓰는 시정일기>에서

내가 고양시에서 사는 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 "고양시민이니 고양시장의 책을 함 읽어봐야 하지 않겠어?"라며 권유한 <울보 시장: 가슴으로 쓰는 일기>(다산북스 펴냄)는 솔직히 고마운 한편 부담스럽게 만난 책이다.

유명 인사의 책들 반갑지 않지만

<울보 시장:가슴으로 쓰는 시정일기> 책표지
 <울보 시장:가슴으로 쓰는 시정일기> 책표지
ⓒ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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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러 가지 이유로 유명 인사들의 책들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특히 현재 정계에 있는 사람들이나 연예인들의 책은 신중하게 선택하곤 한다. 이런 내게 좋아하지 않는 분야의 책을 읽고 가급 소개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과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홍보를 위해 펴낸 책일지도 모른다는 거북한 오해까지 조금은 겹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이런 부담과 거북함은 저자의 프로필을 읽으며 사라졌다. 고양시장에 앞서, 아니 고양시장이 되기 전 '<배움: 김대중 잠언집>을 엮어내며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기도 했던 저자(책의 프로필 인용)란 사실 때문이었다.

<배움>을 읽고 싶었다. 그러나 어찌하다 보니 읽지 못하고 잊었던 터다. 그런 책의 저자라는 사실은 선뜻 책을 펼치게 했다. 고양시장에 앞서 이미 책을 낼 만큼이라면 책은 좋아할 것이라는 것. 책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좋아하는 누군가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책을 좋아하는 내가 사는 지역의 시장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책을 권해준 사람이 되레 고마워졌다. 고양시에서 일어났음에도 그동안 몰랐던 것들, 고양시민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할 것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따뜻한 가슴과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려주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게디가 생각의 여지까지 주면서 말이다.

"지역농가와 함께 만들어가는 고양시의 친환경 급식은 믿을 수 있고 안전한 식재료를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받고 나아가 식재료 유통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데 큰 목적이 있다. 이는 식재료에 대한 불안감 해소. 로컬푸드의 신선함과 농민의 마음까지 담겨 있는 건강 식단으로 학부모와 아이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잔류농약 등에 대한 걱정을 해소하기 위하여 급식지원센터 자체적으로도 전문 인력을 구성하여 잔류농약과 방사능검출 여부를 매일 검사한 후 그 결과를 시와 교육청 등에 보고하고 있다.

지역농민들은 농산물의 계약재배로 스스로 생산하는 농산물에 대한 자부심이 클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농가소득도 보장받을 수 있다. 실제로 고양시가 작년부터 학교급식 농산물에 대한 계약재배를 실시한 이후 많은 농가들이 친환경재배로 전환하면서 고양시의 친환경농지 면적은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 <울보 시장; 가슴으로 쓰는 시정일기>에서

1992년 11월부터 현재까지, 23년째 고양시민으로 살고 있다. 고양시로 이사 온 날부터 지난해 5월까지 영세 상인으로, 그리고 서민으로 살고 있다. 영세 상인으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그간 고양시 덕양구청과 행정적인 문제나 이해할 수 없는 규제 때문에 부딪친 일도 많았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부당한 것을 쉬이 넘기지 못하다 보니 현장을 보게 되면 관할구청에 전화해 개선을 요구하는 편. 이런 과정에서 껄끄러운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렇지 않은 공무원께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비열한 공무원도 여럿 봤다. 여하간 지금도 이 책을 쓴 저자인 동시에 고양시의 행정적 수장인 고양시장과 민원인으로 만나 고양시 덕양구에서 23년간 살아오며 겪었던 것들을 주제로 서너 시간은 이야기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고양시에, 그리고 덕양구청에 아쉬움도 앙금도 많다.   

이런 내가 그동안 고양시의 여러 정책 중 만족스러웠던 것은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에게 일부러 자랑할 정도로 만족했던 것은 아이들 급식. 세살 터울인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지난 15년 동안 이렇다 할 급식 사고 한 번 나지 않은 데다가, 관내에서 생산되는 싱싱한 채소로 만든다는 사실이, 그런 급식을 내 아이들이 먹을 수 있음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고양시에는 원예와 작물을 재배하는 집들이 많다. 이사 온 직후부터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알고 지내면서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들을 학교에서 소화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큰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에 했다. 이런지라 우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채소로 급식을 만든다는 몇 년 전 어느 날의 급식통지문이 매우 반가웠다.

"이 중심에는 '고양시 친환경농산물 학교급식 지원센터'가 있다. '급식지원센터'는 각종 농산물과 식재료를 수집하고, 학교에서 요구하는 상태로 처리과정을 거쳐 배송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철저히 수요자 중심의 민ˑ관 공동운영체제로 운영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민간이 운영위원장을 맡는 '공동운영위원회'는 학부모, 시민·농민단체, 지역농협, 교육청 등이 모두 참여하여 전반적인 운영사항은 물론 식재료들의 공급 가격까지 최종 결정하는 의사 결정 구조를 갖추고 있다.

(…)과거 시민단체 활동의 경험들을 녹여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일들을 천천히 조율해 나갔다. 특히 무상급식의 경우처럼 시민들의 구체적 삶과 직결된 문제만큼은 많은 시각과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생의 해법을 마련해왔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분노를 정확히 헤아리고 그들이 진정 원하는 민생현안을 구체적으로 챙기는 작업이다."
- <울보 시장: 가슴으로 쓰는 시정일기>에서

우리 아이들은 이젠 더 이상 급식 대상자가 아니다. 그래도 아이들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에 관심이 많다. 농사짓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많다.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가장 소중한 문제(먹거리)이자 주역들(아이들과 농민)이기 때문이다. 고양시처럼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지역에선 다른 지역 농민들과 연계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이다.

쓸데없고 부끄러운 선입견을 확 깨버려

'아이들 밥'이란 제목의 이 글은 우리의 낮은 식량자급률 이야기로 시작해 몇 년 전의 무상급식 논쟁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고양시의 급식 상황 설명을 해주는 것으로 끝맺는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시장이 우리 서민들과 관계되는 그 세세한 것들까진 알지 못하리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며 이런 생각은 정말 부끄러운 선입견이란 생각을 했다. 비정규직 이야기, 청소년 문제, 장애인 문제, 부당함에 처한 민원인들과의 만남, 자영업자들의 현실, 대학교 등록금 문제 등 사회 약자들의 이야기들을 '아이들 밥'의 경우처럼 우리 서민들이 처한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전 다섯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떤 권력자라도 두려워하는 법이 없었다. 다만 김 전 대통령이 유일하게 두려워했던 것은 국민의 마음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만리장성을 만든 것은 진시황이 아니라 백성이고 경복궁을 만든 것도 대원군이 아닌 백성이라 했다. 진실한 건설자는 권력자가 아니라 이름 없는 석수와 목수 등의 평범한 백성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정치인이라면 이러한 진실을 정확히 깨닫고 인지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그래야만 그들에 대한 외경심을 가슴 깊이 가질 수 있으며 역사에 대한 자각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기 김 전 대통령에게 배운 가장 중요한 정신도 여기에 있다."
- <울보 시장: 가슴으로 쓰는 시정일기>에서

필요에 따라 쉽게 알 수 있는 프로필은 생략한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 대통령과의 만남과 관련된 글들이 여러 꼭지,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일부러 다시 뽑아 읽을 정도로 어떤 책에서보다 인상 깊게 읽었다.

외에 기억에 남는 글 몇을 소개하면 ▲ 우울증과 자살에 대해 쓴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빈곤층의 문제를 다룬 '세 자매의 꿈' ▲ 식칼을 든 민원인과의 만남 ▲ 대학 등록금 문제를 다룬 '4860원 청춘' ▲ 청각장애인인 누나가 겪은 것들을 통해 말하는 장애인들의 현실 ▲ 궁여지책으로 아내가 차린 냉면집을 통해 말하는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현실 ▲ 농ˑ축산가의 어려운 현실에 관한 '소가 울면 농민도 운다' ▲ 非정규직, 悲정규직 ▲ 한때 페이스북을 뜨겁게 달궜던 고양시 홍보를 위한 고양시장의 퍼포먼스 이야기인 '고양이 시장이다?' 등이다.

왜 울보시장이란 별칭이 붙었을까? 책을 다 읽지 않고 인상 깊게 읽었노라 우선 소개하는 이 글들 중 두세 꼭지만 뽑아 읽어도 이해가 될 만큼 시민들을 향한 진정과 고민과 눈물을,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이 책에서 쉽게 느낄 수 있으리라.

덧붙이면, 책을 읽기 전 '시정일기'란 문구 때문에 어느 정도는 딱딱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또한 쓸데없는 선입견이었다. 감돌고 있는 한 권의 따뜻하고 진솔한 생활 수필집을 읽었을 때의 여운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울보시장 : 가슴으로 쓰는 시정 일기> | 최성 (지은이) | 다산북스 | 2013-07-01 |9,100원



울보 시장 - 세상에서 가장 눈물 많은

최성 지음, 다산3.0(2015)


태그:#고양시장, #최성, #시정일기, #울보시장, #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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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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