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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럴 줄 알았다. 이어진 광주소년소녀합창단장은 결국 보수 정권과 수구 언론, '일베'의 파상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우리의 기억에서는 물론, 법 조항에서도 이미 사문화한 걸로 여겼던 '내란 음모'와 '내란 선동', '주사파' 등의 용어들이 되살아나고 있는 지금, 살벌한 공안 정국의 직격탄에 맞은 첫 번째 사례라 할 만하다.

지난 8월 15일, 그는 광주 빛고을 문화관에서 열린 광복 68주년 기념 공연 때 단원들에게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단체복을 입혔다는 이유로 이념 논란에 휩싸였다. 광주 보훈청장과 수구 언론이 주연을 맡고, 광주광역시장이 조연을 맡아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었다.

그는 논란을 빚은 뒤 채 한 달도 못 버티고 내쫓기듯 자진 사퇴했다. 법적 처벌보다 무서운 것이 여론 재판이라더니, 우리 사회는 그를 끝내 지켜주지 못했고 광기로 가득 찬 극우 세력은 그를 집요하게 물어뜯어 끝내 '승리'했다. 어쩌면 그들의 '전략'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맹목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갈등을 부추겨 법정으로 가기 전에 굴복시키는 것.

그의 울분에 찬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그는 "논란이 있은 뒤 나라를 팔아먹은 중죄인 취급을 받아왔다, 공연을 위해 쏟았던 단원들의 열정과 노력이 '티셔츠' 한 장에 짓밟혔으며, 그 편협한 시각에서 어떻게 아이들의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원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는 사퇴의 변을 남겼다.

논란 직후 그가 겪었을 수모를 생각해본다. 합창단의 상급 기관인 광주광역시는 그에게 경위서를 요구했고, 진상 파악을 이유로 마치 죄인 다루듯 수차례 출석 통보를 했다고 한다. 왜 단원들에게 사회주의 혁명가인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혔냐는 '몰상식한' 추궁에 과연 그가 어떤 대답을 했을지 되레 궁금하다. 속으로 이러지 않았을까.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민주인권의 도시, 광주광역시의 대응 안타까워

 구글에서 '체 게바라 티셔츠'로 이미지 검색한 결과
구글에서 '체 게바라 티셔츠'로 이미지 검색한 결과 ⓒ 구글 갈무리

이번 논란은 공수가 바뀌어야 옳았다. 그는 체 게바라 티셔츠가 '내용물이 아닌 포장지 색에 불과했다'고 항변했지만, 설령 광주 보훈청장이 내보인 불편한 심기대로 '의도'가 있었다 해도 그게 무슨 문제인가. 주지하다시피, 체 게바라는 이미 그의 불꽃같은 삶과 인간적인 체취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우뚝 서지 않았는가.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에 의해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으로 추앙 받은 체 게바라의 삶은 이미 십여 년 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전 세계에서 상영되었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그것이다. 부유한 집안의 청년 의사였던 그가 모터사이클 한 대에 의지해 남미를 횡단하며 본 민중들의 참혹한 삶을 외면하지 못하고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됐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체 게바라의 삶은 극심한 양극화로 갈수록 파편화하는 우리 사회를 성찰하게 만드는 귀감이 될지언정, 광복절의 취지를 훼손한다며 그의 이름조차 불온시하는 외눈박이 행태가 가당키나 한가. 현 정권과 수구 언론들의 호들갑은 그렇다 치자. 민주인권의 도시, 광주광역시는 그런 그들에게 '대체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어야 옳다.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징계위 회부가 부당하다는 여론이 들끓자 광주광역시는 슬며시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징계위에 회부하는 대신 단순 경고 조치한다는 것이다.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어떻든 '잘못은 잘못'이라고 상급 기관에서 못 박은 셈인데, 과연 합창단장에게 경고와 징계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창조 경제, 문화 융성이라는 정부의 국정 지표가 참으로 무색하다. 전 세계 문화 예술 분야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체 게바라조차 용인하지 못하는 정부의 편협한 시각도 그렇지만, 입만 열면 인권 도시, 문화 도시, 창조 도시 운운하면서 보훈청장의 한 마디와 수구 언론의 '지적질'에 화들짝 놀란 광주광역시의 옹졸함이라니.

진짜 쫓겨난 건 사상의 자유이자 인권

지금도 '일베'에는 그를 향한 폭언이 쏟아지고 있다. 나아가 그를 통해 광주와 전라도에 저주를 퍼붓고 있다. '일베'가 던진 질문을, 그에게 징계위 회부 운운하며 보수 정권과 수구 언론 앞에 납작 엎드린 광주광역시에 묻고 싶다.

"광주가 북한 공산괴뢰집단 소속인가?"
"광주는 체 게바라 식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가?"

이렇듯 하나 둘씩 '멀쩡한' 사람들이 쫓겨나고, 늘 그래왔듯 그 자리는 '영혼 없는' 사람들이 채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진짜 쫓겨난 건 그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이고, 인권이며, 광주다. 현 정부가 '종북'으로 낙인찍으면 그걸로 끝인 '사상의 순결 사회'로 접어들었고, '종북'으로 낙인찍힌 자들의 인권은 주장조차 어렵게 됐다.

요컨대, 이 단장의 자진 사퇴는 현 정부의 치하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기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교훈을 심어주었다. 또한 마음먹기에 따라서 한두 사람 정도는 '훅 보내버릴 수 있다'는, 그렇잖아도 기고만장한 수구 언론에 날개를 달아준 사건이기도 하다. 광주광역시의 '찌질함'에 광주광역시민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럽다.

이 단장은 사퇴의 변을 마무리하며 이런 바람을 이야기했다. "체 게바라 티셔츠 논란을 통해 나와 광주가 안아야 했던 '생채기'는 앞으로 광주가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우뚝 서는 날 완성된 무대로 보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여론 재판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가 눈물을 머금고 남긴 마지막 소망은 과연 이뤄질까. 단언컨대, 백년하청이다.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인 체 게바라의 삶조차 품지 못하는 척박한 현실에서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우뚝 서겠다고?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체 게바라 티셔츠#광주소년소녀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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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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