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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상(常)은 상(尙)과 건(巾)으로 이루진 형성자로 고대인들이 늘 허리춤에 두건을 차고 다닌 것에서 ‘늘, 언제나’의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 常 항상 상(常)은 상(尙)과 건(巾)으로 이루진 형성자로 고대인들이 늘 허리춤에 두건을 차고 다닌 것에서 ‘늘, 언제나’의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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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이화원의 덕화원에는 1905년에 그린 일흔 한 살 서태후의 초상화가 있는데 '청춘은 늘 거기에(靑春常在)'의 의미로 젊은 중년의 서태후상이 그려져 있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변함없는 젊음을 바랬던 한 인간의 어리석음이 늘 그곳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청산(靑山)난 엇뎨하야 만고(萬古)애 프르르며/ 유수(流水)난 엇뎨하야 만고(萬古)애 긋디 아니난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호리라."

학문에 대한 꾸준한 정진을 노래하고 있는 이황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의 일부다. 늘 푸른 상록수(常綠樹)처럼 학문에 정진하는 태도를 자고의 미덕으로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변함없음이 때로는 고지식한 교조주의로 흐를 수 있음을 노자(老子)는 경계한다. 유명한 <도덕경>(道德經)의 첫 구절에서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늘 그 도가 아니고, 가히 이름이고 할 수 있는 이름은 늘 변함없는 그 이름이 아니(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라고 했으니 말이다. 한유(韓愈)도 <사설>(師說)에서 '성인은 일정한 스승이 없다(聖人無常師)'는 말로 고정된 가르침보다는 모든 것에서 스승을 찾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언제나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상비불해(常備不懈)'는 지속적이고 변함없음이 긍정적인 의미를 갖지만, '늘 욕을 하면 겁내지 않고, 늘 때리면 무서워하지 않는다(常骂不驚, 常打不怕)'는 말에서는 변함없음이 오히려 식상한 방식으로 부작용을 불러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변함없이 지속하며 지켜야할 가치가 있고, 적절한 변용과 변화를 추구해야 할 때가 있는 셈이다.

항상 상(常·cháng)은 상(尙)과 건(巾)으로 이뤄진 형성자인데 고대인들이 늘 허리춤에 두건을 차고 다닌 것에서 '늘, 언제나'의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설문해자>에서는 상(常)을 치마 '상(裳)'으로 풀이하는 것으로 보아 늘 치마처럼 두르고 다닌 마포(麻布)에서 그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한유(韓愈)는 <잡설>(雜說)에서 "천리마는 늘 있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백락 같은 사람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다(千里馬常有, 而伯樂不常有)"라고 하며 천하의 인재를 알아보는 식견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고 하였다.

늘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함을 알아보는 힘이 언제나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늘 곁에 있지만 소중함을 모르기도 하고, 곁에 없는 것에 무작정 목말라하기도 한다. 그래서 '있을 때에는 없을 때를 생각하고, 없을 때에는 생길 때를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常将有日思无日,莫到无时盼有时)'는 말도 생겨났을 것이다. 하도 쉽게 변하는 사람들이 많아 늘 변함없는 항상심(恒常心)을 지닌 이들이 그리워지는 시절이긴 하지만 그 항상심 또한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늘 살펴볼 일이다.


태그:#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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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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