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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를 한 아들과 약 보름간 같이 지냈는데, 하루 하루가 참 소중하고 행복했습니다.
제대를 한 아들과 약 보름간 같이 지냈는데, 하루 하루가 참 소중하고 행복했습니다. ⓒ 이승숙

맥주를 한 잔씩 앞에 놓고 우리 가족은 갑자기 숙연해졌다. 좀 전까지 손가락에 묻은 양념까지 핥으면서 닭볶음탕을 먹던 화기애애함은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모두 우리 집의 막내인 아들의 입만 쳐다본다. 예년과 다름없는 연말연시이건만 올해는 왜 이리 엄숙해졌을까. 

"아들, 내년 계획을 한번 들어보자."

남편의 그 말에 좀 전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달구던 아들이 반듯하게 앉으며 정색을 한다. 우리도 덩달아서 바르게 앉으며 시선을 집중했다.

우리 나이로 25살, 만으로 아직 채 24살도 안 된 아들이 다니던 학교를 한 해 쉬고 본격적인 취직 시험공부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벌써 이것저것 알아보고 온 눈치다. 자기 계획을 이야기하며 부모님을 안심시키려고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아들 역시 우리와 진배없을 텐데도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걱정보다는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취업을 하기 위한 공부이니 어찌 놀이 삼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컴퓨터와 스마트폰도 없애겠다고 한다.

일 년 반 동안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하겠다는 아들의 말을 들으니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산을 하게 된다. 그러면 학원비는 얼마나 들어갈 것이며 또 그 외의 비용들까지 합하면 한 달에 부쳐줘야 할 돈이 얼마나 될까. 적은 돈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돈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다. 그깟 돈이 대수겠으며 돈을 들이지 않고 되는 일이 어디 있더란 말이냐. 그보다는 아들이 힘들지는 않을까, 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고 돈부터 계산하다니. 참으로 속 좁은 엄마라는 생각에 부끄러워, 마저 하려던 말을 얼른 안으로 삼켜버렸다.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어머니, 돈이 많이 들 텐데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하며 오히려 우리를 염려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돈 안 들이고 되는 게 있겠니? 그보다는 건강도 챙겨가면서 공부하도록 해라" 하며 기운을 북돋워주었다.

아들은 밝고 유쾌해서 같이 있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능력이 있다. 요리에 대해서도 탁월한 감각이 있어서, 라면 하나를 끓여도 그 애의 손만 가면 맛이 달라진다며 누나인 딸은 늘 칭찬을 했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배려하는 넉넉함도 아들에게는 있다. 그래서 함께 있으면 나는 늘 귀부인이 돼서 대접받는 호사를 누린다.

아들을 내 마음에만 맞추려... 그건 욕심이었다

 우리는 서로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우리는 서로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 이승숙

그러나 그런 아들에게도 단점이 있으니, 우리 보기에 아들은 뭐든 대충 하는 것 같다. 앞날에 대한 생각은 없이 오직 현재의 안락함만 추구하는 것 같아서 남편과 나는 늘 아들에 대해서 미심쩍어 하고 걱정한다. 그래서 그 애가 하는 일에 대해서 흔쾌히 믿어주지 못하고 의심하곤 했다.

내 눈에는 아들이 늘 어리게만 보였다. 그래서 의견을 듣기보다는 내 생각을 주입하려고 했다. 또 아들이 하는 일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못 미더웠다. 그래서 우리 둘은 만나기만 하면 부딪혔다. 좋게 시작했다가도 끝에 가면 얼굴을 붉히는 게 예사였으니, 그것은 내가 아들에게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들을 내 기준에 맞추려고 했다. 어른인 내 눈으로 봤을 때 아들의 선택은 미숙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아들을 위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 애 의견은 무시하고 나를 따를 것을 강요했으니 어찌 다툼이 없었겠는가. 아들이 군대에 가기 전까지 우리 모자의 대화는 늘 다툼으로 끝나곤 했다.

나는 아들의 교우관계도 별로 신통찮게 여겼다. 아들은 친구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데, 나는 고만고만한 또래들 속에서 배울 게 뭐가 있겠느냐며 그 애가 만나는 친구들 역시 무시했다. "네가 잘 되면 친구는 저절로 따라오니까 지금은 그저 공부만 하라"며 강요했다. 그런 내게 남편은 '자식에게서 독립하는 게 자식을 독립시키는' 것이라며 나의 욕심을 말하고는 했지만, 그때는 내 욕심이 꽉 차 있을 때여서 그랬는지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알게 됐다. 스님은 '아들에게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된다'는 어느 어머니의 질문에 '자식을 자기 욕심대로 맞추려다 보니 잔소리를 하게 된다'고 하면서 '크게 키우고 싶으면 먼저 내 욕심부터 버리라'고 했다.

그 말은 바로 내게 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나 역시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또 내 마음대로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 욕심이었다. 아들은 나름대로 잘 사는데 나는 내 기준에 맞추려고 하다보니 그 애가 하는 일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였다.

목표 향해 나아가는 아들... 엄마도 '꿈' 이룰 날 준비할게

 2011년 겨울, 수필로 등단을 한 엄마를 축하해주러 온 아들.
2011년 겨울, 수필로 등단을 한 엄마를 축하해주러 온 아들. ⓒ 이승숙
제대를 한 아들은 성숙해져 있었다. 그 전에는 엄마의 말을 잔소리로 여기며 듣기 싫어했는데 이제는 어지간한 말에도 화를 내거나 반박하며 바로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며 엄마의 마음을 읽는다. 그런 그 애의 변화를 보면서 흐뭇했다. 아들이 어른이 된 것 같아 뿌듯하고 든든했다.

내 말을 듣는다고 해서 전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하는 말을 듣고 판단해서 합리적인 해결점을 찾아갔다. 그리고 합당한 이유를 들면서 설득하는 지혜를 아들은 알고 있었다. 지금은 아들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 모자는 서로 다툴 일이 없어졌다.

아들이 자기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해나가는데 엄마인 나도 가만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도 함께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들에게만 공부하라고 하는 건 어쩐지 무책임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부러 말하지 않더라도 내가 열심히 살면 그게 바로 아들에겐 또 하나의 자극이 되고 채찍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목표를 하나 정했다. 아니, 전부터 생각하던 게 있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기획안을 짜보기도 하고 목차와 머리말을 써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설레서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꿈만 꿀 뿐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참에 아들과 무언의 약속을 하리라. 그래서 그 애가 경제적으로 독립을 할 때면 나 역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지만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아들이 우리에게 기대지 않고 제 힘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어른으로 다시 태어나길 빌어본다. 아울러 나도 '내 책'이라는 옥동자를 낳는 쾌거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면서 갑오년 새해를 마니산의 참성단에서 맞이했다. 밝고 힘차게 떠오르는 해가 마치 우리 모자의 앞날을 비춰주는 것처럼 여겨져서 가슴 가득 해를 품었다.


#취업#아들#마니산#참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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