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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부에서 작성한 '3·1운동시 피살자 명부'안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충남 예산군 3·1운동 피살자가 7명이나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은 지난 20일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3·1운동시 피살자 명부(630명)를 비롯해 관동지진 희생자 명부(290명), 강제징용자 명부(22만9781명)가 주일한국대사관 이전시 발견됐음을 밝히고 일부를 공개했다.

이번에 발견된 630명의 주소, 나이, 순국일, 상황 등이 자세히 적힌 3·1운동 피살자 명부는 국내외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최초의 명부로 의미가 큰 것으로 보고 있다. 3·1운동시 순국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경우는 현재까지 391명에 불과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이 배포한 보도자료의 예시사진.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이 배포한 보도자료의 예시사진. ⓒ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

충청지역의 경우 3·1운동시 피살자 총 100명 가운데 기존에 31명이 서훈을 받았고, 69명이 이번에 발견된 자료에서 추가로 확인됐다.

예산군의 경우 3·1운동시 피살자 명부에 오른 10명 가운데 3명은 서훈을 받았고, 나머지 7명이 새롭게 발견됐다.

이번 자료에서 나타난 예산군 3·1운동시 피살자 명단 현황(사진 참조)을 보면 김재현, 문병석, 성진호, 서승종, 김학범, 이남규, 이충구, 가수복, 유응길, 이기삼이다.

이 가운데 이남규(1962년 독립장), 이충구(1991년 애국장), 유응길(2008년 애족장, 김응길과 동일인물) 3인은 서훈을 방았고, 나머지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다(아래 참조).

한편 이번에 발견된 명부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당시 내무부가 만든 것으로 1953년 4월 열린 제2차 한일회담을 준비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가기록원이 확인작업을 거친 뒤 내놓을 예정인 공식 명단 발표 전에 예산군 3·1운동시 피살자 현황이 나온 것은 안전행정부가 보도자료를 내며 예산군기록을 예시한 데 따른 것이다. 명부 전체가 공식발표되면 우리고장 3·1운동 피살자 외에 강제징용자와 관동지진피해자 등 관련인물이 더 나올 것으로 보인다.


명부에 기록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은 해독불가한 글자의 표기


■ 오가면 오촌리 김재현
33세, 기미 3월 1일 10시 순국, ○○○ 낙후산에서 일헌병에게 체포돼 타살 당함, 인정자(사실 확인자)­오가면 오촌리 김상현

■ 오가면 오촌리 문병석
26세, 기미 3월 1일 10시 순국, ○○○낙후산에서 일헌병에게 체포돼 타살 당함, 인정자­오가면 오촌리 김상현, 남창기

■ 예산읍 예산리 성진호
24세, 단기 4264년 8월 26일 순국, 무정부주의자로 온양에서 체포, 검사송치돼 ○사함. 순국장소는 서울서대문형무소.

■ 응봉면 후사리 서승종
30세, 팔봉산에서 순국, 순국일시와 상황은 불상.

■ 응봉면 계정리 김학범
39세, 만세선동으로 단기 4253년 계정리서 순국(일시는 미상), 인정자­응봉면 계정리 김월성

■ 대술면 방산리 가수복
42세, 단기 4240년 8월 19일 아산군 송악면 평촌리에서 일헌병에게 역살(力殺), 인정자­대술면 상항리 이승○

■ 덕산면 옥계리 이기삼
30세, 단기 4261년 독립만세를 제창하다 일경에게 체포돼 총살당함(일시 미상), 인정자­덕산면 옥계리 정인식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3·1운동 피살자 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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