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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 논란

"신임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내정된 새누리당 이주영(4선·경남 마산·사진) 의원이 과거 '박근혜 당선하면 장관 등 어떤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던 것으로 확인됐다."(2월 12일자 <국민일보>)

"이(주영) 의원이 특보단장을 맡았던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정권을 잡더라도 임명직 주요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어 '말 뒤집기' 논란도 예상된다."(2월 13일자 <한겨레>)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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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숙 초대 해양수산부장관의 퇴임식이 열렸던 12일, 청와대는 후임 장관 후보자로 4선의 이주영 의원을 발표했다. 발표 직후 <국민일보>와 <한겨레> 등 언론들에서는 그가 부처와 연관된 전문성이 없고, 특히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의원이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라고 '공개선언'한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오마이뉴스>가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제공하는 기사검색서비스 '미디어가온'을 이용해 지난 2012년 10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보도된 총 975건의 관련기사들을 검색한 결과다.   

"나도 김무성 본부장의 결심에 뜻을 같이 한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도 어떤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라는 일명 '친박 백의종군 선언'의 시작은 김무성 의원으로부터 시작됐다. '친박→탈박→친박'을 거쳐 새누리당 선대위의 '총괄 선대본부장'을 맡은 김 의원은 10월 11일 첫 선대위 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관련기사 : 김무성 "박근혜, 당연히 대통령 당선될 것")

"지금부터 저 자신을 버리도록 하겠다. 12월 19일, 박근혜 후보는 당연히 대통령에 당선되실 것이다. 그때 저는 백의종군 연장선상에서 그 어떤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 우리는 숙명적으로 정치적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는 공동운명체다."

당시 언론들은 김 의원의 '백의종군 선언'('임명직 포기 선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새누리당 친박계에서 백의종군 도미노 선언이 나올 수 있을까?"라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어 서병수(당무조정본부장)·유정복(직능본부장)·홍문종(조직본부장)·이학재(후보 비서실장) 등 백의종군 선언 동참 예상 명단이 흘러나왔다. '언론'에서 보도한 이 명단에 당시 특보단장을 맡고 있던 이주영 의원이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이주영 의원이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라고 언급했거나, 이를 공개적으로 선언(혹은 언급)한 적이 있느냐다. <오마이뉴스>에서 당시 기사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전자는 있었지만, '더 확실한 물증'에 해당하는 '후자'는 없었다. 

먼저 이 의원이 '백의종군할 뜻이 있다'는 점을 언론에 밝힌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10월 12일 <국민일보>와 한 전화통화에서 "나 역시 김 의원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라며 "(대선에 이기더라도) 선대위에 몸담았다는 걸 이용할 생각이 없다, 그런 진정성을 갖고 박 후보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10월 13일자 <한국경제> 기사는 이 의원이 "나도 김 본부장의 결심에 뜻을 같이 한다"라며 "정권 창출에 개인적인 욕심이 들어가면 안된다는 차원에서 임명직을 안맡겠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임명직을 안맡겠다는 의미"라고 부연설명함으로써 <국민일보>와 전화통화한 내용보다는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이는 이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 의원에게 부담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출처'가 명확하지 않고, 그 이후 유사한 발언을 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아 그가 충분히 해명하거나 반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안철수 연대'에 백의종군 선언 다시 검토했지만...

당시 김무성 의원의 '백의종군 선언' 이후 언론들은 "친박 핵심들이 '박 후보 대통령 당선시 장관 등 주요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공개선언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10월 15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친박의 한 관계자는 "친박 의원들이 오늘(14일) 백의종군을 선언하려고 계획했다가 사정상 보류됐지만 조만간 이어질 것이다"라며 "박근혜 대선후보가 당선되면 친박 의원들이 다 차지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반드시 불식시키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기 전 백의종군 공개선언을 실행한 이들은 없었다. 이학재 의원이 대선 직후인 12월 21일 공개적으로 "저는 앞으로 인수위는 물론 박근혜 정부에서 일체의 임명직을 맡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선언한 것이 거의 유일하다. 오히려 민주당 친노 핵심측근 9명이 판세를 뒤집기 위해 퇴진과 백의종군을 선언했다(10월 21일). 그런데 여기에 대응하는 새누리당의 내부분위기가 흥미롭다.

"새누리당에선 더 이상 백의종군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있다. 선대위 야전사령관으로 임명된 김무성 총괄본부장이 백의종군의 불을 지폈지만,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다. (중략) 김 본부장의 백의종군 선언으로 '박근혜 캠프'의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의견수렴을 거쳐 '백의종군 성명서'를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지만, 현재로선 검토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백의종군을 거론하는 것조차 꺼린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10월 22일자 <영남일보>)

애초 '백의종군 선언'을 주도했던 새누리당의 분위기라고 어려울 정도다. 물론 '문재인-안철수 연대'가 본격화되면서 위기가 닥치자 새누리당은 다시 '백의종군 선언' 카드를 검토했다. 12월 7일자 <매일경제> 기사를 보면, 캠프 공보단의 한 관계자는 "안철수씨의 등장으로 판세가 바뀌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탕평인사를 하겠다는 박 후보의 진정성을 뒷받침한다는 측면에서도 친박 핵심들의 백의종군 선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닷새 뒤인 12월 12일자 <국민일보>는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의 재등판 대응카드로 친박 핵심 인사들의 백의종군 선언과 '박근혜 후보 당선시 임명직 공직 안 맡기 선언'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보도했다. "선제적으로 기득권 내려놓기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하지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는 진정성을 갖기 어렵다. 이렇게 또다시 백의종군 공개선언이 검토되긴 했지만 이번에도 그것은 실행되지 않았다. 대선 투표일을 엿새 앞둔 12월 13일자 <매일경제>는 '대선캠프서 사라진 백의종군론'이라는 기자칼럼을 실었다.

"박근혜․문재인 두 캠프에서 심도있게 논의됐던 핵심인사 백의종군론이 며칠 만에 쏙 들어갔다. 박근혜 후보측은 '굳히기', 문재인 후보측은 '뒤집기'를 위해 만지작거렸던 카드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것이다. (중략) 대선 승리에 공을 세운 핵심인사들이 민생을 멀리하고 달콤한 자리를 꿈꾸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임명직 포기' 선언 만류한 박근혜 후보

그렇다면 김무성 의원이 이끌었던 백의종군 선언은 왜 실행되지 않았을까? 이학재 의원(대선 당시 후보 비서실장 역임)이 최근 펴낸 책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인천시장에 도전하는 이 의원은 자신의 책 <달팽이는 제 집을 버리지 않는다>에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직접 연락해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지 마세요"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백의종군 선언을 실행하려고 결심하고 있던 차에 박 후보가 만류하고 나선 것이다.

"반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에 놀랐고 또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잠시 당혹스러웠다. 아무 답변을 못하자 한번 더 강조하며 절대 선언하지 말라는 다짐까지 받았다. 그 일이 있은 뒤에도 재차 강조해두기 위해 한 차례 더 말씀을 했다. 임명직 포기에 대한 나의 구상을 어느 정도 짐작했는지 아니면 사전에 차단하려고 그러셨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21쪽)

이 의원이 밝힌 일화를 통해 짐작컨대 새누리당이 두 차례에 걸쳐 백의종군 선언을 검토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데에는 '박심(朴心)'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주영#해양수산부장관#백의종군 선언#김무성#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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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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