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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방한모 내 취미는 모자를 사 모으는 것.
등산 방한모내 취미는 모자를 사 모으는 것. ⓒ 이월성

등산 방한모자를 2만 원을 주고 샀다. 애들처럼 좋아서 방한모를 방안에서도 쓰고, 밥 먹을 때도 쓰고, 심지어 잠을 잘 때에도 침대 위에서 쓰고 잤다. 내가 산 방한모는 까만 새털 귀 가리개가 모자 위에서 왼쪽과 오른쪽이 찍찍이로 서로 연결된다. 모자챙은 얇고 가는 구리철사가 들어가 있어 모자챙을 삼각형으로 구부리면 각이 선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이 모자를 쓰고 거울을 들여다보면 내가 흑두루미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렇게 아끼고 사랑했던 방한모가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없어졌다. 침대 위에도 없고, 책상위에도 없고, 내가 잠잘 때 옷을 벗어놓는 회전의자 위에도 없었다.

집사람에게 "방한모자를 보지 못했느냐?"라고 묻고 모자를 찾기 위해 침대 밑을 샅샅이 뒤졌다. 손전등으로 침대 밑을 비춰보기도 했다. 방한모 대신 잃어버렸던 물건이 나왔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핸드북 한 권과 집사람 버선이 바로 그것. 찾는 범위를 넓혀 가면서 책상 뒤를 비롯해 온 집안을 이 잡듯 뒤졌으나 방한모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지에서 모자를 사 모으는 취미가 있다. 일본에 가서는 쓰쿠바에 있는 스포츠웨어 매장에서 엷은 하늘색 운동모자를 하나 샀다. 이 모자를 눌러 쓰고 사진을 찍으면, 카리스마가 있는 모습으로 변해 보였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 도깨비감투 같다고나 할까.

러시아 모스크바에 갔을 때에는 겨울 모자를 사온다는 게 양가죽으로 된 모택동 모자를 사와버렸다. 이 모자는 조금 컸다. 모자 뒤쪽을 안으로 조금 접어 넣고 쓰고 머리 뒤로 모자를 쓸어 넘기면 내 모습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모택동이 아닌, 선량한 모택동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모자를 쓰고 밖에 나가면 친구들은 모택동 모자를 금세 알아보고,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 모자는 양가죽이어서 푹신했다. 머리에 따뜻함을 안겨주는 모자였다.

이집트에 가서는 터번을 두른 모자를 샀다. 나는 모양새를 유지하기 위해 옷핀으로 터번을 고정시켰다. 이 모자를 머리에 쓰고 나면 날아다니는 담요가 내게로 날아들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먼 아라비아로 여행을 다니는 꿈 속에 잠기곤 했다.

'잃어버린 방한모, 다시 하나 더 살까' 망설였다. 집사람과 함께 인천 주안동 지하도를 걸어서 집으로 오다가 지하상가 모자가게에 가서 내가 잃어버린 방한모보다 조금 더 투박하게 보이는 방한모를 사려고 했다. "이거 얼마예요?"라고 물었더니 1만5000원이란다. 내가 반한모를 집어들려니까 집사람이 불쑥 튀어나와 "사지 말아요"라며 "조금 더 기다려봐요, 집에서 찾아보면 어디에선가 방한모가 나올 거예요"라고 말한다.

나는 퉁명스럽게 "알았어"라고 답하고 모자가게를 등졌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수봉공원으로 운동을 하러 나갔다. 60도 가까운 가파른 계단을 380개 올라가면 수봉공원 정상에 닿는다. 머리와 등에서 땀이 흐른다. 점퍼 지퍼를 열고 점퍼 속에 입은 옷 지퍼도 열어 열을 식혔다. 집에 돌아온 뒤 머리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고 점퍼를 벗고 속에 입은 옷도 벗는데…. 그렇게 찾던 방한모가 찍찍이에 붙은 채 나왔다.

"방한모 찾았다!!"

나는 크게 소리치고 기뻐했다. 집사람이 "방한모를 사지 말아라"고 한 말이 옳았다.

내가 잠을 자는 이층 방의 벽체는 단열이 되지 않아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몹시 추웠다. 창문은 나무 창문이라 겨울이면 창문 틈새로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그래서 겨울이면 침대에서 잘 때 추어서 점퍼와 같은 겉옷만 벗고 안에 입은 옷은 그냥 입고 잔다. 내가 입은 스웨터 목 주변에는 찍찍이가 붙어 있는데, 잠잘 때 머리에 쓰고 잔 방한모가 스웨터 찍찍이에 눌러붙었던 것을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잃어버린 방한모를 찾은 기쁨에 방한모에 절을 하고 손으로 쓰다듬어줬다. 방한모를 찾지 못했던 시간들, 나는 머리에 한기를 느끼고 서운해했다. 비록 값싼 방한모에 지나지 않지만, 그 의미를 소중하다. 등 뒤에 달라붙어(비록 나는 몰랐지만) 나의 낭비를 막아준 것 아닐까. 방한모가 마치 반려동물처럼 느껴진다.


#방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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