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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와 할머니 언어 중증 장애인 손녀가 15살에 초등학교 열린반 선생님의 지도로 책표지를 크레파스로 그리고 책을 쓰고 읽었다.
▲ 호랑이와 할머니 언어 중증 장애인 손녀가 15살에 초등학교 열린반 선생님의 지도로 책표지를 크레파스로 그리고 책을 쓰고 읽었다.
ⓒ 이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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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된 외손녀 꼼은 어려서부터 말을 잘하지 못하는 언어 장애 증상이 있었다. 말을 따라 해도 어눌하기만 하고 "아다다다다"라고 말을 해서 알아듣지 못했었다. 말만 잘하지 못 할뿐 성장은 정상이었고, 외모도 귀엽고 예쁘게 생겼다.

꼼의 엄마는 꼼을 데리고 큰 병원과 언어치료사. 장애인 보호소를 두루 찾아다니며 진단을 받았었는데, 어느 곳 하나 신통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못하는 꼼을 초등학교에 정상인 어린이들처럼 8살 때 입학시킬 수 없어서,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1년을 쉰 다음 9살에는 말을 잘하겠지? 기대하고 9살에 초등학교를 보냈다.

언어장애가 있는 아이를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1학년 꼼 담임 선생님은 꼼을 선생님과 마주 보는 제일 앞자리에 앉혀 놓고 수업하였다. 꼼은 선생님의 말은 알아듣지도 못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어울릴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선생님 책상으로 가서 볼펜, 크리너, 백지 등을 가져와 혼자 놀았다.

꼼은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공부하지 못하고 학교 안에 있는 장애아 학습시설인 열린 반에서 놀며 공부하도록 했다. 열린 반은 일반 학생들과 수업하기 어려운 학생을 모아서 따로 반을 꾸린 곳이다. 꼼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열린 반에 들어가서 6학년 때까지 이 반에서 생활하고 있다.

꼼은 엄마를 좋아하지만, 꼼의 아빠와 오빠에게는 마음을 열지 않고 거부감을 표시하고 얼굴을 마주하지도 않았다. 이상하게도 외할아버지인 내게는 호감을 가졌다. 꼼은 나하고는 핸드폰으로 말을 해서 할아버지의 말을 따라 했다.

내가 "열린 반 선생님 예뻐요"라고 하면, 꼼이 "열리 반 선상님 예삐요"라고 말한다. 나는 무릎을 치고 '옳거니 됐다!' 하고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핸드폰으로 꼼에게 말을 따라 하게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예쁘다고도 했다. 말이 오가는 끝맺음이 항상 "할아아버지 빠이 빠이"였다. 꼼을 데리고 보살펴 주시는 초등학교 열린 반 선생님은 꼼을 남달리 사랑하셨던 것 같았다.

지난해 여름, 남양주에 가서 꼼과 마주앉았다. 내가 "꼼 안녕"하니까, "할아아버지 안녕"하고 제 책상으로 가서 열린 반 선생님의 지도로 꼼이 직접 만든 그림 동화책 <호랑이와 할머니>를 가져 왔다.

책 표지는 크레파스로 호랑이를 그렸는데 호랑이가 꼼이 그린 솜씨로 재미있게 그려져 있었다. 꼼 엄마는 신이 나서 "꼼이 쓴 책이에요, 꼼이 이 책을 읽어요"라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꼼이 책을 쓰고 읽는다니 놀라 뒤로 넘어 갈 뻔했다.

"꼼 할아버지에게 책을 읽어 줘, 아주 재미있겠다?"

내가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꼼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날 아주 예날 호호랑이와 하할머니가 함께에 살았어요."

꼼은 조금 더듬거리고 조금씩 틀리기는 해도 제가 만든 동화책을 정확히 읽어내려 갔다.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호랑이와 할머니>는 어떤 책보다도 더 감명 깊은 책이었고, 이 책을 쓴 꼼이 자랑스럽고 귀여웠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꼼이 그린 호랑이 그림이 더 보기 좋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호랑이가 있을까? 꼼을 가슴에 안고 뽀뽀 해 주었다.

병원에서는 꼼을 치료하지 못했어도, 열린 반 선생님은 꼼에게 말을 가르치고 한글까지 읽게 가르치셨다. 한국의 셜리번 선생님이셨다. 사랑의 힘은 꼼에게서 배타심과 경계의 벽을 허물었다. 말을 하면 "아다다다다"했었던 꼼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나는 꼼이 학사모를 쓰고 대학을 졸업하는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었다.


#호랑이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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