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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과세'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18일 천주교 일부 교구가 신자들의 기부금 내역을 공개하기로 결정하면서 종교계 재정 투명화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종교계 바깥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종교인 납세부터 본격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24일 오후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종교인 납세 토론회'를 열고 "대한민국은 종교인을 면세의 대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조속히 목사·승려 등을 상대로 소득세 과세를 진행해 종교인 납세 논란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헌법에 명시된 '납세의 의무'에 따라 종교인들도 근로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요 개신교 보수교단·단체들은 종교인에게 소득 과세를 해선 안 된다며 강력 반대하고 있다. 종교인은 근로자가 아닌 '신앙을 위한 봉사자'이므로 근로소득세를 납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목사도 "목회자가 세금을 내는 순간 국가에 예속된다, 납세 의무화에 무조건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정부는 종교인에게 근로소득세를 과세해선 안 되는 걸까?

'근로소득세=근로자만 내는 세금'?

 24일 오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주최로 '종교인 납세 토론회'가 열렸다.
24일 오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주최로 '종교인 납세 토론회'가 열렸다. ⓒ 이주영

토론회 발제를 맡은 최호윤 회계사는 "종교인도 근로소득세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종교인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니지만, 소득세법에 명시된 근로소득 대상에는 포함된다는 해석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소속인 그는 "소득세법상 근로소득은 '근로자의 소득'만을 뜻하지 않는다"며 "정기적인 활동의 대가로 받는 소득 자체를 근로소득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득세법 제20조 1항은 근로소득의 범위를 "근로를 제공해 받는 소득과, 이와 유사한 성질의 급여"라고 규정한다. 근로와 비슷한 행위로 얻은 소득도 근로소득에 포함되므로, 종교활동 대가로 생긴 사례비 역시 근로소득에 포함된다는 게 그의 해석인 것이다.

최 회계사뿐만 아니라 다수의 조세정책 전문가들도 현행법에 따라 종교인에게 근로소득세를 과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음은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에서 활동했던 이상민 비서관(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실)의 말이다.

"'근로자가 아닌 사람은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대로라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군인이나 사회 개혁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직원들도 세금을 내선 안 되죠. 그런데 이들은 근로소득세 납부 대상으로서 세금을 내거든요. 특정 활동의 대가로서 정기적인 소득을 벌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소득세를 매기는 겁니다. 종교를 위해 봉사하는 목사일지라도, 소속된 교회에서 활동하면서 사례비나 월급을 받는다면, 근로소득세 과세 대상이 됩니다."

만약 현행법에 따라 종교인에게 근로소득세를 과세할 수 없다면, 정부가 그동안 천주교 사제들에게 받은 세금 자체가 '부당이득'이 된다는 해석도 나왔다.

소득세는 법적 근거 없이 함부로 과세할 수 없는 세금이다. 아무리 누군가 자발적으로 내는 소득세라 할지라도, 근거 조항이 없으면 정부는 납세를 거부해야 한다. 천주교는 1994년부터 근로소득세를 내고 있다. 법적 근거가 있기 때문에 그동안 천주교에서 내는 근로소득세를 정부가 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같은 기준에 따라 다른 종교인들도 근로소득세를 납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국가로부터 보장받는 종교인들, 국민으로서 의무도 다해야"

토론회 참가자들은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현행 소득세법에 따라 종교인에게 근로소득세를 과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근로소득세에 반대하는 여론을 의식해 종교인 사례비 등을 '기타소득'으로 규정해 세금을 매기는 대안을 마련했었다. 그러나 도리어 일반 국민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돼 곤혹을 치렀다. 현재 정부는 종교인 소득항목을 신설하는 수정안을 다시 내놓은 상태다.

최 회계사는 "정부가 일부 종교인들을 의식해 기타소득세 과세 같은 대안을 마련했지만, 그것이 도리어 종교계-시민 갈등을 부추긴 듯하다"며 "현재 계획대로 종교인 소득항목을 신설하더라도 일반 국민과 똑같이 근로소득세에 준하는 과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세 납세 의무화를 무조건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인식 전환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유경동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종교단체와 종교인의 지위가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한, 종교인도 국민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다한다는 차원에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인 과세#천주교#근로소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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