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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이슈화 되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이하: 안녕 대자보)를 보면서 필자도 느끼는 점이 많다. 사실 안녕 대자보에서 언급된 문제들은 이전부터 SNS나 온라인 매체에서 꾸준하게 거론되고, 생산된 논의들이었다. 국정원 개입 부정선거, 철도민영화, 밀양 송전탑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등.

당장 포털 사이트나 온라인 신문의 정치, 사회면을 검색해보면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거기에 주옥같거나 혹은 '쓰레기' 같은 댓글들까지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인다면 관련 정보는 엄청나게 증폭된다. 안녕 대자보에 언급된 문제들은 모르는 사람은 몰랐겠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문제였다. 즉 안녕 대자보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팩트들을 잘 갈무리했던 것이다.

# 종이 대자보가 기존 미디어를 놀라게 했다!

그렇다면 안녕 대자보가 왜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켰던 것일까? 최첨단 IT시대에 단순히 손글씨로 작성된 대자보가 게시판에 붙여졌다고 대학생들의 감수성을 확 사로잡았던 것일까?

이번 문제를 바라보면서 필자는 <나는 꼼수다>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젊은층에 대한 기존 언론 매체들의 파급력이 나날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새삼스럽게 되새겨졌다. 물론 그들(그냥 일반인이라고 해도 좋다)은 24시간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고, 그것에 대한 접근 방법도 훨씬 더 다양해졌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도 TV를 보고, 검색도 하니까.

하지만 그들은 미디어를 소비한 것이지, 적절한 의사 판단을 위한 양질의 정보를 습득한 것이 아니었다. <진짜 사나이>를 시청하며 '군대리아' 버거를 검색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군의 병사들이, 한국전쟁 때 제작된 수통으로 물을 떠 마신다는 정보는 그들에게 제대로 도달되지 않는다.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막장 드라마가 나와야 시청률이 쑥쑥 큰다는 건 박수를 치면서 공감할 것이다. 왜? 느낌아니까! 하지만 드라마 보조 출현자들이 눈치를 보면서 밥을 먹을 정도로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다는 뉴스나 기사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잘 검색도 하지 않는다. 왜? 그런 뉴스들은 우울하기도 하고 재미도 없으니까!

<나꼼수>처럼 안녕 대자보는 기존 매체들이 단편적으로 다루거나 건조하게 표현했던 문제들을 그 또래의 시각으로 자연스럽게 담아냈던 것이다. 더불어 투박한 문체들이 나열됐던 기존 운동권(?)식 성명서와는 다른 시각으로 담겨져 있었기에 독자인 같은 학우들에게 호소력을 얻었던 것이다. '민족 고대'식이 아닌 '김연아 동문이 있는 고대'식으로 버전이 'UP'됐던 것이다.

이런 엄동설한에도 청년들을 스스로 움직이게 만든 안녕 대자보가 기특하다. 그러한 종이 대자보의 파급력을 보고 있자니 엄청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 기존 언론사들이 좀 껑뚱해 보이기도 했다. 겨우 종이 쪼가리, 그것도 그렇게 예쁘게 쓰지 않은 대자보에 청춘들이 뜨겁게 '응답'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기존 언론들은 크게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젊은 독자, 젊은 시청자 끌어들이기에 안간힘을 썼던 언론사들이 아니었던가? 대학생 인턴 기자들을 모집하면서 청년층에 호감을 사려고 했던 언론들이라면 더더욱 반성해야 할 것이다.

# 2003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사설이 길어졌다. 이 기사는 안녕 대자보 현상에 대한 분석 기사가 아니다. '대자보의 추억' 공모전에 응모하는 글이다.

2003년, 당시 필자는 대학생이었다. 윤도현, 김제동씨가 다녔던, 그 대학을 필자도 졸업을 했다. 그 학교에 또래보다는 늦게 입학을 했고, 늦게 졸업을 했다. 학교 성향이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캠퍼스 교정을 걷는 필자의 손에도 제법 두꺼운 사회과학 서적이 들려있었다. 물론 그 책들이 허세용이긴 했다. 하지만 책값이 아까워서 그랬는지 몰라도 간간이 메모를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난다.

그랬다. 필자도 한때는 열혈청년(?)이었다. 지금이야 고물 자전거를 끌고, 혹은 밑창이 다 달아빠진 트레킹화를 신고 역사트레킹을 하고 있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강성(?)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그런 기억들이 막걸리 사발에 얹히는 안주거리가 됐지만  그래도 그때는 나름대로 진진했던 걸로 기억된다.

2003년은 어땠는가? 당시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해에 가장 큰 이슈는 단연 이라크전이었다.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정권은2002년 1월 연두 교서에서 이라크, 북한, 이란 등을 묶어 악의축으로 규정했다. 당연히 그들 나라는 크게 반발을 했었다. 흥미로운 건 911 이후 북한은 즉각적으로 테러 주동세력에 대해서 비판 성명을 냈다는 점이다.

이것 이외도 그 시절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이 더 있다. 2002년 5월에 박근혜 당시 미래연합 총재가 VIP 대접을 받으며 평양을 방문했던 것이다. 박 총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큰 환대를 받으며, 그와 단독회담까지 개최하게 된다. 박근혜 총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 둘 사이에는 무슨 대화가 오갔던 것일까?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회담을 했던 것 같은데... 

그로부터 4개월 후인 9월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평양을 방문할 수 있었던 건 2000년에 있은 6·15선언의 온기가 그때까지도 남아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중동과 중앙아시아에 드리워졌지만 상대적으로 한반도에서는 그 그림자가 짙게 베이지 않았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WMD) 보유와 쿠르드족 탄압에 대해 철퇴를 내리겠다는 부시 정권의 압박은 2003년 3월 20일 선전포고로 바뀌었고, 실제로 침공이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대자보로 작성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이라크 전쟁 반대에 대한 대자보였다.

# 너무~ 길어진 장문의 대자보

기왕 작성하는 대자보, 제대로 해보자는 의미에서 열심히 자료를 수집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자료의 양이 넘쳐났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일어나는 일은 배경지식 설명에 큰 어려움이 없었을 테지만 국외문제는 그렇지가 않았다. 1991년에 있었던 걸프 전쟁은 당연히 설명을 해야 했고, 그 외에도 많은 역사적 배경들로 뼈대를 갖추어야 했다.

그렇게 뼈대를 갖춘 역사적 배경들은 이렇다. 1980년대 있었던 이란-이라크전에서 당시 미국은 후세인이 이끌던 이라크에 군수지원을 했다. 팔라비 왕조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던 미국은, 1979년 아아톨라 알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란혁명 이후 이란과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선다. 그 뒤에 발발한 이란-이라크전에서 미국은 이라크를 내세워 대리전을 치렀던 셈이다.

그렇게 대리전을 수행하다보니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방문을 하게 됐는데 그 중에는 럼스펠드도 포함되었다. 럼스펠드가 누군가?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을 수행한 국방부 장관이 아니던가? 한때는 후세인에게 VIP 대접을 받았던 인물이 바로 럼스펠드였던 것이다. 

이런 팩트 말고도 '빈 라덴과 후세인은 서로 싫어했다'에서부터 쿠르드족을 탄압은 터키가 더 심하게 했다, 대량살상무기(WMD) 보유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 베트남 확전의 빌미가 됐던 통킹만 사건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렇게 많은 자료들을 모았고 그 내용들을 담으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글쓰기와 관련해서 필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너무 길게 쓴다는 것이다. 최근에 필자가 기고한 기사들을 한 번 살펴보자. <편도 티켓만으로 세계여행,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12월 16일)> 원고지 30매, <남도답사 1번지, '강진군' 사용법을 소개합니다(12월 6일)> 원고지 30매, <속초에 가시걸랑 마도로스 리를 만나세요> 원고지 34매... 올 초에 기고한 기사는 원고지 40매 짜리도 있었다.

뭐하느라고 이렇게 길게 썼는지... 그런데 문제는 10년 전에도 그렇게 썼던 것이다. 대자보를 원고지 30매 이상 분량으로 작성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건조한 문체로!

# 악플보다 더 무섭다는 무플?

10년 전의 나.

장문의 대자보를 걸었다는 우쭐함과 함께 한편으로는 학우들이 안 읽어주면 어쩌나 하는 초조함이 교차했다. 그래서 학내 게시판 쪽으로 시선이 계속 머물렀다. 

"내가 쓴 거 좀 읽어봤냐?"
"어 그거요. 그 긴 자보요?"
"맞어. 그거."
"좀 읽다 말았어요. 강의 시간이 걸려서요. 시간나면 찬찬히 읽어 볼게요."

친한 후배에게 물어봤더니 이런 반응이 나왔던 것이다. 다른 지인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왜이리 길어요? 읽다가 낙오했어요."
"......"

더한 소리도 들었다. 학우들의 반응을 살피려 게시판 앞쪽에서 정탐(?)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우락부락한 녀석이 콧방귀를 뀌며 이런 말을 내뱉었다.

"글씨도 안 예쁜게... 이거 종이 낭비하는 거 아니야?"

사정이 이렇다보니 피드백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슈가 되는 대자보 공란에는 메모들이 빼곡하게 채워진다.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작성자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님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이런식으로 메모가 채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내 대자보에는 그런 피드백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게시 이틀째 날에 많은 비가 내렸는데 그때 내 대자보는 비를 흠뻑 맞고 너덜너덜해졌다. 실외 게시판이 학우들의 이목을 더 끌기에 그곳에다 게시를 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내 대자보의 수명은 4일 정도였다. 비를 흠뻑 맞은 대자보는 이미 흉물로 변해있었고 다음날 가보니 그마저도 제거되어 있었다. 게시 기간이 좀 남아 있긴 했지만 이미 생명력은 다 했던 것이다.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악플보다도 더 무섭다는 무플이라니! 그런 무플의 쓰라린 기억들 때문인지 필자는 안녕 대자보가 무척 부럽다. 그렇게 뜨거운 피드백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람의 능력인 것 같다. 필자도 이제는 뜨거운 피드백을 받아보고 싶다! 지금은 대자보를 쓸 일이 없으니 기사문을 통해서 뜨겁게 받아보련다!
푸하핫!

덧붙이는 글 | 대자보의 추억 응모글입니다!



#대자보#안녕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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