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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출판사가 무슨 잘못인가. 이런 논리로 작금의 교학사 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파문을 물타기하는 이들이 있다. 교학사를 일종의 희생양처럼 보면서 은근히 편을 드는 논리다. 하지만 교학사 출판사는 잘못이 있다. 있어도 많이 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교학사는 1951년부터 교과서와 참고서를 출간했다. 한국전쟁 중의 혼란기였다. 어지간한 '출판 열정'이 아니고서는 힘들었을 시기다. 그 후로 교학사는 교과서 등의 학습교재 전문 출판사로 크게 성장한다. 30대 후반 이상의 세대에게 익숙한 '표준전과'도 교학사 '작품'이다.

하지만 지금 교학사는 그런 전통과 실력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교학사는 2009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집필된 검인정 교과서 46책이 최종 합격했다. 하지만 최초 검정을 신청한 교과서 수는 모두 100종이나 된다. 그 중 46책만이 검정을 통과했으니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공을 발휘한 셈이다. 한 종 당 2~3억 원이 드는 비용을 고려하면 상당한 액수를 허공에 날릴 판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자존심조차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다. 출판업은 사업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문화운동이기도 하다. 책을 찍어내는 일은, 가령 자동차나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일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책은 한 시대의 정신과 문화를 사람들에게 매개하는 수단이다. 그렇게 매개되는 정신과 문화가 일정한 가치를 인정받을 때 사업으로서의 출판업도 살아남을 수 있다. 출판사가 어떤 저자와 함께 어떤 내용의 책을 만들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교학사는 어떻게 했는가. 파문의 진원인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대표 필자는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다. 기존 언론 보도를 보면, 이번에 문제가 된 역사교과서는 권 교수가 교학사 측에 먼저 제안을 해 집필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학사 측에서는 나름대로 필자 검증을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집필이 시작되었다. 교학사가 권 교수가 이끄는 집필  팀을 받아들인 것이다.

교학사는 권 교수와 '제2저자' 격에 해당하는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뉴라이트'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점을 사전에 인지했을 것이다. 그들이 쓰는 교과서가 논란을 일으키리란 점도 충분히 예상했으리라. 그럼에도 그들은 권희영 교수 팀을 받아들였다. 그들의 '실력'과, 그들이 만들어낼 교과서의 '사업성' 등을 그런대로 괜찮게 평가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최초 수정본에서 나온 내용 오류 건수는 다른 출판사의 2배를 넘었다. 교사들이 채택을 위해 보게 되는 전시본에서조차 중대한 오류를 포함한 심각한 문제가 300여 건 가깝게 나왔다. 단순히 내용이나 역사관과 관련된 '우편향'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부실 교과서가 나온 셈이다. 62년이나 되는 교학사의 전통이 무색해지는 이유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자손심을 훼손하고 있다고 말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과 한 마디 내놓지 않고 있다. 다른 출판사보다 2배 이상이나 많은 내용 오류 사실만으로도 교학사는 고개를 깊이 숙였어야 한다. 저자들을 다그쳐 책임을 묻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 즉각적인 시정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다른 출판사들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태도다.

하지만 그들은 검정을 통과한 사실에만 주목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이번 역사 교과서 파문에 아무런 원인도 제공하지 않은 제3자처럼 행세한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억울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육부에서 제시한 기준을 굉장히 지키려 노력했고, 그래서 검정에 통과했을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교학사가 사상 논쟁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영업자인 출판사일 뿐이다. 자꾸 오른쪽으로 몰고 가는 게 너무 안타깝다."

13일 오전, 김호영 교학사 홍보팀장이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내놓은 말이다(관련 기사: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발행 포기는 불가능). 김 팀장의 말처럼 그들이 사상 논쟁을 일으키는 게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영업자일 뿐일까.

만약 그렇다면, 동물적인 사업 감각이나 수완을 발휘하시라. 그들은 지금 이번 한국사 교과서 파문 덕분에 이번에 검인정을 통과한 그들의 교과서 전체가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극심한 논란을 일으킨 부실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출판사 자체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그들은 저자들을 적극적으로 몰아붙이든지, 교과서 발행을 포기하려는 노력(?)을 즉각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사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교과서가 여기저기서 합당한 비판을 받는다면 오히려 고마워하는 것이 순리 아닌가. 그렇게 해서 더 건강하고 알차고 완벽한 교과서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교육부의 최종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친일 옹호 서술이나 특정 정권 미화 등의 역사적․정치적 편향성이나 왜곡 논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박한다. 서술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쳤다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검정을 통과시켰겠느냐는 것, 검정을 통과한 것으로 보면 교육부도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지 않았겠느냐는 말들이 그것이다. 자신들을 자꾸 오른쪽으로 몰고 가는 게 안타깝다는 김 팀장의 말이 무책임하하게 들리는 이유다.

교학사 측에서는 이번 한국사 교과서 사태로 자신들이 보수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생겼다고도 말한다.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친 출판사가 아닌데 한쪽으로 몰리고 있으니 억울하다는 말일 터. 그런데 마침 지난 4월 29일 교학사가 발간한 <한국사대사전>을 통해서도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제주 4·3 사건을 '폭동'으로 기술한 대목 때문이다.

그 어떤 경우든 자업자득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교학사는 권희영 교수팀의 '실력'과 교과서의 '사업성'만 생각했을까. 만약 그들이 정말로 '실력'과 '사업성'만을 믿고 집필팀을 구성했다면, 이는 그들의 '저자 전문성 검증'이 '전문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셈이 된다. 결과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수많은 오류와 문제투성이의 교과서로 저자들의 '실력'과 교과서의 '사업성'을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교학사와, 권희영 교수가 이끈 집필팀 사이에 모종의 '정서적' 교감 같은 게 있지 않았겠게느냐고 의심한다. '실력'과 '사업성'만이 아니라, 가령 이런 역사관에 바탕을 둔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내자는 공감대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한국사대사전>의 사례도 충분히 그런 맥락에서 살필 수 있지 않을가.

그 모종의 정서적 교감은 어떤 것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교학사가 부실하기 짝이 없고 극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교과서를 만들어냈다는 점, 그런 교과서를 만들어냈으면서도 출판사 측에서는 사과 한 마디 없이 두 손을 내려놓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을 다그쳐 문제를 해결할 기미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기들이 억울한 '피해자'인 양 하소연을 하고 있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교과서가 적극적으로 거부되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권희영 교수#이명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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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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