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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 없는 의사회를 주제로 한, 두 권의 책. <인류의 절망을 지료하는 사람들>과 <국경 없는 괴짜들> 겉표지.
국경 없는 의사회를 주제로 한, 두 권의 책. <인류의 절망을 지료하는 사람들>과 <국경 없는 괴짜들> 겉표지. ⓒ 김병현

1999년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은 국경 없는 의사회(이하 MSF:Medecins Sans Frontieres)였다. 수락연설에서 당시 MSF 국제본부장 오르빈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원조를 할 때에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구분해서는 안 되며, 인간적 고통을 해결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오히려 이를 조장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런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면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느니 활동을 자제할 것입니다."

1971년 프랑스에서 창립된 MSF는 지난 40여 년 동안 자연재해, 전쟁, 기아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인도주의 차원에서 말 그대로 '국경 없는' 응급의료 구호 활동을 펼쳐왔다. 오르빈스키의 발언에도 묻어나지만, MSF는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응급의료 구호 활동을 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특정 국가의 열악한 인권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단체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국경 없는 의사회(MSF)
북미에서는 'Doctors Without Borders'라고도 부르지만 일반적으로 'Medecins Sans Frontieres'라고 알려진 국경 없는 의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 인도주의 의료단체다. 2008년에는 26,000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65개국에서 구호 활동을 펼쳤다.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분쟁 지역, 난민촌, 굶주린 지역에서 벌이는 MSF 프로젝트지만, 지역 보건소 지원이나 AIDS환자 치료 등의 소규모 프로그램도 중요한 MSF 프로젝트다.

-<인류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 중에서

MSF는 응급 사태의 근본 원인에 대한 고민보다는 오로지 의료, 급식과 같은 현실적인 고통을 치유하는데 중점을 둔다. 또한 행동적인 성향이 강한 인권단체와는 다르게 편을 가르지 않고 희생자에게 다가간다. 따라서 그들 특유의 '중립성'이 요구된다. 고통에는 피아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독특한 MSF의 행보는 뭇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의 활동가만이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관련 문헌이나 책이 거의 없었다. 궁금해도 정보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MSF를 주제로 한 두 권의 책이 거의 동시에 출간됐다. 바로 캐나다 저널리스트인 댄 보르톨로티의 <인류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과 우리나라 청년 신창범씨의 <국경 없는 괴짜들>이다. 거기다가 재밌는 점은 이 두 책은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표현해, <인류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이 '정사'라면 <국경 없는 괴짜들>은 '야사'다.

정돈되고 가지런한 <인류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

<인류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의 서두에는 '정사'답게 MSF의 탄생배경과 일화가 소개된다. 책에 따르면, 그간 여러 가지 설들이 있었지만 가장 객관적인 사실은 이렇단다. 1971년 나이지리아로 자원봉사를 떠난 젊은 프랑스 의사 몇 명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이 소속된 적십자는 프랑스 의사들에게 신중하게 처신할 것을 요구했다. 적십자 또한 '중립'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 의사들은 침묵을 거부하고 인종 학살의 증인으로 나섰다. 나이지리아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고국에 돌아온 이들은 응급의료 지원을 위한 의사모임을 구성했다. 마침 이와 비슷한 시기에 파리의 한 의학 신문이 지진과 홍수 피해자를 돕기 위한 자원 의사를 모집했다. 그렇게 각각 활동하던 두 모임이 합쳐져 MSF가 탄생했다.

주로 회상과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된 단락들은 정제돼있다. 대부분은 활약상을 그린 것이다. 그와 함께 제기되는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굶주림, 질병, 살상, 전염병, 이 모든 인류의 절망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

또한 MSF의 내부사정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활동가의 40%는 의료인이 아니란 사실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였다. 인프라가 온전치 못한 지역에 가는 경우, 독자적으로 시설과 장비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수긍이 갔다.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었다.

일부의 비판을 의식한 듯 자신들이 '중립적'으로밖에 활동할 수 없는 이유도 설명했다.

MSF는 미국의 침략이 사담 후세인의 독재보다 더 심할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이들 NGO에게 물었다. 그들은 인도주의자에게 전쟁에서 누가 옳은지 묻는 것은 말이 안 되며, 단지 누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만 물어야 한다고 했다. 당연한 대답이었다. 구호단체라면 말이다. MSF 활동가들은 이런 사실이 괴롭다고 말하지만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도 말한다. 결국 이런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이 MSF의 가장 큰 힘이다.(<인류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 중에서)

다소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MSF의 허가를 받아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저자인 댄 보르톨로티는 MSF의 협조를 얻어 본부와 현장을 직접 방문할 수 있었다. 다양하고 체계적인 취재가 가능했다. 덕분에 제대로 정리된 교과서 한 권을 읽는 기분이다.

솔직하고 발랄한 <국경 없는 괴짜들>

반면에 같은 대상을 쓰고 있지만, 재미있는 잡지책을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 바로 우리나라 청년 신창범씨가 쓴 <국경 없는 괴짜들>이다. 책의 탄생설화(?)부터가 독특하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계 평화와 지구 수호를 위해 한 몸 바치겠노라'며 국제기구의 문을 두드렸단다. 그러다 몸담게 된 곳이 '국경 없는 의사회'다. 이유는 '조끼가 섹시해서'라고.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일을 시작한 신씨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이미지로 포장된 MSF의 그 무게감에 비해 경박하기 그지없는 속사정을 까발렸다. 마치 동심을 짓밟으며 즐거워하는 짓궂은 어른처럼 말이다. 그들도 사람이니 어찌 허물이 없을까. 부대끼며 나는 적당한 소음은 인간미를 부여해준다.

한편으로는 단체의 역기능도 지적한다. 파키스탄 정부가 운영하던 병원을 MSF가 넘겨받아 이어오던 곳이 있었다. 그 병원이 근방에서는 유일한 정부병원이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다. 외진 곳이라 의사도, 간호사도 오기를 꺼려했다. 거기다가 탈레반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 도시마저 기능을 거의 잃고 있었다. 물론 MSF가 진출하는 데 대해 지역의 사설 병원들과 약국들은 결사반대를 했다. 당연한 반응이라 고개를 끄덕거리던 저자에게 한 직원이 해준 말은 날카롭다.

"우리가 평생 여기에 있을 거라면 이 지역 의사들이나 약사들이 뭐라고 하건 상관할 바 아니지만 문제는 우리가 여기 평생 있지는 않을 거라는 거지. 우리가 떠나면 남아 있는 것은 결국 여기 병원과 약국인데 우리 때문에 모조리 문을 닫으면 지역 주민들은 그나마 형편없는 치료도 받을 길이 없는 거라고."(<국경 없는 괴짜들> 중에서)

나 역시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라 뜨끔했다. 이와 비슷한 문제는 <오마이뉴스>에서 연재됐던 '울지마! 아프리카'에도 언급돼있다. 물론 <인류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에 대한 고민을 MSF측에서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깊게. 그러나 쉽사리 결론나지 않는 딜레마다. 확실한 것은 최종 목표가 어디까지나 그들의 자립이란 점이다.

열악한 환경, 형편없는 치안, 거기다가 비슷한 분야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도 본부의 호출에 기꺼이 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저자 자신을 중심에 놓기보다는 여러 가지 주변 상황들을 버무려 익살스럽게도 포장했지만, 또 비록 책의 이름처럼 괴짜들이 모였을지 몰라도, 활동가 모두가 굳건한 소명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인류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과 <국경 없는 괴짜들>, 두 책에서 그려지는 사실은 어느 것이 맞고 틀리고를 따질 성격이 아니다. 다만 누가, 어느 시선으로 바라보았냐는 차이겠지. 두 책은 상호보완적이다. 그렇기에 가장 명망 있는 국제단체 중 한 곳인 MSF에 대해 알고 싶다면 꼭 두 권 모두 읽기를 권하고 싶다. 두 모습 다 MSF의 면면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국경 없는 괴짜들>, 신청범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013.03, 1만3천원
<인류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 댄 보르톨로티 지음, 고은영·정경옥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 2013.06, 1만5천원



인류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 - 국경없는의사회 사람들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

댄 보르토로티 지음, 고은영.정경옥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2013)


#국경 없는 의사회#국경 없는 괴짜들#인류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M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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