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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
 올 여름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
ⓒ 온케이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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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어김없이 여름은 찾아오고, 폭염과 열대야는 점점 더 심해지는 듯하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체감상으로만 그런 것인지, 여름은 점점 더 찌는 듯이 더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나에게 "가장 더웠던 여름이 언제였느냐"고 물어온다면, 내 대답은 한결같이 '2011년의 여름'이다.

그해 7월에 나는 경상남도 통영으로 떠났다. 동업으로 하던 가게에 문제가 생겨서 빈손으로 서울의 거처를 떠나야만 했고, 일자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가 있는 통영에서 조선소 일을 구할 수 있었다.

아파트에 마련된 기숙사와 조선소 안의 식당에서 제공되는 밥. 숙식이 해결된다는 이야기에 나는 주저없이 짐을 싸서 통영으로 갔다. 일이 힘들고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때의 나로서는 이런저런 조건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전부터 동업을 만류했던 아버지에게 무어라 소식조차 전하기가 민망하고 두려웠다. 그런 상태로는 집에 돌아갈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스물일곱의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나가야 했다.

한여름에도 긴팔·긴바지 입는 작업장...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풍경, 짜고 습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곳.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몇번인가 들르곤 했던 통영은 나에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곳'이었다.

기숙사에 도착해서 짐을 풀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그랬다. 하지만 출근 첫날이 되어서 마주한 광경은 점점 내 마음을 바꾸고 있었다. 안전화를 비롯해서 안전모와 근무복을 받았는데, 한여름임에도 긴팔과 긴바지로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머지 않아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용접을 하는 작업장이기에 팔과 다리를 감싸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착용해야 할 장비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용접과 금속절단 작업 도중 생길지 모르는 화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장갑은 두 켤레나 껴야만 했고, 용접시 생기는 가스를 흡입하지 않기 위해서 방독면처럼 생긴 마스크도 둘러야 했다. 보호안경도 챙겼고, 각반과 귀마개도 잊지 말아야 할 필수품목이었다. 이쯤 되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상태다.

거기에 설상가상인 것은 작업환경이었다. 당시 근무했던 조선소는 수백톤급 거대선박을 만드는 곳이었다. 미리 설치된 계단식 사다리를 통해 10m 높이의 갑판에 올라선 다음, 선체의 내부에 진입하여 작업을 하게 되면 한여름 햇볕에 한껏 달구어진 쇳덩어리 안에 들어선 셈이다.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산 채로 익어버릴 것 같은' 열기 속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갑판으로 이동하자, 조금이나마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박의 안쪽은 전혀 통풍이 되지 않던 것과 다르게 무척 시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사람들이 왜 갑판의 작업을 더욱 꺼리는지 알 수 있었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살로부터 도망칠 공간은 배 위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자그마한 그늘막을 쳐놓은 곳이 있긴 했지만, 업무 진행을 위해선 언제까지 그곳에만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배의 난간 가까이에서 작업하던 도중 돌풍에 휘청하여 추락할 뻔했던 아찔한 경험을 겪은 이후부터는, 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시원하다며 마냥 좋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찜통' 속에서 보낸 한달...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이렇듯 나는 첫날부터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러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후에도 여러번, 그 숨막히는 열기 속에서 쓰러질 듯 어지러웠다. 이런 곳에서 매일을 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웠다. 더불어 여지껏 열대야와 폭염에 푸념을 늘어놓았던 날들이 떠올랐다.

한시간, 아니 30분만 들어가 있어도 입고있는 옷이 온통 땀으로 흠뻑 젖는 '찜통' 속에서 겨우 한달을 보냈다. 하루하루 탈진할 것만 같은 나날 속에서 도무지 더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힘든만큼 경력이 없거나 적은 사람에게도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곳이 조선소였지만, 무더위에 약한 체질을 가진 나로서는 잊지 못할 '악몽'을 선사해준 곳이 되었다.

그리고는 한여름에 겪을 수 있는 무더위의 최대치를 맛보았다는 생각에 '앞으로는 더위로 불평할 날은 없겠다, 오늘을 잊지 않는다면' 하고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그 뒤 2번의 여름을 무사히 보내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 날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까닭일 것이다. 그 어느 여름보다 많은 땀을 흘렸던, 조선소 뱃속의 '사막같은' 더위와 싸우던 한달을.

덧붙이는 글 | 기사공모 '폭염이야기' 응모글입니다.



태그:#폭염, #조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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