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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교직에 몸담은 지 어언 26년째다. 지난 2월 14일 7번째로 부임할 겸무 학교가 발표됐다. 월·화·수요일에는 특성화 공업고에서, 목·금요일은 자립형 공립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다. 진로 방향과 가치관이 서로 다른 양극의 학생들을 마주하게 된다는 생각에 미묘하다.

교직에 처음 부임한 학교가 상업계 남자고등학교였는데 이제 다시 공업계 고교로 전입하게 되어 학생들의 면면이나 행태가 자못 궁금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3일 만은 문제집 풀이를 해주어야 하는 입시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찬찬히 사회 현상들을 토론해볼 수도 있고 재미있는 토론 주제로 수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이런 행복한 마음이 과연 아이들에게 전해질까 하는 노파심도 많이 들지만 그렇게 해볼 요량이다.

교직 인생에서 반은 실업계 학생들을 가르쳤고 반은 일반계 학생들을 가르쳤다. 4반세기 동안 이 두 부류의 학생들을 접하면서 남과 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대안을 제시해왔지만 개혁된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개악된 것이 더 많지 않나 싶다. 처음 부임한 1991년에 비해 '우리 교육이 더욱 발전했느냐?' 하는 물음에 '예' 라고 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 교육이 교육의 기본 목적에 제대로 부합하고 있느냐?' 하는 방향성에서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실업계고(편의상 공업고, 상업고 등)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일반계 고교의 지형도 과거 90년대 중반의 학교와 너무나 달라져 있다. 과거에는 평준화 틀이 견고하여 자립형 공사립고가 없었다. 일반계 고교들의 성적이 비교적 균등한 편이었지만 지금의 사정은 많이 달라 이원화 되어 있다. 실업고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일반계 고교로 역유입되어 일반계고가 하향 평준화돼 있기 때문이다.

수학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 학생 유입으로 수업 분위기가 과거 실업고 분위기가 되어 간다는 한탄의 소리가 나온다. 특히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은 최악이었다.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교육 정책에서는 낙제점을 면치 못한다. 무턱 대고 교육의 수월성을 강조했던 이명박정권에서부터 더더욱 교육 양극화가 심화했다. 부작용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업고 학생들 중 커트라인에 밀린 하위 70% 성적의 학생들이 일반계고 하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어 실업계고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 생활에 잘 적응을 못하게 되어 수업 전반 분위기가 흐려지고 결국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초래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과거라면 일반계에 진학했을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이 자립형 공사립고교로 유입되어 자립형 공사립교의 성적은 일반계 고교 성적에 비해 탁월함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과거 고교 입시 때의 수준으로 고교 서열이 매겨지고 있는 셈이어서 고교 평준화의 틀은 깨졌다.

이렇듯 학교 지형이 변해가는 데는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 정권 차원의 공약 실행에만 역량을 강화하고 있지 부작용에 대한 고민은 없는 것 같다. 양질의 수업을 받아야 하는 일반계 학생들이나 실업계고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 모두 피해자가 되어 가고 있는데 교육부는 이의 부작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정부 당국은 공고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이들 입학지원자를 모두 받아들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수요자인 학생들의 적성과 특기에 걸맞은 특수목적고의 다양화와 기존 실업계고의 정원 증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자립형 공사립고를 일반계고로 바꿔 일반계 고교의 '교육 슬럼화'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사람들은 교육부를 '고육부'라고 비아냥거린다(고육부의 '고'는 쓸 苦다). 일부에선 '국민들에게 쓴맛만 보이고 땜질식 교육정책만 양산'하는 교육부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왜 교육부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치권의 줄서기에만 급급하고 정권차원의 공약 실천에 앞장서 '교육을 거꾸로 서게 하느냐?'는 말이다. 최근 역사 교과서 논란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지는 형국이 아닌가?

교육부가 정치 바람에서 멀어질 때 바른 교육정책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교육부 수장은 엽관(獵官: 관직을 얻으려고 갖은 방법으로 노력함)으로 인해 정치에 영향을 받는 인사가 아니라 정권 변화와 무관하게 백년대계의 교육정책을 짤 수 있도록 독립적인 인사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향신문 18일자에 게재된 것입니다. 원래 필자의 원고를 늘리고 풀어쓴 것입니다.



#교육부 정책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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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간지 기고가이며 교육비평가입니다. 교육과 사회부문에서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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