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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1. 고대(古代)시대의 유적들은 왜 흙에 묻혀있을까? 발굴현장을 보면서 느꼈던 의문이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유물에서부터 넓은 마을이 묻혀있기도 하다. 수백~수천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당연한 것으로 넘어가기에는 어떤 미스테리 같은 원인이 있을것 같다.

의문 2. 사막과 밀림에서 발견되는 고대 도시들은 왜 저렇게 척박한 땅 위에 문명을 건설했을까? 멸망의 원인도 명확하지 않는 것이 많다. 외계에서 건설하고 돌아갔을것이라는 초등학생 수준의 어처구니 없는 농담에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다.

의문 3. 페루의 마츄픽츄, 중국의 운난성 등 세계의 나라마다 비탈진 언덕에는 계단식 논과 밭이 있다. 멋있는 경관으로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역이 된 곳들이 많다. 왜 힘들게 비탈언덕에 논밭을 일궜으며 계단식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 삼천리
위의 궁금증이 지형(地形)학자 데이비드 몽고메리 교수의 <흙> 에서 풀렸다. 그 외에도 역사속으로 사라진 많은 국가와 문명들의 흥망성쇠가 흙과 관련되어 있으며, 현재도 흙은 인류의 미래에 어떤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매장된 석유의 바닥이 드러나는 피크오일(peak oil)처럼 피크 쏘일(peak soil)의 위기에 대처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식량위기가 기후변화와 더불어 흙의 고갈에서도 심각하게 발생한다고 말한다. 고대문명이 사라진 것이 흙의 침식과 무관하지 않다.

"1미터도 안 되는 흙의 두께는 지구 반지름(6,380킬로미터)의 천만분의 1이 조금 넘을 뿐이다. 기반암이 풍화되고 유기물이 활발하게 움직여 겉흙 10센티미터가 만들어지는 데는 백 년이 걸릴 수도 있고 천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 현상이나 인간의 생산과 파괴 활동으로 침식되고 유실되는 흙은 그보다 훨씬 많다. 흙이 만들어지는 속도는 흙이 사라지는 속도를 앞지를 수 없다. 흙의 고갈은 화석연료인 석유나 석탄이 고갈되는 원리와 다를 바 없다." -본문중에서-

식민지 잔재 플랜테이션 농업

아프리카 국가들을 여행다녀온 친구는 식량부족으로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은 한편으로 일부 특권층의 호의호식에 놀라기도 했지만, 드넓게 펼쳐진 옥수수를 비롯한 곡식을 재배하는 많은 농장들을 보면서 식량부족이 이해가 안 되었다고 한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침탈시기에 본국으로 수탈해간 커피, 담배, 코코아 등의 기호식품을 재배한 플랜테이션(plantation) 농업은 독립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서구 자본에 의해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국주의의 식민지를 거친 국가들은 민중들 뿐만 아니라 흙도 생산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혹한 수탈을 당했다. 1~2cm의 흙이 새롭게 만들어지기 까지는 백년이상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식민지 당시에 가혹한 수탈농법으로 침식된 흙이 회복되기까지는 몇 곱절의 시간이 더 필요한 현실에서 아프리카의 굶주림이 해결되기 까지는 마법같은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요원해 보인다. 식민지 당시에 재배하던 서구인의 입맛을 채워준 커피, 코코아와 같은 작물들을 없애고 식량작물로 교체하지 못하는 것도 흙이 새로운 작물을 키워주지 못할만큼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에도 피팍한 삶을 살아야 했던 민중들은 자급의 삶을 살기위해 지력(地力)을 잃은 땅에서는 농사가 불가능하자 숲을 없애고 화전(火田)을 일구거나 비탈길을 개간하면서 흙의 침식은 더욱 가속되었다. 다른 국가들에서도 겉흙이 사라진 땅에서는 늘어난 인구에 비해 식량생산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결국 민중봉기를 촉발시킨 식량폭동의 배경에는 사라진 흙이 있었다. 고대문명들이 지속되지 못한 비슷한 배경이 지금도 진행중이다.

녹색혁명, 굶주림은 계속된다

2차대전 이후 전쟁무기였던 비행기와 전차는 농기계로 변신하고 독가스는 화학농약이 되어 기계화된 대규모 영농산업이 발전했다. 군수물자를 만들던 기업들은 전쟁이 끝나자 새로운 자본축적의 기회로 농업을 상품화 시켰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녹색혁명은 예고된 농업쿠데타였다.

"녹색혁명은 이와 함께 큰 돈이 벌리는 전 세계 화학약품 시장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농업은 화학약품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녹색혁명 덕분에 이 예속의 길에 접어든 나라는 현실적으로 길을 바꿀 수 없었다. 개인들의 경우라면 심리학자들은 그런 습관을 중독이라 일컫는다." -본문중에서-

이른바 녹색혁명으로 맬서스의 '인구론'은 빗나갔다. 녹색혁명을 받아드린 국가들은 몇 곱절의 식량증산으로 1990년대까지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16% 줄었지만, 녹색혁명의 흐름이 닿지 않았던 공산주의 중국에서는 굶주리는 사람이 4억명에서 2억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토지재분배를 실시한 것이 녹색혁명보다 더 높은 효과를 보였다. 중국을 제외하고 녹색혁명을 한 국가들의 인구증가는 점차 식량생산을 앞질렀고 굶주림은 다시 늘어났다. 석유를 투입한 대규모의 기업농보다는 작은 소농으로 자급하는 농사만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녹색혁명은 흙을 가혹하게 수탈했으며 석유사용의 30%가 농업에서 사용된다. 피크오일의 정점이 다가올수록 석유에 의존한 농업은 지속될 수 없다. 기후변화까지 겹쳐서 식량생산은 계속 줄어들 것이며, 값비싼 무기가 되어 인류를 위협할 것이다. 저자는 지금의 문명을 연장하려면 흙을 값싼 산업공정의 투입물로 보지 말것과, 물질적 부를 만들어 내는 살아 있는 토대로서 존중하도록 농업을 재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연자원인 석유와 흙이 만들어지는데 걸린 시간은 인류의 조상보다 훨씬 이전부터 천천히 조금씩 만들어져 왔다. 지금도 지구생태계는 자연질서에 맞춰서 생산하고 있지만 고대부터 인간의 탐욕과 자본을 따르는 과학기술은 불과 100년만에 석유는 바다밑 땅속을 긁고 있으며 지구생명체를 유지시켜온 겉흙은 계속 발가벗겨지고 있다.

어떤 최신의 과학기술도 생산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소비하는 천연자원을 만들어내거나 대신할 수 없다. 만약에 그런 것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의 원자력 방사능 보다 더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석유를 쓰지 않고 흙을 보전하는 방법이 있다. 루소의 말을 빌리자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석유에 의존하는 농업에서 벗어나 자연질서에 순응하는 유기순환하는 농업으로 복귀하는 길만이 흙을 되살리고 지속가능한 문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설국열차에 갇혀서 단백질블럭으로 연명하며 자연이 스스로 회복될 때까지 기약없이 지구를 돌아야 할 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ㅣ 흙 ㅣ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ㅣ 이수영 옮김 ㅣ 삼천리 ㅣ 19,000원



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삼천리(2010)


#흙#몽고메리#마야문명#고대#피캬픽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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