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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집을 이사하고자 짐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니 마나님이 명함들이 쏟아져나왔다고 필요없는걸 정리하라고 하신다.

그래도 10여년 넘게 기술자로서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이제는 다른 일을 하고 있기에 연락할 일도 없지만 그래도 살아온 이야기들이 있어서 정리를 하다보니 웃음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던 한 순간. 모 회사 한 사람의 명함이 눈에 띄었다.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당시의 쓰라린 기억이 되살아 나면서 나도 모르게 박박 찢어서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옆에서 다른걸 정리하시던 마나님이 누구의 명함이기에 그렇게 화를 내는가 물어보신다. xx의 ooo라고 이야기 해드리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제 지난 이야기니 그냥 넘기라고 하신다.

가만히 생각을 해본다. 과연 넘길 수 있는 일이었던가?

당시 그 회사에 장비를 판매하고 그 시스템의 관리를 전담하는 기술 영업 담당자로서는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약 3년을 출퇴근을 했다. 특히나 그곳은 지방의 외진곳에 있었기에 처음에는 전철, 시외버스, 택시를 이용해서 다녔으나 체력 저하와 폐렴직전까지 가게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도저히 안되어서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조그마한 차를 마련하여 오가게 되었다.

하지만 출퇴근이 편해진다고 해서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갑과 을의 관계이기도 했지만 아무때나 부르기 일쑤고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서 하인부리듯 하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다음 납품도 있고 하기에 아무리 많은 수모를 당해도 담당자 앞에서는 웃음을 띄어야 했다. 심지어 타사의 물건이 고장나도, 관련없는 물건이 고장나도 막무가내로 고쳐내라는 요구도 부지기수였다. 그곳은 신입사원때부터 협력업체는 자신들의 하인이라고 교육을 받는지 외부에서 온 협력업체라면 일단 밑으로 본다.

힘든일은 둘째치고 모욕감과 멸시하는 담당자의 태도는 늘 몸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내가 참을성이 없다고 다들 이야기했다. 하지만 일은 점점 늘어나서 간혹 시간이 비는 동료분들이 번갈아가면서 동행을 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한번씩 같이 갔다 오신 동료분들은 혀를 내두르셨다. 너 정말 고생한다면서. 겪어보니 내가 왜 늘 피곤해 하는지를 아시는거다.

한번은 발생한 문제에 대한 협의차 상관과 함께 외국에서 제품관련 기술자분들까지 모두 5명이 도착을 했는데 막무가내로 화부터 내는 것이다.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것이다. 전날 메일로 리스트를 보내고 전화통화도 했지만 연락을 못받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담당자가 잊고서 등록을 해두지 않았으리라.

온갖 욕과 궂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살의'가 일어났다. 몇년간 당한 수모가 생각나면서 오늘 사고 한건치자. 돈 물어달라면 까짓거 물어주면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가방을 움켜쥐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나의 손목을 잡는다. 뒤를 돌아보자 부장님의 얼굴이 보인다.

가볍게 고개를 저으시는데 다시 돌아보면서 내키지도 않는 사과를 하고 그날 일을 대충 마무리를 지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옆에 앉으신 부장님께 여쭈었다. 손목은 왜 잡으셨냐고. 부장님왈, 살아 생전 사람 등뒤에서 시커먼 오러같은게 올라오는건 처음 봤다신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핏줄이 불거진 내 손목을 잡았노라고 하신다. 손목을 잡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결국 2년여에 걸친 납품 계약이 끝나자 그곳을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시간 이후로 그곳의 상품에 대해서 전혀 고려를 하지 않는다. 그 몇년 동안 사람들에게 시달리면서 느낀것 은 협력업체에 대해서 이런식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과연 남들을 위해서 얼마나 상품을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일까 하는 거다.

고객은 왕이라지만 여지껏 왕족다운 면모를 보여주신 분은 다섯손가락에 꼽을 지경이다. 그 시간을 보낸 이후로 나도 다른 사람을 대할때 저런식으로 하지는 않는지 생각하게 됐다

언어란 인간만이 가진 폭력의 한 수단이라고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단 말처럼 소리쳐서 해결하는 것보다 부탁을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타인에게 이야기 할때 한 번 더 생각을 해본다. 과연 나의 말투는 상대방에게 폭력이 되지 않는지 하고.

덧붙이는 글 | '아프니까 감정노동이다' 응모글



태그:#언어, #갑을, #노동자, #협력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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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마나님과 4마리의 냥냥이를 보필하면서 사는 한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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